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 카리스마로 개성 강한 젊은 선수들 원팀으로 만들지 관심…“첫 번째 목표는 포스트시즌 진출”
10월 24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21대 사령탑인 김태형 감독의 취임식 겸 기자회견이 열렸다. 감독 선임 전부터 엄청난 관심과 화제를 모았던 터라 김 감독의 취임식에 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고, 김 감독은 솔직하면서도 거침없는 화법으로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대응해 나갔다.
롯데는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올 시즌도 정규리그 7위로 마쳤고, 6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란 불명예스런 기록도 남겼다. 롯데 구단이 김태형 감독을 ‘모셔 온’ 가장 큰 이유도 이런 성적 때문이다. 김 감독은 두산 사령탑에 오른 2015년부터 2022년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세 차례 우승, 4차례 준우승을 이끌었다. 그로 인해 김태형 감독은 ‘우승 청부사’라고도 불린다. 김 감독이 롯데 사령탑에 오른 순간 우승은 숙제이자 숙명처럼 다가갔을 터. 김 감독은 롯데를 우승시킬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승이 무슨 애 이름도 아니고”라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우승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다. 신인 감독 때는 겁 없이 목표를 물을 때 우승이라고 말했다. 물론 지금도 목표는 우승이다. 첫 번째 목표는 포스트시즌 진출이고, 그 다음이 우승이다. 선수들이 롯데가 강팀이 되도록 노력하고 각오를 새롭게 해주길 바란다.”
흔히 프로야구 감독 자리를 가리켜 ‘독이 든 성배’라고 표현한다. 김태형 감독에게 관련 질문을 건넸더니 그는 “모든 야구인은 감독 제의가 오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책임이 따르지만 기회가 온다면 도전해야 한다”고 답했다. 즉 아무리 감독 자리가 ‘독이 든 성배’라고 해도 그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다할 지도자는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승엽 감독이 두산 사령탑에 오를 때 두산 구단은 이승엽 신임 감독에게 자유계약선수(FA)로 시장에 나온 양의지와 FA 역대 최고인 4+2년 총액 152억 원의 FA 계약을 취임 선물로 안겼다. 그렇다면 롯데는 김태형 감독에게 어떤 취임 선물을 건넬까. 올 시즌을 마치고 FA가 되는 롯데 선수는 전준우, 안치홍인데 마침 김 감독의 취임식에 김원중, 구승민과 함께 두 선수도 모습을 드러냈다.
김 감독은 FA 선수와 취임 선물 관련된 질문에 “공교롭게도 올해 FA 2명, 내년 FA 2명이 앉아 있다”며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선수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안치홍, 전준우는 한국시리즈 종료 후 FA 자격 취득을 앞두고 있고, 롯데 계투진의 핵심 역할을 하는 김원중, 구승민은 2024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는다.
“(마음 같아선) 당연히 팀에 남아서 도와달라고 하고 싶다. 모두 팀에 필요한 전력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선수가 많을수록 좋다. (이강훈) 대표이사님께 필요한 선수들이라고 말씀드렸다.”
김태형 감독의 별명은 ‘곰탈여우’다. 두산 감독 시절 곰의 탈을 쓴 여우처럼 카리스마와 발 빠른 판단 능력이 돋보인 리더십을 발휘했다. 경험과 연륜에다 성적까지 뒷받침됐던 그의 감독 커리어는 두산과 8년 동행을 끝으로 잠시 휴식기를 가졌지만 대부분 그가 빠른 시일 내에 현장으로 복귀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만큼 야구계에서 김 감독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김태형 감독은 롯데 팬들이 가장 ‘모시고 싶었던’ 지도자였다. 시즌 중 래리 서튼 감독이 건강상 이유로 중도하차했을 때부터 팬들 사이에선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태형 감독 영입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자이언츠’라는 팀명답게 팬들은 김 감독의 호쾌한 야구, 선이 굵은 야구를 좋아했다.
더욱이 김태형 감독이 롯데 감독을 맡는다면 개성 강한 젊은 선수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즉 롯데를 ‘원팀’으로 만드는 데 김 감독만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필요했던 것이다. 김 감독은 롯데 감독 선임 후 “롯데 팬들이 이토록 나를 필요로 할 줄 몰랐다”면서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팬들의 성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취임식 다음 날인 25일, 경남 김해 상동구장에서 김태형 감독과 선수단의 상견례가 진행됐다. 그 자리에는 1, 2군 선수 60여 명과 코치 20명, 프런트 20명 등 총 100여 명이 참석했다. 김 감독은 선수단 앞에서 “할 수 있다는 걸 말로만 하면 안 된다. 본인 스스로 느껴야 한다”면서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동안) 고비를 넘기지 못했을 뿐이다. 자신감을 가져라”라는 짧은 내용의 메시지를 전한 다음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덕담을 건넸다.
김태형 감독과 이날 개인 면담을 가졌다는 투수 박세웅은 “감독님이 주축 선수들한테는 부담을 주시기보단 믿고 맡기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면서 “마무리 훈련에서 제외되지만 내년 스프링캠프 때는 부상 이슈 없도록 몸을 잘 만들어오라고 말씀해주셨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박세웅은 올 시즌 27경기서 9승 7패 평균자책점 3.75를 기록하며 롯데의 토종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더욱이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었고, 병역 문제도 해결했다. 앞으로 소속팀을 위해 더 집중해서 야구에만 전념하길 바라는 김태형 감독의 바람을 박세웅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감독님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내년 시즌 준비를 더 철저히 해나갈 예정이다. 그래서 우리 팀도 내년 이 시기에 가을야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경남고 졸업 후 2018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을 통해 롯데 유니폼을 입은 한동희는 당시 ‘포스트 이대호’라는 수식어가 뒤따를 정도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올 시즌 한동희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시즌 앞두고 발사각도를 조정해 더 많은 홈런을 때려내기 위한 변신을 시도했다가 좀처럼 타격감을 회복하지 못했던 것.
김태형 감독은 선수단 상견례 때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상황에서 한동희의 볼을 만지는 걸로 친밀감을 표현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감독은 “마음 고생이 심했을 텐데 (내년에는) 올해보다 잘하지 않겠나. ‘암만 못해도 올해보다는 잘하겠지’라는 마인드로 마음 편히 먹고 뛴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설명으로 한동희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동희도 김 감독의 ‘볼 터치’에 대해 “잘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며 “올 시즌 성적이 좋지 않아 힘들었는데 그로 인해 배운 것도 많다. 내년에 더 잘할 자신도 있다”고 힘주어 대답했다.
김태형 감독은 포수 출신이다. 포수 유강남으로선 김 감독과 만남이 여러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LG에서 활약했을 때 두산을 상대했던 유강남은 “감독님이 상대 팀 더그아웃에 계실 때 무서운 기운을 느꼈다”면서 “찬스 상황이 오면 한 번에 휘몰아치는 두산이었던 터라 항상 어렵게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유강남도 상견례를 앞두고 김태형 감독과 면담을 가졌다. 유강남은 “감독님이 방망이 관련해서 수정할 부분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면서 “나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고 계셔서 깜짝 놀랐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해마다 봄에만 야구를 잘해서 ‘봄데’라고 불리는 롯데 자이언츠. 과연 김태형 감독은 롯데가 봄은 물론 여름, 가을, 그리고 포스트시즌까지 야구할 수 있도록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롯데의 2024시즌은 부산 상동에서 이미 시작됐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