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미국 규제 강화 움직임, 운임 하락 가능성…‘최악의 경우’ 유찰 거듭하다 헐값 매각 될 수도
#‘적격자’가 인수할 수 있을까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는 지난 10월 19일 보유 중이던 HMM의 제192회 전환사채와 제193회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주식전환권을 행사했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의 보유 주식수는 기존 1억 119만 9297주에서 2억 119만 9297주로 늘어났다. 지분율은 20.69%에서 29.20%로 증가했다. 해진공의 주식수 역시 기존 9759만 859주에서 1억 9759만 859주로 늘며 지분율은 19.96%에서 28.68%로 증가했다. 산은과 해진공의 보유지분 합산 가치는 약 5조 6000억 규모다. 아직도 1조 6800억 원가량의 영구채가 전환을 기다리며 남아 있는 상황이다.
HMM 소액주주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HMM소액주주연대 홍이표 대표는 “영구채를 주식 전환했기 때문에 대기업은 이제 인수 후보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60만 명 소액주주들을 다 죽이는 결정이다”라며 “주가가 고점 대비 70% 가까이 폭락했다. 향후 HMM을 헐값 매각하게 되면 그 또한 배임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HMM의 인수 후보 기업은 LX인터내셔널, 하림·JK파트너스 컨소시엄, 동원산업 세 곳이다. 세 기업 다 인수 자금이 부족해 ‘새우가 고래를 잡아먹는 격’이라며 적격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동원산업과 하림 컨소시엄은 글로벌 해운 경험이 없고 본업과의 사업 연관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인수 후보 기업들이 HMM을 인수한 후 기업가치를 키우기보다는 현금만 빼먹는 ‘지갑’으로 소모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계약서에 HMM이 보유한 현금의 대부분을 오롯이 해운·선박 쪽에만 투자하도록 조건을 넣고 주식 전환 스케줄이 남아 있는 2억 주가량의 영구채를 전환하지 말고 경영에 간섭하는 견제 지분으로 삼으라”고 제언했다. 김인현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소장 역시 “대우조선해양을 한화그룹에 매각할 때처럼 산은과 해진공이 2대 주주로 전체 지분을 25% 정도는 가져가서 국제 환경이 어려워지면 바로 정부가 개입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 10월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HMM의 적격 인수자가 없다고 판단되면 반드시 매각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이후 질의 과정에서 “현재 인수 의사를 보인 기업이 적격자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라며 한 발 물러섰으나 이 발언 때문에 HMM의 유찰 가능성이 한층 힘을 얻었다.
구교훈 회장은 “유찰될 가능성이 아주 높고 이후 포스코와 현대차 등 대기업이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포스코는 글로벌 무역을 영위하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있고 벌크선 운영을 통해 쌓은 해운 경험도 풍부하다. 불황 속에서도 HMM과 엄청난 시너지를 내면서 기업가치를 키울 수 있는 대기업이라 주목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또한 “이번엔 후보들이 이상하게 너무 오합지졸이다. 기업 인수에 노하우를 갖고 있는 대기업들이 이번에 HMM의 가격이 너무 높다고 판단하고 가격 조정이 된 상태에서 들어가겠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해운산업의 변동성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재무적으로 든든한 모기업의 지원이 필수”라며 “자본금이 있는 회사가 인수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해운동맹 퇴출 가능성도 점쳐져
HMM은 올 3분기 시장 기대를 웃도는 실적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물동량이 감소하고 2022년 5000대를 기록하던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900대로 폭락한 상황에서도 1700억 원대에 달하는 영업 흑자를 낼 전망이다. 하지만 향후 상황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악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악재는 유럽연합(EU)이 지난 10월 10일 해운업의 글로벌 동맹 시스템을 허용하던 ‘경쟁법 포괄적용 제외 규정(CBER)’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향후 해운사 연합은 시장 점유율이 30%가 넘을 경우 EU의 반독점 규정 적용을 받아 카르텔로 간주돼 강력한 수준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글로벌 3대 해운 얼라이언스는 2M, 오션 얼라이언스, 디 얼라이언스가 있다. 세계 1위와 2위 선사인 MSC와 머스크가 제휴한 2M은 2025년 1월 이미 해체가 예정돼 있다. HMM이 속해 있는 디 얼라이언스 역시 30% 미만으로 점유율을 조정해야 한다.
이와 관련, 전준우 성결대 글로벌물류학과 교수는 “정기선 시장이 굉장히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HMM이 글로벌 대형 선사기는 하지만 단독 운용하려면 200만 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이상 확보해야 하는데 지금 78만 TEU밖에 안 된다. 결국 다른 선사와의 연합은 필수이기 때문에 향후 어떤 전략을 취할지 신속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HMM은 특히 더 취약한 위치라는 지적이다. 산은과 해진공의 지분율이 58%까지 늘어나면서 공기업화한 상태기 때문이다. 공기업은 해운동맹에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HMM이 2020년 어렵게 가입한 디 얼라이언스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김인현 교수는 “HMM은 2만 4000TEU급 친환경 선박을 12척가량 보유하고 있다. 해당 선박은 컨테이너 단위 한 개당 비용구조가 좋다. 동아시아 시장의 물동량이 적지 않기 때문에 HMM은 파트너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아무래도 덩치가 작아 외부 정기선사에 더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불리한 상황인 것은 맞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입장도 변수다. 글로벌 선사의 해상 운임 인상을 미국 인플레이션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한 미국 정부는 지난해 해운법(OSRA 2022)을 개정해 외항해운사의 운임 인상을 제한했다. 미국 의회도 해운경쟁집행법(OSCEA)의 입법 절차에 들어가면서 향후 미주 항로 규제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2024~2025년 선대 증가율은 7.3%에 달하는데 물동량 수요는 3% 수준으로 전망돼 지속적인 운임 하락이 예고돼 있다.
매각을 추진 중인 HMM의 입장에선 급변하는 해운 환경에 대응이 어려운 상태다. 이휘영 인하공업전문대학 항공경영학과 교수는 “매각 얘기가 나오면 새로운 노선 개척이나 물동량 관리에 대한 중장기적인 계획 등 비즈니스 플랜이 다 중단돼 버린다”며 “CBER 폐지 등 대응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상황이기 때문에 HMM 매각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매각이 늦어질수록 헐값 매각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지적이다. 황용식 교수는 “속전속결로 역량 있는 기업에 팔아야 하는데 지금 인수 후보자들이 재무적으로 탄탄하지 않고 업황도 좋지 않아 사면초가나 다름없다”며 “유찰될수록 매각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어 대우조선해양처럼 헐값매각 논란에 시달릴 수 있다. 물밑 접촉을 통해 유력한 기업이 신속하게 인수할 수 있게끔 산은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