‘윤심’ 후보 대패하자 비윤계 반발…김기현 지도부 체제 흔들, 비대위 가능성은 적어
10월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가 완패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표 결과 민주당 진교훈 후보 득표율은 56.52%(13만 7066표), 김태우 후보는 39.37%(9만 5492표)를 기록했다. 17.15%포인트(p)의 두 자릿수 격차였다.
진교훈 구청장은 “이번 선거는 상식의 승리, 원칙의 승리, 강서구민의 위대한 승리”라며 “그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일분일초를 아껴 구정을 정상화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태우 후보는 입장문을 통해 “저를 지지해주신 분들의 성원에 화답하지 못해 죄송하다. 강서구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더욱 겸손하게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며 “진교훈 후보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부디 강서구의 발전을 위해 민생을 잘 챙겨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선거 패배를 인정했다.
이번 선거는 김 후보가 지난 5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대법원에 징역형 집행유예 확정 판결을 받아 강서구청장직을 상실하면서 열렸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대법 판결 3개월 만에 김 후보를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했고, 국민의힘은 김 후보를 보궐선거에 공천했다. 본인의 귀책사유로 치러지는 선거에 다시 출마하는, 헌정사에 보기 어려운 장면이 연출된 것.
10월 6~7일 열린 전투표에서 역대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 통틀어 최고 사전투표율인 22.64%를 기록했을 때 여야는 표심을 두고 각각 ‘보수 결집’ ‘정부 심판’이라고 해석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정부 심판론’에 더 무게를 실었다. 이어 본투표를 합친 최종 투표율도 48.7%로 집계돼, 기초단체장 보궐선거로는 이례적으로 50%에 육박했다.
야권 한 관계자는 “각 정당에서 자체적으로 강서구청장 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수차례 돌려봤다고 한다. 그런데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김태우 후보가 이기는 결과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다보니 여권에서는 투표 전부터 이번 보궐선거의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김태우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으로 합류한 나경원 전 의원은 10월 5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강서구는 실질적으로 오랫동안 민주당이 독주했던 지역”이라며 “이번 선거를 총선의 바로미터로 바로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함께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은 권영세 의원 역시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김 후보가 질 경우) 국민의힘에 특별한 일은 없을 거라고 본다. 사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지고 이기더라도 당 전체를 흔드는 요소가 될 만한 선거는 아니지 않나”라고 선을 그었다.
기초단체장 한 명을 뽑는 선거를 이렇게 전국구 체급으로 판을 키운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야권 관계자는 “역대로 재보궐 선거는 ‘정부여당의 무덤’이라 불린다. 이에 정부여당에서는 되도록 이슈를 안 만들고 조용히 치르려 한다.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지도부에서는 강서구청장 후보를 내지 않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대법 확정판결 3개월 만에 김 후보를 사면복권했다. 이어 김 후보도 출마 의사를 강하게 밝혔다. 이는 대통령실이 사실상 후보로 내세운 것이고 공천을 주라는 무언의 입김이 작용했다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선거의 중요도는 커졌고, 이에 따라 국민의힘에서도 총력전 모드로 나섰다. 김태우 후보 선대위 상임고문에 안철수 의원과 권영세 의원·나경원 전 의원, 명예 공동선대위원장은 정우택 국회부의장과 정진석 의원을 임명하는 등 ‘매머드 선대위’를 꾸렸다. 이어 김기현 대표·윤재옥 원내대표를 비롯해 수많은 의원들이 강서구를 찾아 유세 지원에 나섰다.
그럼에도 참패를 면치 못하게 되자 우선 김기현 대표 책임론이 대두됐다. ‘김기현 체제’가 ‘이재명 체제’와의 첫 맞대결에서 참패한 만큼 내년 4월 총선을 믿고 맡길 수 있느냐는 우려다. 국민의힘의 수도권 한 원외 당협위원장은 “김 대표가 취임 이후 보여준 성과가 없다. 이번 보궐선거로 수도권에서 김 대표의 영향력이 없음도 입증됐다.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이 최대 승부처다. 이를 위해서는 당이 현 지도부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선거 투표 전부터 국민의힘이 패배할 경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비대위원장으로 권영세 전 통일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김기현 대표는 사퇴 의사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대표는 10월 1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거 결과를 존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 성찰하며 더욱 분골쇄신하겠다”며 “이번 선거 패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총선 승리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소속 의원들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민심의 질책을 소중히 받들어 쇄신을 위한 기구를 조속히 발족하고 당의 전력과 정책방향도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여권 내부 쇄신론에 대해 현 지도부 퇴진은 선을 긋고 별도의 당 혁신기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선거에 대패를 하면서 선거운동 과정뿐 아니라 전방위적인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시작점인 공천 문제도 다시 거론된다. 김 대표 입장에서는 ‘내가 공천하려고 했냐’ 항변할 수 있다. 결국 대통령실과 친윤계 지도부에 화살이 돌아갈 수도 있다”고 전했다. 보궐선거 패배를 둘러싸고 여권 내홍이 불거질 수 있다는 취지다.
이어 관계자는 “김 대표는 선거 과정 중에도 선긋기 하는 듯한 모양새를 그렸다. 안철수 권영세 나경원 정우택 정진석 등 중진 정치인들을 선대위 중역에 배치해 책임분담을 시도했다”며 “이어 김 대표는 선거운동을 돌면서 ‘김 후보는 윤 대통령과 핫라인이 있는 후보’라고 강조해왔다. 이는 다르게 해석하면 ‘김 후보의 패배는 윤 대통령의 패배’라고 자신은 책임선상에서 빠지려는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선거 개표가 한창인 11일 저녁, 강서구의 김태우 후보 선거사무실에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박대출 정책위의장 등 당 3역은 나타나지 않았다. 주요 당직자 중에는 ‘윤핵관’ 이철규 사무총장과 김가람 최고위원 등만 모습을 드러냈다.
친윤 진영에선 보궐선거 책임론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가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통령실은 “정부는 어떠한 선거 결과든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대통령실 관계자가 “선거를 치른 것은 대통령실이 아니라 국민의힘”이라며 윤 대통령 책임론에 선을 그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민의힘 ‘험지’에서 치러진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한 곳의 결과를 총선 및 대통령 심판론과 연결 짓는 것 자체가 너무 과열된 것”이라고 선거 패배 의미를 축소 평가했다.
비윤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대통령실이 김 후보를 보궐선거에 다시 내보냈다는 것은 당내에서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선거 참패를 하니 대통령실이 이제 와서 꼬리자르기 하고 있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의 공천 개입 입김이 세지면 이번에 눌려있던 불만도 터져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훨씬 큰 차이의 패배는 대통령실에도 충격으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임명 여부를 놓고 전망이 엇갈렸던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후보자직을 자진 사퇴했기 때문이다. 검찰, 그리고 대통령실에서 보여줬던 윤 대통령 인사 스타일을 감안하면 의미가 남다르다.
10월 12일 국민의힘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선 김 후보자 사퇴를 대통령실에 건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출됐다. 김 대표가 이러한 당 지도부 공식 의견을 정리해 대통령실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까진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이는 향후 대통령실과 집권당 간 관계가 바뀔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힘의 무게추가 조절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김행 후보자는 10월 12일 입장문을 통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위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 길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당원으로서 선당후사의 자세로 결심했다”고 사의를 밝혔다. 김 후보자의 사퇴 결정에 대해서도 대통령실은 “후보자 스스로 사퇴한 상황”이라며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고 전했다.
대통령실이 김행 후보자 임명을 놓고 막판까지 고민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야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정말 국민의힘과 보궐선거 결과를 걱정했다면 김 후보자를 선거 전에 사퇴시켰을 것이다. 선거 결과를 보고 김 후보자를 임명할지 결정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김 후보자 역시 여가부 장관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김 후보자가 득표차 10%p 이상만 안 벌어지면 장관에 임명될 거라고 봤다는 말이 돌고 있다. 그래서 개표 당일 저녁에도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린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김 후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구상찬 전 의원도 개표 당시 김 후보자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구 전 의원은 10월 12일 YTN ‘뉴스Q’에 출연해 “김 후보자와 나는 20년 친구인데, (개표 당일) 11시쯤 전화가 왔다”며 “‘자괴감이 든다, 사퇴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검찰이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해 이재명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어 수원지검은 이 대표 배우자의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등 각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전담팀 체계를 가동했다고 밝혔다. 모두 보궐선거가 끝나고 다음날 이뤄진 일”이라며 “윤 대통령은 여전히 야당을 탄압할 계획밖에 없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도 국정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비판했다. 앞서 야권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여전히 내년 총선 필승카드로 ‘이재명 대표 구속’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우려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