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방 대안 시스템 추진하던 기업마저 사기 피해…6개 조직 연합해 투자전문업체 사칭 150억대 챙기기도
#사칭만 문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와 금융감독원은 2023년 8월 '자본시장 불법행위대응 및 협력 강화' 업무협약을 체결해 리딩방 불법 행위 특별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두 기관이 2023년 말까지 리딩방 관련 제보를 받고 정보를 공유하며, 국수본은 적발하는 대로 기소 전 몰수보전 등을 통해 범죄수익을 환수할 방침이다.
특별점검 약 3개월 만에 여러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고 알려졌다. 이 가운데에는 기존 불법 리딩방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대안 프로그램을 만들려다 사기를 당한 A 기업의 사례도 있다. 회원들의 집단지성 등을 활용해 전망 좋은 나스닥 종목을 추리고 투표를 통해 투자처를 선정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했는데 시작도 못하고 돈을 떼였다.
A 기업은 2023년 4월 이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해줄 B 업체와 계약을 맺고 600만 원 넘는 비용을 지급했다. B 업체의 '주식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봤다'는 말을 의심 없이 믿었다. 하지만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 B 업체 홈페이지를 보니 A 기업이 의뢰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포트폴리오가 기재돼 있었다.
A 기업은 환불을 요청했으나 차일피일 미뤄지다 결국 못 받았다. 단순사기 사건 같지만 눈에 띄는 점들이 있다. 투자 시장에서 대부분의 사기 범죄는 유명인을 사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B 업체 대표는 신분을 속이지 않고도 신뢰감을 형성했다. B 업체는 최근까지도 언론매체 등을 통해 각종 사업 현황과 사회공헌활동 등이 소개돼 왔다.
언론 보도를 믿었던 A 기업은 뒤늦게 B 업체의 석연찮은 부분들을 알아차렸다. 어느 날 B 업체 대표가 "차트 개발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기 마련이고, 저희는 원래 불법을 만들어 판매한다"며 "또 대부업을 하고 있는데 A 기업 측이 원한다면 제 고객을 넘겨드리겠다. 수익이 쏠쏠하다"는 제안을 전하면서다.
이 사건은 서울 양천경찰서가 수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B 업체에 대한 별건 조사를 벌이고 경찰에 사건을 이첩한 상태다. 이런 와중에도 B 업체 대표는 유튜브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에는 20대 후반인 B 업체 대표의 해외여행과 프로그램 개발 관련 회의 모습 등이 담겨져 있다.
이처럼 사칭 대신 본인 스스로가 전문가임을 내세워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금융감독원이 적발한 사례에는 여러 증권방송에 출연해 특정 종목 매수를 추천한 뒤 본인계산 계좌에 보유하던 해당 종목을 매도하는 등 선행매매 혐의자도 있다. 신문·디지털·방송 등 미디어에 등장한 인물도 쉽게 믿어선 안 되는 이유다.
#'손실 깨끗이 잊어야…' 검거 쉽지 않아
업계에 따르면 리딩방 등 투자 사기의 주요 타깃은 고수익을 욕심내는 이들보단 큰 손실에 힘들어 하는 투자자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손실을 만회해준다는 약속이 고수익 창출보다 비교적 현실성 있는 데다, 피해자들의 심리도 훨씬 조급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위조문서와 가치 없는 가상자산 거래 등이 동원되기도 한다.
국수본은 최근 OO투자그룹 피해보상팀을 사칭한 일당을 적발했다. 이들은 손실 회복이 간절한 투자자들만 골라서 접근했다. 범행 대상을 찾아내면 손실보상 관련 가상자산을 받을 지갑인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라고 권유했다. 그 후 실제 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을 송금하거나,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자산을 전송했다고 속였다.
이 과정에서 일당은 피해자의 신분증과 계좌번호는 물론 비밀번호 등까지 전달 받았다. 이를 통해 피해자 명의로 카드사나 보험사 등 금융기관에 비대면 대출을 신청해 돈을 가로채왔다. 심지어 피해자에게 또 다시 가상자산 환전을 위한 별도의 보증금 또는 수수료를 받고 잠적하기도 했다.
이런 수법에서는 비록 돈을 건네지 않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일요신문이 인터뷰한 OO투자그룹 관련 피해자들은 "수상함을 감지해 중간에 발을 빼려 했는데 위약금을 명목으로 집요하게 돈을 요구했다"며 "결국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했다"고 토로했다.
이 밖에 6개 조직이 연합해 실제 존재하는 투자전문업체를 사칭하고 "당일 500% 수익을 보장한다"며 253명에게 151억 원 규모의 사기를 친 일당도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과에 적발됐다. 이들은 텔레그램에서 범행을 공모하고 수익을 분배했다. 각각 '해외 운영' '피해자 유인' '법인통장 공급' '자금세탁' 등의 역할을 분담했다.
금융감독원에도 유사한 피해가 꾸준히 접수되기는 마찬가지다.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해 주겠다며 접근한 후 위조한 거래소 문서를 보여주고, 수천만 원의 투자금을 입금 받아 편취하는 패턴이다. 금융감독원은 모든 사례를 사기 혐의로 국수본 등에 수사의뢰했다.
전문가들은 비록 손실을 입더라도 본인 투자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원론적 진단이 최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는 리딩방 사기 범죄도 갈수록 고도화하는 탓에 검거가 예전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화사기 등 소위 보이스피싱 범죄의 '비대면' '온라인' '대포물건' '초국경' 등의 특징이 리딩방 사기까지 스며든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리딩방도 보이스피싱처럼 범인을 특정하는 단계부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며 "당연히 검거에 이르기까지도 오랜 기간이 필요한 만큼 피해 예방이 최우선"이라고 당부했다. 이어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투자는 없으므로, 모르는 사람의 투자 권유는 무조건 경계해야 한다는 말도 심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