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대중예술인 아닌 BTS만을 위한 법 개정, 되레 반감”…“소모적 논쟁 장병 사기만 저하” 팬들도 외면
오랜 기간 대중예술인을 예술·체육요원 편입 대상에 포함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게 해주자는 의견이 연예계에서 제기돼 왔고 정치권에서도 다뤄져 왔다. 특히 BTS라는 월드스타의 등장으로 이 문제가 더욱 화두가 됐고 일부 국회의원들이 관련 주장을 이어왔지만 국방부와 병무청은 강하게 반대해왔다. 그리고 결국 BTS 멤버 진이 자진입대하는 것으로 관련 논란이 마무리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갑자기 이 논란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2022년 12월 진의 입대를 시작으로 제이홉과 슈가까지 BTS 멤버 3명이 현재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만약 정치권에서 대중예술인을 예술·체육요원 편입 대상에 포함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진, 제이홉, 슈가 등은 물론이고 아직 입대하지 않은 멤버들도 예술·체육요원으로의 편입이 가능하다.
병역특례가 면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병역법 시행령 제68조의12는 ‘예술·체육요원이 본인이 보유하고 있는 예술·체육 관련 특기를 활용하여 공익적인 업무에 복무해야 하는 시간은 의무복무기간 중 총 544시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2년 10개월(34개월) 동안 544시간 동안 공익복무만 하면 된다. 진과 제이홉, 슈가 등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멤버들도 바로 전역하거나 소집해제될 수 있고 RM, 지민, 뷔, 정국 등은 병역특례를 받아 군 복무 대신 예술·체육요원으로 544시간의 공익복무를 하게 된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BTS 공식 팬덤 아미의 회원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BTS 열렬한 팬’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아미 등 BTS 팬들도 인 위원장의 제안을 환영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았다. 예상대로 팬들은 오히려 반발했다. BTS 팬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방탄소년단 갤러리’에 낸 입장문을 통해 “최근 정치권에서 방탄소년단의 병역 문제를 또다시 거론해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현실에 팬들은 심히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미 방탄소년단의 멤버 3명이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으며 남은 멤버들도 순차적으로 입영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팬들도 다가오는 2025년 완전체 활동을 학수고대하는 만큼, 불필요한 소모적인 논쟁으로 추운 날 나라를 지키느라 노고가 많은 국군 장병들의 사기가 저해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정치권에서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정치적 영달을 도모하기 위해 방탄소년단을 화두에 올리는 얄팍한 농간을 좌시할 수 없다. 앞으로 방탄소년단의 병역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를 간절히 요청드린다”고 강조했다.
정반대 행보를 보인 여당 인사도 있다. 국민의힘 국회의원 출신인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11월 10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최근 BTS 멤버 제이홉이 군 행사 사회자로 검토되다가 취소된 것에 대한 질의를 받자 “유명 연예인이 자기 보직에서 땀 흘리고, 흙 묻은 군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최고의 공익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특히 BTS 같은 굉장히 유명한 K팝 가수는 빌보드 차트 1등을 하는 것보다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국격이고 국위선양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11월 7일 열린 제4회 국제군인요리대회의 사회자로 제이홉을 검토했지만 신원식 장관의 지시로 취소됐다. 이후 신 장관은 “연예인을 하다 들어온 다른 병사들도 보직 외 다른 일을 시키지 말라”고 지시했다
군 복무 중인 연예인이 국방부 등의 행사에 동원되면 이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포상 휴가 등이 주어지는데 이로 인해 연예인 출신 병사가 일반 병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휴가를 받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휴가를 많이 받았다는 얘기는 군 복무 중에 국방부 등의 행사 차출 요청에 적극적으로 임했다는 의미로, 이 역시 군 복무를 열심히 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도 있다. 포상휴가가 일종의 행사비인 셈인데, 사실 모든 병사에게 휴가는 매우 소중하다. 다시 말해 신 장관의 지시대로 연예인 출신 병사에게 보직 외 업무인 행사 차출이 사라지면 포상휴가 등을 받을 기회도 사라지는 셈이다.
팬들 입장에서도 군 복무 중인 연예인이 각종 행사에 동원되면 오랜만에 좋아하는 스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연예인 출신 병사들이 출연한 국방부 뮤지컬이 한때 큰 인기를 끈 배경도 여기에 있다. 신 장관의 지시는 팬들 입장에서도 아쉬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팬덤 아미를 비롯한 BTS 팬들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팬들의 일관된 입장은 BTS를 가만히 둬 달라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BTS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만큼 그들이 평범하고 성실하게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게 팬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의 피날레가 된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를 앞두고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방부는 서울에서 있을 K팝 콘서트에 현재 군인 신분인 BTS가 모두 함께 참여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일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주시길 바란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에도 BTS 팬들은 입장문을 통해 “BTS가 정부의 강압적인 요구에 따라 K팝 콘서트에 참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이자 공권력 갑질”이라며 “성 의원이 국방부에 압력을 가하는 작금의 행태야말로 잼버리 정신에 어긋나는 반민주주의”라고 밝힌 바 있다.
기본적으로 연예계는 대중예술인을 예술·체육요원 편입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향성에는 동의하고 있지만 모든 게 BTS에만 맞춰진 현실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중견 연예관계자는 “2020년에 ‘문화훈장 또는 문화포상을 받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추천한 대중문화예술인’은 군 입대를 30세까지 연기할 수 있도록 병역법을 개정했는데 그건 오로지 BTS를 위한 법이었다”며 “문화훈장 수훈 조건에 ‘15년 이상 활동’이 포함돼 있는데 그러려면 13세에 데뷔해야 28세에 문화훈장을 받을 수 있다. 매우 이례적으로 데뷔 6년 차인 2018년에 화관문화훈장을 받은 BTS만 가능한 병역 연기라 한국음악콘텐츠협회 등에서 오히려 법 개정을 반대했을 정도”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번에 이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 올린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역시 자신이 BTS의 열렬한 팬이라며 BTS를 그 중심에 뒀다. 이런 까닭에 연예계에선 모든 대중예술인을 위한 논의가 아닌 BTS만을 위한 법 개정 논란은 오히려 대중문화예술계의 상대적 박탈감만 가중시킨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