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미쓰에이 시절 떠올리며 주인공에 깊은 공감…“항상 은퇴 생각?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한다는 뜻”
“제가 아이돌로 활동한 시절이 있다 보니 어떤 부분에선 실제 제 모습이 많이 겹쳐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론 그게 오히려 이 작품에선 더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고요. 처음 제안을 받고 원작 웹툰을 바로 봤을 땐 ‘이두나!’란 웹툰이 주는 묘한 분위기가 굉장히 특이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또 이두나는 제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캐릭터라서, 이제까지 해보지 않았던 톤으로 연기를 할 수 있겠단 기대도 있었고요. 두나가 가진 아픔에도 저 역시 공감이 많이 가서 막연하지 않게, 구체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이두나!’에서 수지는 눈에 띄는 외모와 특출난 실력으로 최정상 아이돌 ‘드림스윗’의 멤버로 활약하던 중 어느 날 돌연 탈퇴를 선언한 이두나를 연기했다. 온 세상의 관심과 사랑, 부담을 뒤로한 채 대중에게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 그는 대학가 셰어하우스에 살며 무대에서와는 또 다른 초조함과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두나의 감정 변화를 보며 수지는 걸그룹 미쓰에이 시절의 자신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두나의 어두운 면을 표현하면서 제가 두나에게 느끼는 감정처럼, 사람들이 연예인 두나를 외로움과 짜증이 많고, 어두움도 있는 ‘인간 이두나’로서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워낙 밝은 이미지다 보니까 가끔 ‘너도 짜증날 때가 있니’ 이런 질문도 꽤 받는데, 사실 좀 웃긴 것 같아요(웃음).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기분도 나쁘고, 화도 내고, 짜증도 내는데 그런 모습을 사람들이 잘 안 받아들이려는 것 같거든요. 두나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연예인 이두나가 아닌 인간 이두나, 사람 이두나로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죠.”
주변을 향해 항상 날을 세우고 의심을 하게 되는 두나의 ‘까칠함’을 표현하기 위해 수지는 대본에 없던 욕설 대사를 추가하는가 하면 흡연 연기까지 소화하며 이전과는 또 다른 색다른 파격을 선보였다. 영화 ‘건축학개론’(2012) 속 국민 첫사랑의 모습에 익숙한 대중들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도전이었다.
“그런 신을 찍을 땐 화면으로 잘 나왔으면 좋겠단 생각 말곤 없었어요(웃음). 특히 흡연 신은 두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장치이기도 했거든요. 제가 핀 담배는 실제 담배가 아니고 촬영용으로 만든 소품이었지만요(웃음). 또 이원준(양세종 분)과의 스킨십 신도요. 두나와 원준이의 성격은 물론이고 ‘어떻게 하면 뻔하지 않게 키스를 할 수 있을까’하는 지점까지 정말 하나하나 많이 연구해서 찍은 신이에요. 두나가 이렇게 한다면 원준이는 그걸 이렇게 받아들이겠지, 하면서. 연상연하의 설정도 있으니 이 둘의 키스 신은 다른 키스 신과는 좀 달랐으면 좋겠단 생각도 있었고요(웃음).”
눈 앞에 펼쳐진 화려한 무대를 뒤로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든 두나는 셰어하우스에서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는 대학생 원준을 만나게 된다. 톱 아이돌인 자신을 다른 사람들처럼 부담과 악의 섞인 관심 없이 그저 ‘사람 이두나’로 대하는 원준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게 되면서 천천히 쌓아가는 로맨스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톱스타와 그를 전혀 알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의 로맨스 판타지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 설정이지만, 수지는 이들의 관계성이 아니라 원준이란 캐릭터 그 자체에서 ‘판타지’를 찾았다며 웃어 보였다.
“이런 남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판타지다(웃음)! 사실 두나가 원준이에게서 느끼는 안정감은 ‘얘는 날 모르네? 그럼 내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게 아니구나’라는 무해성에서 오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 둘이 로맨스로 향하는 과정이 더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거죠. 진짜 원준이 같은 남자가 있을까요(웃음)? 원준이에게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은, 상대가 오직 두나이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날 알아보고, 의도적으로 접근한다는 그런 경계심이 늘 있었는데 원준이는 항상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오고 잘해주잖아요. 두나도 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서 끌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지점이 바로 여타 로맨스와는 다른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이두나!’에서 수지는 자신의 배역은 물론이고 그를 둘러싼 모든 관계성과 장치들을 고민을 거듭하며 연구했다고 한다. ‘두나’를 통해 ‘수지’의 옛날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덕에 두나의 아픔이나 고민부터 조금은 비뚤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는 수지는 문득 두나에게서 부러움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 부러움에는 열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데뷔해 서른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한순간도 자신을 놓아줄 새 없이 내달리기만 했다는 데서 온, 약간의 후회도 섞여 있었다.
“두나는 그 순간에 온전히 ‘힘듦’ 그 자체를 느끼고 있는데, 그게 부러웠던 것 같아요. 저는 너무 바빠서 제가 힘든지 아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거든요. 오히려 힘들면 안 된단 생각을 했어서 대본을 보며 ‘두나는 그래도 나보다 낫네, 자기가 힘든 거나 고장 난 걸 알고 있지 않나?’하고 부러워했죠(웃음). 돌이켜 보면 전 제 상황을 다 인지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쩌면 고장났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던 때도 있었을 거고요. 두나는 그런 걸 표현하는 사람이고, 저는 회피하는 사람이라 그런 게 부러웠어요.”
이처럼 스스로를 미처 살피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반성하면서 동시에 “항상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대중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는데, 이슈가 되자 수지는 “곧이곧대로 그 뜻이 아니다”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굳이 이제 와서 과거를 후회하고 힘들었음을 되새김질하는 데 시간을 보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 ‘이두나!’를 통해 그때의 수지를 충분히 돌아봤으니 남은 시간은 늘 그랬듯 앞으로의 자신을 위해 쓰겠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항상 은퇴를 생각한다는 건 그냥 작품을 대할 때마다 ‘이 작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거지 진짜 은퇴하겠다는 게 아니에요(웃음). 사실 저도 두나처럼 이 세계(연예계)가 저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이게 진짜로 제 전부가 된다면, 일이 없어졌을 때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나도 ‘내가 춤, 노래를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를 고민하잖아요. 저 역시 그런 고민 끝에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내 주변의 모든 게 내 전부가 되게 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일은 일이고, 제 삶은 삶이니까요. 이전에도 저는 묵묵히 제 할 일을 열심히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