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생존자 “진상규명‧재발방지 위한 진심 보여달라”…전문가 “안전 관리 계획 및 단계별 대책 수립해야”
‘일요신문i’가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김초롱 씨(33‧프리랜서)에게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김 씨는 2016년부터 매년 빼놓지 않고 이태원에서 핼러윈 파티를 즐겼다. 참사가 있었던 2022년은 코로나19가 잠잠해지는 분위기였고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된 상황이라 더 기대가 컸다고 말한다. 그는 “그날은 지금까지 (이태원 핼러윈 파티에) 갔던 것 중에서 역대급으로 사람이 많은 날인가보다 하고 느꼈는데, 참사 이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인원 수가 가장 많았던 해가 아니라고 하더라”며 “사람들 사이에 경찰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인원 통제를 하는 것 등을 못 본 것 같다”고 그 당시 떠올렸다.
김 씨는 현장에서 두려움에 떨어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소리를 외면했다는 것,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 등으로 꽤 오랜 시간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날 거길 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도 컸다. 그런 김 씨에게 ‘거길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게 맞다’는 심리상담사의 말이 큰 위로가 됐다. 그러나 책임자 중 어느 누구도 사과를 한 사람이 없었다고 김 씨는 말한다. 김 씨는 “이태원 참사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며 “서울 한복판 길거리에서 159명이 희생됐는데, 책임자 중 사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밝혔다.
유가족들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기자회견’에서 고 김의현 씨의 어머니 김호경 씨는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이후 우리 유가족들에게 한 번이라도 어떠한 설명이라도 한 적이 있나”라며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 앞에서가 아닌 유가족 앞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위로를 기다렸다. 1주기를 맞아 다시 한 번 요청한다. 진상규명과 재발방치 대책 수립을 위해 진심 어린 말과 행동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은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 등을 위한 특별법’(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신속한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참사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규명하고 피해자와 유족 지원을 위한 법으로, 지난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85명 가운데 찬성 184표, 반대 1표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야권 의원 183명이 해당 발의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 법안에는 이태원 참사의 독립적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비롯해 특별검사 수사가 필요할 경우 특검 임명을 위해 국회 의결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특별법은 상임위 180일 이내, 법사위 90일 이내, 본회의 60일 이내 상정 순으로 처리된다. 소요 기간은 최장 330일로 21대 국회의원 임기종료 전인 내년 5월 25일 이후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사 1주기가 다가오는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지원할 법은 아직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답답할 뿐이다. 18일 1주기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유가족은 “하루라도 빨리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되기를 희망한다”며 “정부는 독립적 조사기구가 제대로 설립되고 그 운영과 활동에 부족함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별도로 인파 사고 예방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안전 관리 계획 및 단계별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난 12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서울연구원 개원 31주년 기념세미나에서 “인구 밀도에 따라 안전관리 기준이 마련되고 각각의 행사가 이뤄지는 지자체 중심으로 안전관리 계획 수립 및 계획 수립 후 단계별 대책이 필요하다”며 “인파 사고는 여러 요인이 관계되기 때문에 유관기관의 협력체계가 적절히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자리에서 김영옥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태원 참사 같은 인파 사고는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고기도 하다”며 “한 번 일어나면 사회적 갈등에 대한 비용과 지출해야 할 사회적 에너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가 정량적‧객관적으로 예상하고 대비해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현장에서 대응하는 것은 예방이 아니다”라며 “중앙정부는 실시간으로 드론을 띄워 (사고에) 대응하는 얘기를 하던데, 문제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예방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무엇보다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참사가 잊히지 말아야 한다며, 일반 시민들도 잊지 말아줄 것을 부탁했다. 참사 생존자인 이주현 씨는 지난 1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숨어 지내는 피해자가 너무 많고 현장에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집계되지 않은 채 외면당하고 있다”며 “우리에겐 시선의 힘, 기억의 힘이 필요하다.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고 이주영 씨의 아버지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아무리 지워버리려 해도, 잊히게 만들려고 해도,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절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뷰] 이정민 운영위원장 "정부, 참사 자체가 없었던 일마냥 지우려 들어”
지난 1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만난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10월병’에 대해 얘기했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가 있었던 10월이 되니 유가족들은 혼자 멍하니 있게 되고 마음 아파하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이를 유가족들끼리 ‘10월병’이라 부른다는 것이었다.
이정민 위원장은 “혼자 있다 보면 마음이 더 아파져서 자꾸 집 밖으로 (유가족들을) 끌어내려 하고 있다”며 “엄마‧아빠들끼리 만나 함께 대화도 나누고 걷기 운동도 하고 마음을 풀어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16일 이후부터는 집중추모기간으로 정해 추모행사도 열고 아이들이 평소 잘 먹었던 음식도 가져 나와 상차림을 해서 나눠 먹을 계획이다.
그는 “참사 1주기가 다가오는데 뭐 하나라도 바뀐 게 있고 변한 게 있다면 위안이 됐을 텐데 정말 바뀐 게 하나도 없다”며 “정부는 진솔하게 사과하고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자세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참사 자체가 없었던 일마냥 지우려 하는 것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 것 같냐고 묻자 “진상규명이 돼야 (사고) 재발 방지가 된다는 입장이다. 떼어놓고 볼 수 없는 일”이라며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 있는 자들이 역할을 다 하지 않은 부분이 무엇인지,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져야 재발 방지도 저절로 따라 올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은 제2, 제3의 이태원 참사를 막기 위한 것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정민 위원장은 또 지난 7일 여의도한강공원 일대에서 열린 서울세계불꽃축제에 대규모 통제인력과 안전 조치가 이뤄졌던 것을 언급하며 “100만 명이 운집했다는 축제는 지하철 무정차, 도로 통제 등 온갖 조치를 다 취해 아무런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며 “결국 (이태원) 참사의 원인은 그렇게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생겼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자신의 딸을 포함해 꿈 많던 젊은이들이 참사로 미래를 잃어버린 것이 가장 안타깝고 부모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 말했다. 이정민 위원장의 딸 고 이주영 씨는 4년간 쇼핑몰을 운영해 온 청년사업가였다. 이 위원장은 “아이들의 미래를 회복시킬 방법은 없지만 미래를 앗아간 사람이 누군지, 왜 그렇게 됐는지 밝히는 것이 마지막 숙제”라며 “시간이 좀 걸릴지 모르겠지만 꼭 밝혀줄 것이다. 그래서 ‘이태원에 놀러간 너희 잘못’이라 모욕해 아이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까지 모두, 진상규명을 통해 (명예를) 회복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