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기회 안 주고 주변 진술만으로 징계위 회부…‘갑질’ 파출소장 역진정 중도 취하했지만 서울청 감찰 강행
전 서울 금호파출소장 정 아무개 경감의 역진정을 받아들인 조치로, 정 경감이 중간에 직접 취하까지 했으나 감찰을 강행하며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피해자인 서울 성동경찰서 뚝섬치안센터 박인아 경위는 직접 감찰 조사를 받은 적이 없어 아무런 소명도 못한 데다, 자세한 이유도 모른 채 징계위 회부 소식을 접했다.
#'일주일 안에 100개 답변해 달라'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청은 최근 박 경위에 징계위 회부를 통보했다. 이는 경찰청 감찰에서 박 경위에 대한 갑질 등 혐의가 인정된 전 파출소장 정 경감의 역진정을 서울청이 받아들인 결과다.
정 경감은 2023년 초 약 2개월 동안 박 경위와 함께 근무했다. 이 기간 박 경위가 맡은 업무의 일부 미흡한 점들을 짚어내 서울청에 진정을 제기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서울청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며 박 경위에게 서류로 답변서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100가지가 넘는 질문을 담았는데 이를 일주일 안으로 마무리해달라는 요청도 뒤따랐다. 기한은 11월 15일까지였다.
박 경위 입장에서는 관련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징계위 회부 통보부터 받게 됐다. 직접 감찰에 나가 조사를 받은 적도 없는 탓에 소명은 당연히 못했다. 통상 징계위에 회부되면 처벌 수위만 정해질 뿐 징계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사실 관계와 앞뒤 사정을 면밀히 조사할 필요성이 크지만 서울청은 일부 직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이같이 결정했다.
서울청이 지적한 주요 징계 사항은 '근무 중 사복 착용' '유연근무 출퇴근 미등록' '부적절 언행' 등이다. 전부 '동료 팀원들의 진술'을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박 경위가 병가로 쉬었던 기간에 정 경감 등과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감찰 절차"
일각에선 보복 감찰을 의심하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박 경위는 정 경감과 동시에 서울청 감찰 부서에 대해서도 경찰청 본청에 감찰을 요구한 바 있다. 정 경감 사건이 발생한 직후 서울청 감찰에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고 말하자, '나도 먹는다'는 식의 답이 돌아오는 등 2차 피해를 토로하면서다.
결과적으로 경찰청은 서울청 감찰의 손을 들어줬다. 2023년 10월 18일 내놓은 최종 감찰 결과서에는 "서울청 감찰의 부적절 언행 등 비위는 통화 녹취와 참고인 진술 등을 종합할 때 비위로 인정 안 됨"이라는 짧은 내용이 들어있다.
이에 박 경위는 10월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본청 앞에서 시민단체 한국여성민우회와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상황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차별하는 경찰은 국민을 지킬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경찰청의 감찰 결과를 비판했다.
게다가 정 경감은 도중에 진정을 취하했으나, 서울청이 감찰을 밀어붙인 사실도 확인됐다. 서울청 감사기획계 관계자는 "민원 접수부터 취하한 기간 사이에 위반 사항을 파악하면, 조사는 이어갈 수 있다"며 "자세한 사항은 감찰수사계에 확인하라"고 말했다. 반면 감찰수사계 관계자는 "박 경위 관련 문의는 감사기획계에 하라"며 대답을 피했다.
그런데 시점이 묘하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정 경감이 진정을 접수한 시점은 6월 27일, 취하한 때는 7월 19일로 주말을 제외하면 꼭 17일이다. 그러다 7월 14일부터는 '파출소장 갑질 행위'와 '서울청의 부실 조치' 등을 비판하는 언론 보도가 줄줄이 이어졌다.
애초 서울청이 정 경감을 징계위에 회부하지도 않는 가벼운 처분으로 사안을 마무리했다는 비판이었는데, 관련 보도가 잇따르자 박 경위에 대해 불과 17일 만에 징계위 회부 명분을 찾아낸 셈이다.
주동희 전국 직장협의회 조직국장(경남 양산경찰서 직협 회장)은 "보복 감찰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감찰 절차"라고 지적했다. 이어 "관련 공문을 확인해보니 앞뒤가 전혀 안 맞는 내용들로 가득하다"며 "서울청장에 면담을 신청하는 등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갑질' 파출소장, 12월 정년퇴임 앞둬
한편 정 경감은 경찰청 감찰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지시' 등을 한 사실이 여럿 인정돼 징계 수위 결정을 앞두고 있다. 다만 그는 2023년 12월이 정년이다. 퇴임을 불과 한 달 앞둔 만큼 '강등' 혹은 '해임'이 아닌 한 실효성 있는 처분은 없다는 게 경찰 사이에서 중론이다. 정 경감은 '감찰 결과 인정하는지' 등을 묻는 일요신문 질문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박 경위 사건은 2023년 7월 7일로 돌아간다. 당시 서울 성동서 금호파출소에서 근무하던 박 경위는 경찰 내부망 '현장활력소'에서 "파출소장 강요로 회장님으로 불리는 80대 노인을 근무 시간에 접대해야 했다"며 "회장 사무실에서 억지로 사진을 찍고 과일을 깎았다"는 등의 피해를 폭로했다.
서울청은 논란이 된 파출소장 감찰에 돌입해 직권경고로 사안을 마무리했다. 징계위원회에도 회부되지도 않는 가벼운 처분이다. 분리 조치도 한참 뒤에야 이뤄졌는데 그마저 파출소장의 '치안지도관' 발령이었다. 박 경위가 일하는 파출소 등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이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