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대표 ‘강서구 보선 망쳐’ 비난에 안 의원 ‘제명 서명운동’ 응수…“상주끼리 싸우면 어쩌나” 당내 비판
#‘초상집’에서 벌어진 감정싸움
발단은 10월 9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유세현장에서 나온 안철수 의원의 ‘XX하고 자빠졌죠’ 발언이었다. 당시 안 의원은 유세현장을 찾은 어느 시민이 “XX하고 자빠졌네”라고 욕설을 하자 농담조로 “XX하고 자빠졌죠”라고 답했다.
이 발언을 두고 이준석 전 대표는 같은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안 의원이) 갑자기 유세차에서 진교훈 민주당 후보를 디스(비난)한다며 ‘XX하고 자빠졌죠’라고 했다”며 “민주당 후보를 막말로 비판해 선거를 망쳤다. 선거 패배 책임이 대통령과 김기현 대표 다음으로 크다”고 주장했다. 10월 12일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는 진교훈 민주당 후보에게 17.15%포인트(p) 차로 패했다.
안 의원은 반격에 나섰다. 10월 12일 저녁 안 의원은 페이스북에 “‘응석받이’ 이준석을 가짜뉴스 배포, 명예훼손, 강서구청장 선거방해 혐의로 제명할 것을 요청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10월 12일 저녁 KBS 2TV ‘더 라이브’에서 안 의원의 제명 서명운동에 대해 “보통 안철수 의원에 대해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고 얘기하지만, 지성을 의심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이번에는 지성을 좀 의심해야 될 것 같다”고 비꼬았다.
다시 안 의원은 10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전 대표를 ‘응석받이’라고 부르며 “(이 전 대표를) 가짜뉴스 배포, 강서구청장 선거방해 등의 혐의로 제명할 것을 요청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해 달라”고 했다. 안 의원은 글에 제명 서명 링크까지 공유했다.
10월 16일 오전 두 사람은 40분 간격으로 각각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신경전을 이어갔다. 안 의원이 먼저 나섰다. 안 의원은 “(이 전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을 자기의 힘으로 만들었다는 독선에 빠져 갈등을 빚다 징계를 당하고도 방송 출연을 통해 당을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면서 내부 총질만 일삼는 오만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다시 이 전 대표를 ‘응석받이’라고 부르며 “당에 분탕질하는 것을 내버려 둘 것인가”라고 했다.
40분 뒤 이 전 대표가 등장했다.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지난 17개월 동안 있었던 오류를 인정해 달라”며 안 의원이 아닌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성의 없는 익명 인터뷰가 아니라 대통령의 진실한 마음을 육성으로 국민에게 표현해 달라”고 했다.
이날 이 전 대표는 △박정훈 해병대 대령에 대한 정부·여당의 탄압 중단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중단 △연구개발(R&D) 예산 축소 중단 △의료수가 현실화 △교권 회복 대책 마련 등 사회 현안에 대한 당정의 대책을 요구했다. 고 채수근 상병 수사외압 의혹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등 감정에 북받친 모습을 보였다.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안 의원이 추진하고 있는 제명 운동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아픈 사람 상대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안철수 이준석 ‘12년 애증사’
안 의원과 이 전 대표의 ‘애증사’는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안 의원은 ‘신드롬’을 일으키며 정치권 영입 인사 영순위로 꼽혔다. 이준석 전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으로 깜짝 발탁되며 ‘박근혜 키즈’로 불렸다. 당시 이 전 대표는 ‘리틀 안철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이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는 안 의원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에 대해 ‘억지 프레임’이라며 불쾌함을 드러냈었다.
2016년 20대 총선 때부터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다. 당시 두 사람은 노원구병 지역구에서 격돌했다. 대선주자급으로 발돋움한 안 의원과 ‘0선’의 이 전 대표가 맞붙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당시 이 전 대표는 안 의원에게 21%p 차로 크게 패했다.
이 전 대표는 10월 14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여의도 재건축 조합’에서 “3파전(노회찬·안철수·이준석)은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당당하게 붙겠다고 했다. 첫 여론조사에서도 1등 했었다”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노회찬 의원님이 창원으로 갔다. 그래서 그 당시 쌩쌩했던 대선주자인 안철수와 일대일로 붙어서 20%(21%p) 차로 깨졌다”고 회상했다.
2017년 둘은 한솥밥을 먹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때 이준석 전 대표 등이 참여한 바른정당과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이 손을 잡으면서다. 2018년 6월 재보궐 선거에서 노원구병 지역구에 이 전 대표 공천을 두고 둘은 다시 충돌했다. 이 전 대표 주장에 따르면 당시 바른미래당 대표를 맡고 있던 안 의원이 이 전 대표에게 불출마를 권고했다. 이때 이 전 대표는 “(안 대표는) 공천 과정에 손을 떼라”며 반발했다.
이후 이 전 대표는 ‘리틀 안철수’에서 ‘안철수 저격수’가 됐다. 2018년 재보궐 선거 때 안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 이 모습을 두고 이 전 대표는 “이 사람이 당을 생각하느냐는 지적이 들어온다”며 “당 사람들의 화를 달래는 게 리더의 역할인데, 안 대표는 그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2019년 3월 욕설 논란이 터지면서 안 의원과 이 전 대표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 전 대표가 바른미래당 산하기관인 청년정치학교 회식 자리에서 참석자들에게 안 의원 욕을 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된 것이다. 5월 안 의원 측은 기자회견을 열고 “공당의 최고위원으로서 품위를 잃어버리고 동료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이준석 씨’를 바른미래당에서 즉각 제명하기를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이 전 대표는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바른미래당은 이 전 대표에게 당 최고위원과 당협위원장직을 박탈당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2021년 재보궐 선거에서도 설전이 벌어졌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과 안철수 의원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상왕 논란이 불거졌다. 안 의원은 김종인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오 시장의 ‘상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이 전 대표는 안 의원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를 두고 ‘여자 상황제’라고 비난했다. 안 의원은 이 전 대표에게 “곧 잘리겠다”며 응수했다.
2022년 대선 때도 둘의 공방전은 계속됐다. 안철수 의원이 2022년 2월 20일 윤석열 후보와의 단일화 결렬을 선언하자 이 전 대표는 2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댓글로 ㄹㅇㅋㅋ 네 글자만 치세요”라며 조롱성 글을 남겼다. ‘ㄹㅇㅋㅋ’은 “네 말이 다 맞다”며 상대방의 비논리적 주장을 조롱하는 의미로 쓰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용어다.
#국민의힘 내부 우려 목소리
김수민 평론가는 10월 17일 YTN ‘뉴스앤이슈’에서 이 전 대표에 대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해) 몇 달 동안 쌓여왔던 것들을 털어내는 차원의 기자회견”이라며 “결과적으로 안 의원의 기자회견 내용을 묻어버리지 않았는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성과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10월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해서 당이 난장판이 됐으면 (중진인 안 의원이) 지지층을 다독여야 하고, 희망을 줘야 할 것 아닌가”라며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나오는 게 맞지, ‘이준석 나빠요. 제명해야 해요’ 이것이 맞는가”라고 지적했다.
이 전 대표 기자회견에 대해서 장 소장은 “이 전 대표와 논의를 해보거나 교감을 해본 적은 없다”면서 “마침표 같다. (국민의힘과) 헤어질 결심을 한 것 아닌가”라고 했다. 이어 장 소장은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뽑아달라고 노력하고, 지방선거도 이겼는데, ‘윤핵관’들이 쫓아내고, 그런 1년 5개월 정도의 일들이 스쳐 가니까 회한이 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10월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안 의원이) 이 대표를 응석받이로 보던데 그렇게 보면 안 된다. 그분(이 전 대표)은 정치에 아주 특화된 정치 기계 인간인데 그렇게 해서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고 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10월 17일 같은 방송에서 “초상집에서 상주들끼리 싸우면 어떡하냐”며 “이 싸움은 ‘톰과 제리’도 아니고 개와 원숭이 같다. 선거에서 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둘 다 손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다툼에 대해) 당 지도부가 개입할 일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하면,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당원과 국민들이 (이 전 대표 징계요청서에) 서명을 했다”며 “제명안에 대해 이 전 대표 측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