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 매각 준비, 원금 회수도 장담 못해 “신의 저버려” 반발…더 큰 문제는 웨이브, 티빙과 합병 추진에도 우려
SK그룹은 그간 FI들과 상대적으로 큰 갈등이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투자자들과 분쟁을 벌일 가능성이 나온다. 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체면 차릴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SK스퀘어의 경우 자회사들이 이익은커녕 성장조차 대부분 멈췄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SK스퀘어의 커머스(11번가)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 줄었다. 또 플랫폼 부문 매출은 19%, 모빌리티 부문 매출은 15% 각각 감소했다. 어두운 앞날이 예고된 셈이다.
#"11번가 인수 희망자 찾기 어려울 듯"
SK스퀘어는 지난 11월 29일 이사회를 열고 11번가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자산을 살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SK플래닛은 2018년 나일홀딩스컨소시엄으로부터 50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SK플래닛은 당시 11번가를 운영하던 법인이다. 나인홀딩스컨소시엄은 H&Q,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등으로 구성됐으며 이 중 국민연금은 총 3500억 원을 투자했다.
SK플래닛과 나일홀딩스컨소시엄은 ‘드래그 앤드 콜(Drag & Call)’ 계약을 체결했다. SK플래닛이 2023년 9월 30일까지 기업공개(IPO·상장)를 완료하지 못하면 나일홀딩스컨소시엄 임의로 SK그룹이 보유한 SK플래닛 지분까지 제3자에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그 전에 SK그룹이 나일홀딩스컨소시엄이 보유한 SK플래닛 지분을 되살 수 있는 권한인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콜옵션 행사 기한은 오는 12월 4일까지다.
SK스퀘어가 콜옵션에 응했다면 원금과 연이자를 포함해 5500억 원이 필요하다. 11번가의 경쟁력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추가 자금 집행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심지어 11번가에는 내부자금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1번가가 최근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로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SK스퀘어가 11번가를 품기로 결정한다면 추가 투자도 집행해야 한다.
결국 SK스퀘어는 고민 끝에 11번가를 사실상 포기했다. SK스퀘어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FI는 오는 12월 4일 이후 11번가 매각에 착수할 예정이다. SK스퀘어로서는 그간 11번가에 투자한 금액에 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SK스퀘어는 현재 11번가 지분 80.26%를 갖고 있고, 이에 대한 장부가는 1조 494억 원으로 책정하고 있다. 그러나 11번가 매각 경과에 따라 해당 지분 가치는 0원이 될 수도 있다.
FI 입장에서는 11번가를 강제매각할 경우 투자금인 5000억 원 이상만 회수하면 된다. SK그룹과 FI는 ‘워터폴 계약’을 맺은 걸로 알려졌다. 주식을 강제매각하면 FI가 원금을 선취하고 나머지는 SK그룹이 가져간다는 것이다.
다수의 사모펀드업계 관계자들은 11번가가 매물로 나올 경우 SK스퀘어가 갖는 몫은 거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심지어 FI의 원금 회수조차 장담할 수 없다. 한 사모펀드 대표이사는 “11번가가 5000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면 그냥 ‘아 그래?’하고 지분을 팔면 되지 투자자들이 굳이 ‘SK가 신의를 저버렸다’고 반발할 이유가 있겠느냐”며 “11번가는 자생하려면 조 단위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설령 인수자가 있더라도 추가 투자를 감안하면 기존의 구주는 헐값에 가져가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이커머스 업체는 네이버와 쿠팡의 양강체제인데 이 중 흑자를 내는 곳은 쿠팡밖에 없다”며 “11번가를 비롯한 다른 이커머스업계의 업황은 워낙 좋지 않아 11번가 인수 희망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원스토어·웨이브…내년에 더 큰 고민
SK스퀘어는 내년에도 11번가와 유사한 일을 진행해야 한다. SK스퀘어 자회사인 원스토어는 지난해 IPO를 철회하면서 투자금 1000억 원 상환에 응해야 한다. 원스토어는 한국투자파트너스와 LK투자파트너스로부터 2000억 원 투자 유치를 진행하고 있어 자금 사정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평가다. 하지만 원스토어는 투자자들에게 보장수익률 연 9%를 제시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보장수익률로 인해 SK스퀘어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OTT(Over The Top·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 웨이브다. 웨이브는 2019년 미래에셋벤처투자와 SKS프라이빗에쿼티를 대상으로 20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CB 만기는 5년으로 2024년 중 이를 상환해야 한다. 발행한 CB의 만기이자율은 3.8%다.
웨이브는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가 주주로 있다. 이 때문에 웨이브는 ‘지상파 콘텐츠’를 차별화 요인으로 내놓고 있다. 그런데 웨이브는 2024년 8월 지상파와의 콘텐츠 제공 계약이 끝난다. 지상파들은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과 콘텐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애플리케이션(앱) 분석서비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웨이브의 일간 활성 이용자 수(DAU)는 지난해 2분기 115만 명에서 올해 2분기 103만 명으로 줄었다. 웨이브의 지상파 콘텐츠 계약이 끝나면 이용자 수가 더 줄어들 수 있다. 웨이브는 지난해 1351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뒷말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웨이브는 티빙과 합병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두 회사 모두 소위 ‘킬러 콘텐츠’가 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합병이 성사되더라도 우려의 시선은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두 회사는 매년 1000억 원 이상의 손실을 내고 있다. SK스퀘어 관계자는 웨이브·티빙 합병과 관련해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11번가 관련해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편, SK스퀘어 외에 SK그룹 전체로 넓혀 보면 SK E&S(KKR로부터 3조 1000억 원 유치), SK온(한투PE와 MBK 등으로부터 1조 3000억 원 유치), SK루브리컨츠(IMM PE로부터 1조 1000억 원 유치), SK에코플랜트(이음PE 등으로부터 1조 원 유치) 등도 변수로 거론된다. 대부분 IPO를 추진하려다가 발을 뺀 계열사들이다. 금융권에서는 11번가 콜옵션 미행사를 결정한 SK그룹의 다음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