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피해자 보호기금’ 제도 개선 하세월…반성문 열람도 거절당해 “심신미약? 감형 절대 안돼”
#'지원금 부족' 변죽만…
"이제 큰 기대도 안 해요. 재판이 문제인데 설마 심신미약을 인정하진 않겠죠…."
8월 3일 최원종이 몰던 모닝 차량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진 뒤 치료를 받다 8월 28일 결국 세상을 떠난 고 김혜빈 씨(20)의 가족은 여전히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듯 황망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8월 11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피해자를 지원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알려졌지만 변죽만 요란했다. 혜빈 씨의 가족은 수원지방검찰청 등에서 유족 지원금 4000만여 원은 받았는데 충분하진 않았다. 한 달 가까이 받아온 치료와 장례 등에 들어간 비용이 유족 지원금 4000만 원을 훌쩍 넘겼고 그 비용은 가족이 감당해야 했다.
혜빈 씨 유족은 "정부가 직접 나섰기에 기대가 컸지만 결국 여러 살인 사건 가운데 하나였을 뿐 예외는 없었다"며 "언젠가 또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피해자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전례가 마련되길 바랐으나 좌절만 남고 말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희생자인 고 이희남 씨(65)의 유족들도 마찬가지다. 별다른 지원은 받지 못한 채 묵묵히 현실을 버텨가고 있다. 당장 믿고 의지할 곳은 혜빈 씨 가족뿐으로 같은 유족끼리 주고받는 위로가 전부인 상황이다.
서현역 사건을 계기로 검찰, 경찰, 여성가족부가 운용하는 범죄피해자 구조금은 줄곧 논란이 돼왔다. 검찰의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1년에 약 1500만 원 수준으로 지원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컸다. 지자체 등 다른 기관의 지원금과 중복수령도 안 된다. 혜빈 씨의 2주 치료비만 약 2300만 원에 달했던 점을 고려하면 허무한 액수다.
이에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관련 논의는 걸음마다. 9월 14일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피해자 지원 범위 확대를 뼈대로 한 '범죄피해자 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상임위 논의도 아직이다. 정부에서는 10월 12일 국정감사 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범죄 피해자 원스톱 지원 시스템' 구축을 약속한 단계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에서 제도 재정비에 나섰으나 한계가 명확하다. 경기도의회는 9월 21일 '이상동기 범죄 방지 및 피해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가결했다. 검찰 등의 범죄피해자 보호기금과 무관하게 경기도가 추가 지원을 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지자체의 재원은 중앙정부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
서울시의회에서도 이상동기 범죄 예방 및 피해 지원에 관한 조례가 추진 중이지만 상임위 문턱도 못 넘은 상태다. 국가 법률과의 정합성과 세금 투입의 적정성 등 전반이 논쟁 소재가 됐기 때문이다. 결국 지원 확대는 포기했고 자치경찰의 이상동기 범죄 예방을 명문화하는 수정안을 만들어 제출했다. 서울시의회 상임위가 곧 다시 살펴볼 계획이다.
해당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김동욱 서울시의원은 "각종 무차별 범죄로부터 시민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끔 하는 제도적 장치가 분명 필요한 시점"이라며 "지원 확대를 부득이 제외하게 된 점은 아쉽지만 이 정도라도 심의가 잘 이뤄져서 수정가결로 꼭 통과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우린 모든 걸 잃었는데…"
유족과 피해자들 입장에선 재판도 매 순간이 고통이다. 가해자의 변론을 일일이 들어야 하는 현실도 지옥이지만 반성의 뜻이 있는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원종 측이 대형 로펌에 속한 법무법인 대륜을 법률 대리인으로 선임한 자체가 충격이었다. 현재까지 3차례 진행한 재판에서 최원종 측은 심신미약 등에 따른 감형을 호소했다. 당연히 유족과 피해자들은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혜빈 씨의 가족은 "심신미약이라니 이를 당최 말이라고 하는 것인지 당혹스럽다"며 "재판부는 감형 사유를 일절 받아들여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유족과 피해자 가족들은 최원종 측으로부터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한 상태"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이희남 씨 유족도 일요신문과 인터뷰에서 "희생자의 가족들은 모든 것을 잃었는데 오히려 가해자 측은 뭐라도 지키겠다고 노력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현실이 고역"이라며 "하루 빨리 최원종이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으로 재판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원종은 두 번째 공판을 마치고 지난 9월 19일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두 유족은 이 반성문을 확인하길 요청했으나 최원종 변호인 측으로부터 거절당한 탓에 보지 못했다. 재판부가 아닌 한 피해자들은 볼 수 없는 구조도 문제지만, 최원종 측의 공개 거부는 그 자체로 반성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낳게 했다.
혜빈 씨 가족들은 일도 제대로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다고 한다.
이희남 씨의 남편은 희생자인 아내의 액자를 만들어 놓고 매일을 사진만 바라보며 눈물로 지샌다고 한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아내의 이름을 부르는 날이 반복되고 있다.
최원종의 네 번째 공판은 오는 12월 7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다. 이날은 혜빈 씨와 이희남 씨의 유족과 또 다른 피해자 총 3명이 직접 발언에 나선다. 최원종 양형에 관한 의견을 밝히는 자리다. 두 유족은 "엄벌을 촉구할 것도 없이 합당한 처벌이면 된다"며 "어떤 이유로도 감형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