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발생 골목에 클럽형 주점 급증, ‘무허가’ 업소도…그중 한 곳 집단 마약 경찰들 아지트로 알려져
참사가 발생한 비좁은 골목 일대에 '춤 허용 업소'가 불과 1년 만에 크게 늘어난 사실이 확인됐다. 유흥업소가 아닌 일반음식점이지만 춤추는 행위가 특별히 허락된 이른바 '클럽형 주점'이다. 참사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 업소 형태이기도 하다. 특히 춤 허용을 못 받았음에도 지역 분위기에 편승해 몰래 클럽처럼 영업하며 인파 밀집을 높이는 곳도 적지 않아 엄격한 관리·감독이 요구된다.
#비좁은 골목…클럽형 주점만 22곳
2023년 핼러윈 축제가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되며 전국의 지자체도 일단 한숨은 돌릴 수 있게 됐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는 오히려 추모의 분위기가 역력했다. 축제 인파는 주로 서울 홍대로 향했고, 마포구가 오래 전부터 채비에 나선 게 효과를 보았다는 분석이다.
실제 마포구는 '유흥 메카' 홍대가 위치한 만큼 기민하게 대비해 왔다. 이태원 참사 직후인 2022년 11월부터 한 달 동안 춤 허용 업소 47곳을 점검해 7곳의 위반 사항을 적발하고 행정처분을 내렸다. 최근에도 핼러윈 3주 전인 10월 6일 박강수 구청장이 직접 춤 허용 업소 대표자들을 만나 철저한 안전관리 등을 당부했다.
마포구가 춤 허용 업소를 중점 관리·감독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이 일반 업소보다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 큰 음악 소리 탓에 사고가 발생하면 신속한 대처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때도 이들 업소가 비좁은 골목에 인구 밀집을 유발, 시끄러운 음악은 사태 파악과 구호 활동까지 악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이 거셌다.
이런 춤 허용 업소는 각 지역 조례에 따라 전국 8곳에서 제도화돼 있다. 서울에서는 마포구가 2015년, 서대문·광진구가 2016년, 용산구는 2022년부터 시행했다. 광주광역시 서구와 북구, 울산 중구도 춤 허용 업소 조례를 제정해둔 상태다. 전부 '지역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일정 기준을 충족한 업소에 한해 구청이 허가를 내주는 식이다.
그런데 이들 업소가 너무 빠르게 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홍대가 위치한 마포구와 이태원이 있는 용산구가 심하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마포구의 춤 허용 업소는 이태원 참사 당시 57개소에서 현재 73개소로 확대됐다. 같은 기간 용산구는 24개소에서 38개소까지 급증했다. 서대문·광진구 등은 10개소 미만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 참상이 아물지 않은 용산구는 더욱 불안하다. 정보공개청구 등으로 각 업소 현황을 살펴보니 사고 후 새롭게 지정된 14개소 가운데 9개소가 참사 발생지인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 집중됐다. 이곳의 춤 허용 업소만 놓고 보면, 참사 당시에는 13개소에서 지금은 22개소로 대폭 늘었다. 모든 골목의 폭이 약 4m에 불과해 많은 인파를 감당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아온 그 길이다.
#허가 후 '붕괴사고', 무허가 '집단 마약'
개별 업소 입장에서는 춤 허용 업소로 지정되면 세금 부담을 줄이는 등 이점이 크다. 통상 유흥주점은 일반음식점보다 30%가량의 세금을 더 낸다고 알려져 있다. 춤 허용 업소만 되면 일반음식점의 세금을 내면서도 사실상 유흥주점의 기능을 할 수 있다.
물론 춤 허용 업소로 지정되기 위한 조건들도 존재한다. 지자체마다 구체 기준은 다르지만 저마다의 소음·진동관리법, 1㎡당 1명 제한 및 안전요원 배치와 비상등 구비 등 필수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단, 이 같은 규정들이 지역마다 20가지가 넘는 까닭에 현실적으로 지자체가 일일이 전수 점검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러다보니 문제가 발생하면 대형 사고다. 2019년 불법으로 조성한 복층에 인파가 몰리며 붕괴사고로 34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의 한 클럽도 실은 춤 허용 업소로 지정된 일반음식점이었다.
이 같은 극단 사례 외에도 서울에서 방역수칙 위반으로 코로나 감염을 확산한 클럽 상당수가 춤 허용 업소였다.
그나마 춤 허용 업소 지정이라도 받았다면 나은 편이다. 무허가 상태로 클럽같이 운영하는 주점 역시 많다. 이미 춤 허용 업소로 지정된 곳마저 관리·감독이 어려운 상황 속, 까다로운 허가 절차 등을 거치지 않고도 영업이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운영하는 업소들이다.
참사 발생지인 세계음식거리에서도 이런 업소가 쉽게 발견된다. 예컨대 OO클럽은 젊은 층에 매우 유명한 장소다. 온라인 상에도 여기서 춤을 췄다는 이용자들의 후기 글과 사진 등이 최근까지 줄줄이 게재됐으나, 춤 허용 업소도 유흥주점도 아닌 '일반음식점'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업소는 최근 집단 마약 투약으로 검거된 경찰관들의 아지트로도 알려진 곳이다. 그 안에서 벌어진 행위뿐 아니라 업소 자체가 불법이었단 뜻으로, 마약 거래가 클럽이 아닌 일반 식당에서 이뤄진 셈이다.
#1명 빼고 전원 발의…상인 출신 주도
춤 허용 조례안 자체의 적정성도 논란이 불가피하지만 전망은 더 암담하다. 현 추세에 따라 춤 허용 업소가 늘어날수록 관리·감독 등 행정력의 한계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용산구청의 경우 용산구의회가 해당 조례안을 추진할 때부터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2022년 6월 용산구의회 홈페이지를 보면 춤 허용 조례 제정을 요구하는 민원에 용산구는 분명한 입장을 전했다.
용산구청은 "지역 특성상 음식점 주변에 주택가가 밀집돼 있다"며 "현재도 춤추는 행위 및 소음과 관련한 인근 주민의 고통 호소와 민원이 많은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법적으로 춤추는 행위가 허용되는 영업은 유흥주점인데 이는 허가 기준이 까다롭다"면서 "기존 유흥주점 업주들의 극심한 반발도 예상된다"고도 강조했다.
심지어 용산구의회 안에서도 해당 조례안에 대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 "사실상 주거지역에 유흥업을 허용하는 조치"라며 "소음과 진동 등에 따른 민원이 심할 수 있다"는 우려를 담았다.
그럼에도 용산구의회는 조례를 밀어붙였다. 2022년 3월 총 13명의 구의원 가운데 12명이 발의에 동참했다. 대표 발의자는 김정준 당시 국민의힘 구의원이었다. 그는 이태원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상인연합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공교롭게도 이태원 춤 허용 1호 업소는 그의 옛 식당에서 40m 거리에 있다.
춤 허용 업소를 시행하는 어느 지자체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솔직한 심경을 털어 놓았다. 이 관계자는 "춤 허용을 받아도 객석에서만 추는 게 원칙인데 이를 적발해도 업주들이 고객들 탓으로 돌리는 등 이의제기가 심해 몹시 피곤하다"며 "구청 담당 부서가 이들 업소 단속만 하지도 않는 데다, 신청 단계에서 기준만 충족하면 허가를 안 해줄 수도 없어서 점검의 물리적 한계는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지웅 변호사(법룰사무소 정)는 "법에서 금지한 사안을 그저 상권 활성화만 바라본 채 조례로 꼼수 제정한 결과"라며 "안전 등 다른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엄밀히 말하면 이런 조례 제정의 전례가 만들어졌다는 자체가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이제라도 문제를 보완할 규정상의 장치를 마련하는 데에 주력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