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뱀 매뉴얼’ 만들어 SNS에서 1000여 건 팔기도…편취한 27억 원은 단골 호스트에게 헌납
#교묘한 수법 들여다보니…
지난 9월 20일, 일본 경찰은 무직인 와타나베 마이를 사기 혐의로 체포했다. 와타나베는 앱으로 만난 50대 남성에게 “창업으로 빚이 생겼다. 갚지 않으면 유흥업소에 몸을 팔아야 한다”고 거짓 고민을 털어놓은 후 현금 2700만 엔(약 2억 4000만 원)을 뜯어낸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조사에서 와타나베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그로부터 약 1개월 뒤인 10월 22일, 와타나베는 다른 남성으로부터 5200만 엔(약 4억 6000만 원)을 편취한 혐의로 다시 체포됐다. 경찰에 의하면, 와타나베는 같은 수법으로 다수의 남성들에게 접근했으며, 피해 총액은 2억 엔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와타나베는 성관계를 맺지 않고도 돈을 뜯어낼 수 있다는 내용의 ‘꽃뱀 매뉴얼’까지 제작해 SNS에서 판매했다. 와타나베가 만든 ‘꽃뱀 매뉴얼’은 무려 1000여 명에게 팔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사기방조죄로도 체포됐다.
후지이 야스시 메이세이대학 교수(임상심리학)는 “매뉴얼에 교묘히 속이는 심리 기술이 응축돼 있다”고 분석한다. 요컨대 중년 남성들이 연애 감정을 느끼도록 하면서 자발적으로 돈을 내도록 하는 방법들이다. 10개의 챕터로 구성됐으며, 인쇄하면 족히 30페이지가 넘는다.
매뉴얼은 ‘꽃뱀 사냥감’으로 적당한 중년 남성의 특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의 보람을 못 느끼고, 매일 일에 지쳐 밤늦게 귀가하고, 집에 오면 피곤해서 바로 쓰러져 자고, 집 회사 집 회사를 반복해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무기력한 중년 남성을 표적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인기가 없고 돈 쓸 데가 없는 독신남이라면 ‘최고의 표적’이다.
만남 앱 등에서 ‘이상적인 아저씨’를 찾아냈다면 이후에는 관계성을 쌓는다. 실제로 와타나베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면 “원래 나는 남자한테 서투른데, 아저씨는 다른 남자들과 다른 것 같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해 후지이 교수는 “특별한 존재로 느껴지게 하고 두 사람의 관계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걸 은연중에 심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대화 예시도 매뉴얼에 담겼다. “역시 아저씨한테 털어놓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언제나 고마워요” “들어봐요, 방금 일어났는데 나 아저씨 꿈꿨어!” 등등이다. 그 가운데는 자신의 소망을 말하는 예시도 있다. “옷을 좋아하니까 언젠가 내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그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꼭 이루고 싶어.” 후지이 교수는 “심리학에서 흔히 말하는 스토리텔링으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이 사람에게 뭔가 해주고 싶다’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면서 “심리를 파고드는 요소를 교묘히 도입했다”고 덧붙였다.
상대가 자신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입하고, 관계성이 확립되면 본론에 들어간다. 와타나베는 “중요한 것은 돈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처럼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매뉴얼에서 강조했다. “절대 먼저 돈 이야기를 꺼내지 말고 ‘자발적으로 오빠가 도와줄게’라고 말하도록 하라”는 것. 실제로 54세의 남성 피해자는 “빚잔치를 앞두고 있다”는 와타나베의 눈물에 속아 4000만 엔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와타나베는 이러한 ‘꽃뱀 매뉴얼’을 3만 엔(약 27만 원)에 팔았고, 1000여 명이나 매뉴얼을 사갔다. 사기에 정통한 가토 히로타로 변호사는 “그야말로 사기방조에 해당한다. ‘표적’ 중년 남성들이 점점 진심이 되어가는 방법이 꽤 구체적으로 적혀 있기 때문에 사기 교수법과 같다. 매뉴얼 자체에 위법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호스트바에서 모조리 탕진
사기로 손에 넣은 거금을 와타나베는 어디에 사용했을까. 와타나베는 지난 7월 자신의 SNS에 이런 고백을 남겼다. “유흥업과 사기로 몇억 엔을 벌었지만, 수중에 1엔도 남기지 않고 모두 호스트 응원에 써 버렸다.” 그는 “담당 호스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하루에 2763만 엔(약 2억 4000만 원)을 술값과 팁으로 썼다”고 밝혔다.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와타나베의 통장에는 잔액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또 와타나베를 잘 아는 지인은 “와타나베가 응원하던 호스트가 월 7000만 엔의 매상을 올려 ‘넘버1’이 되었는데, 매상 대부분은 와타나베가 지불한 돈이었다”며 “그 대신 와타나베는 값싼 캡슐 호텔에서 묵는 생활을 했다”고 전했다.
지난 11월 2일, 와타나베의 첫 공판이 나고야 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와타나베는 ‘사실과 다름이 없다’며 기소 내용을 모두 인정했다고 한다. 현지 언론에 공개된 진술조서를 보면 매뉴얼의 매출액은 1993만 엔(약 1억 7500만 원), 사기 피해금은 3억 엔(약 27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후지TV는 “와타나베가 혐의를 인정했으나 ‘꽃뱀 매뉴얼’에 의해 또 다른 범죄가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지난해 6월 매뉴얼을 구입한, 나고야시에 사는 여대생 A(21)가 남성 2명에게 접근해 현금 1065만 엔을 가로채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A는 사기죄로 공판 중이라고 한다.
한편, 일본 경찰은 와타나베가 자주 방문했던 호스트바의 점장과 남성 접대부 다나카 히로시를 범죄수익 은닉 혐의로 체포했다. 와타나베가 지불한 돈이 범죄 수익금인 것을 인지했으면서도 받았다는 혐의다. 와타나베가 푹 빠져 응원했던 다나카는 명문대를 졸업한 뒤 접대부가 돼 인기를 끈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에서 “집에 있는 현금이 6000만 엔 정도 된다. 대부분 호스트를 하며 받은 팁”이라며 “종잇조각”이라고 과시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호스트에 빠져 전 재산을 바치고, 호스트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유흥업을 시작하거나 길거리 매춘을 하는 사례가 급증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여성들을 칭하는 타친보(立ちんぼ)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이에 일본 경찰은 ‘자금 출처에 위법성이 인정될 경우 형사 사건으로서 호스트바 관계자를 엄격하게 추궁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