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급한 청년 상대 13000% 폭리, 가족 지인에 실제 유포 대납 협박도…보이스피싱 조직과 수법 유사
#눈덩이 이자에 피해자들 ‘멘붕’
A 씨 일당은 2022년 10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소액대출 홍보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돈을 빌려주고 연이율 3000%, 많게는 1만 3000%까지 이자를 받아냈다. 이들은 추심 과정에서 주민등록등본, 지인 연락처, 알몸 사진 등을 요구한 뒤 제때 변제하지 못한 이들을 협박하는 데 활용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약 2억 3000만 원의 부당 이익을 챙긴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대부업법 위반·채권추심법 위반 등)를 적용했다.
문제의 대출을 이용한 이들은 대부분 제도권 내 대출이 어렵거나 급한 돈이 필요한 2030 청년들이었다. A 씨 일당은 소득 수준이 낮거나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대출해주며 과도한 이자를 요구했다. 법정 최고금리 20%를 훌쩍 넘는 이자를 내라고 한 뒤 제때 갚지 못하면 시간당 이자 5만 원을 요구하는 등 주먹구구식으로 이자를 불렸다.
A 씨 일당에게 원금 100만 원을 빌리고 3개월 동안 약 1370만 원을 상환한 피해자 B 씨(37)는 “(추심할 때) 무조건 욕이 기본으로 나온다. 또한 30분 혹은 1시간당 5만 원 추가 이자는 무조건 붙는다. 예를 들어 11시까지 이자를 줘야 하는데 12시까지 줬다면 벌금 개념으로 이자가 붙는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피해자가 갚아야 할 변제액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지독한 협박과 공포에 시달리면서 정상적 생활을 하기 힘든 상태로 내몰렸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총 83명이며 90% 이상이 20∼30대 청년이었다. 알몸 사진까지 요구받은 피해자는 남성 9명, 여성 12명 등 21명이다. 처음부터 대출 조건으로 알몸 사진을 요구 받는 경우보다는 이자·원금 상환일을 늦추기 위해 사진을 보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B 씨는 “이자 상환 기한을 늘려줄 테니 나체 사진을 보내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막무가내였다. 이자를 갚겠다고 해도 가족과 지인에게 사진을 보내버렸다. 나체 사진 여러 장을 SNS(소셜미디어)에 올린 뒤 제 모든 팔로어를 태그하기도 했다. 거래처에도 나체 사진을 뿌렸다. 그 이후로는 일도 못하고 어딜 다니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사정상 급한 돈이 필요하거나 불법 유흥업소 종사자 등 신분을 드러내기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에게 빌리는지 따지지 않고 비대면으로 쉽게 돈을 빌리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애초 대출 조건으로 나체 사진을 요구했다면 피해 사례가 더 적었을 수도 있다. 일부러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대출액을 갚지 못해 궁지에 몰린 이들에게 나체 사진을 받은 뒤 유포를 협박했다”고 말했다.
A 씨 일당은 추심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가족이나 지인에게 알몸 사진을 유포하며 “대신 변제하라”고 협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알몸 사진에 피해자의 어머니·여동생 등 가족 얼굴을 합성해 조롱·위협하기도 했다.
가족뿐만 아니라 회사나 영업장에 대한 협박도 이어졌다. 또 다른 피해자 C 씨는 “A 씨 일당이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 대표에게까지 전화로 욕설을 퍼부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채무자의 일상생활을 방해해 시간당 이자를 불리는 수법을 더 용이하게 만드는 불법추심을 자행한 것이다.
앞서의 B 씨는 “자영업을 하고 있는데 거래처는 물론이고 옆 가게 사장님한테도 전화를 했더라”라며 “나부장 일당은 채무자가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들은 포털에서 로드뷰를 보고 저희 집 옆 가게를 찾아낸 다음 전화를 해서 ‘옆집 돈 좀 갚게 해라’라고 말하면서 망신을 주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닮은꼴?
A 씨 일당에 범죄집단조직·활동 혐의를 적용한 경찰에 따르면 사장인 A 씨가 피해자 자료를 관리하고 대부업체 총괄을 맡았으며, 나머지 직원은 채권 추심·협박, 자금 세탁, 자금 수거책 등 조직적으로 임무를 분담했다. 널리 알려진 보이스피싱 조직과 유사한 체계다.
철두철미한 수법 역시 보이스피싱 조직과 유사했다. 경찰에 ‘나부장’ 일당의 범행을 제보한 것으로 알려진 이기동 소장은 “이들(A 씨 일당)은 보이스피싱범들과 수법이 똑같다. 수시로 계좌번호와 전화번호를 바꾸고, 소액 대출 광고로 유인한 피해자로부터 개인정보를 갈취 또는 해킹한 뒤 협박 등을 통해 부당 이익을 챙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들 일당은 경찰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모든 대출 과정을 비대면으로 운영했을 뿐 아니라 대포폰·대포통장을 이용했다. 이기동 소장에 따르면 나부장 일당은 모든 대포폰을 애플의 아이폰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아이폰은 사용자가 비밀번호를 발설하지 않는 이상 보안을 뚫고 열어보기가 어렵다. 또 ‘나부장’ ‘현부장’ 등의 가명을 쓰고 추적을 피해 텔레그램으로 은밀히 메시지를 주고받았으며 사무실 위치도 3개월마다 옮겼다.
피해자의 통장을 대포통장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B 씨는 “중간중간 나부장 일당의 계좌번호나 전화번호가 바뀌었다. 나중에는 내 통장을 요구했다. 이들은 ‘통장 주면 당신이 상환하는 돈 입금하는 것이지 딴 데 쓰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통장을 줬더니 두 달 동안 모르는 사람들 명의로 1억 원 이상의 돈이 입금됐다. 통장을 이용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B 씨는 모르는 돈이 입금된 사실을 알게 된 뒤 더 이상 통장을 빌려줄 수 없다고 했다. A 씨 일당은 “그렇게 나오면 통장에 입금한 사람들한테 시켜서 대포통장으로 신고할 것”이라고 협박한 뒤 실제로 신고해 통장은 정지됐다. B 씨는 현재 ‘내 통장의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경찰에 자초지종을 설명해 놓은 상태다.
은밀하게 불법추심을 이어가던 나부장 일당의 덜미가 어떻게 잡혔을까. 이기동 소장은 “피해자들의 제보가 워낙 많이 들어와 우리 기관에는 사기 등 불법이 의심되는 1000개 이상의 계좌번호와 1만 개 이상의 전화번호 데이터가 있다. B 씨의 제보를 받고 이 분을 돕기 위해 경찰에 신고한 뒤 유사한 피해 신고가 들어온 전화번호를 경찰에 계속 보냈다. 결국 경찰이 잠복 끝에 의심되는 나부장 일당을 추적하고 압수수색한 뒤 검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피해자들의 알몸 사진 유포를 막기 위해 A 씨 일당이 소유한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피해자들에게 신변 보호, 상담소 연계, 피해 영상 삭제 등 보호조치도 지원했다.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상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고금리 소액대출은 대포폰·대포계좌를 이용해 악질적인 채권 추심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공인된 제도를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