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투자 유치 어렵고 직접 지원도 부담…‘알리바바에 매각’ 구체적 소문에 “확정된 것 없어” 입장
SK스퀘어는 11번가 지분 80.26%를 갖고 있다. 11번가는 자체적으로 투자금을 상환하기는 어려워 모회사 SK스퀘어의 지원이 필요하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11번가의 자본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2598억 원이고,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590억 원에 불과했다. 또 11번가는 지난해 1038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509억 원의 적자를 냈다. 모회사 SK스퀘어의 최근 실적도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SK스퀘어는 11번가 외에도 콘텐츠웨이브 등 다른 자회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SK스퀘어가 11번가에 선뜻 수천억 원을 지원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IPO 기한 연장 요청한 11번가
11번가는 새로운 투자자 유치를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11번가의 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기업가치 상승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11번가는 현재 경쟁사에 비해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11번가의 사업은 크게 오픈마켓과 직매입으로 분류된다. 오픈마켓은 생산자와 고객을 중개해주면서 이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 사업 모델이고, 직매입은 11번가가 생산자로부터 상품을 매입한 후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이다.
11번가는 지난해 6월 익일배송 서비스인 ‘슈팅배송’을 시작하는 등 직매입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직매입 사업은 쿠팡이 시장을 장악했고, 이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직매입 사업을 위해서는 제품을 보관할 물류센터가 필요하다. 11번가의 물류센터는 파주, 대전, 인천 등 세 곳이지만 쿠팡의 물류센터는 수십 곳에 달한다. 규모면에서 뒤처지는 11번가가 가격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기도 쉽지 않다.
남성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쿠팡은 더 이상 쇼핑커머스 생태계에 머물지 않고 온라인 전반적으로 지배력을 높이는 단계에 들어섰다”며 “지금까지 쿠팡을 경쟁자로 여겼던 업체들은 더 이상 시도하지 못할 영역에 들어섰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11번가에 선뜻 투자할 투자자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11번가는 대안으로 기존 FI에게 IPO 기한 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FI는 SK스퀘어의 11번가 지분을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청구권을 보유하고 있다. FI가 동반매도청구권을 행사하면 11번가 IPO 기한을 연장하지 않아도 투자금 회수가 가능하다. FI로서는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FI는 공식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콘텐츠웨이브도 신경써야 하는 SK스퀘어
11번가가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 모회사 SK스퀘어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SK스퀘어의 재무구조는 비교적 양호하다. SK스퀘어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 6월 말 기준 9126억 원이고, 부채비율은 29.80%에 불과하다.
하지만 SK스퀘어의 지원이 필요한 계열사는 11번가 외에도 적지 않다. SK스퀘어는 OTT(Over The Top·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 운영 법인 콘텐츠웨이브 지분 37.45%를 갖고 있다. 콘텐츠웨이브는 2019년 미래에셋벤처PE와 SKS PE가 공동으로 조성한 펀드 ‘에스케이에스미래에셋콘텐츠’로부터 2000억 원의 전환사채(CB)를 조달했다. 콘텐츠웨이브는 CB를 조달하면서 5년 내 IPO를 약속했다. 콘텐츠웨이브가 2024년 11월까지 IPO에 성공하지 못하면 CB를 상환해야 한다.
현 분위기에서는 콘텐츠웨이브의 IPO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SK스퀘어는 2021년 콘텐츠웨이브에 100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지분율을 30%에서 36.4%로 끌어올렸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콘텐츠웨이브의 당시 기업가치는 1조 5625억 원이다. 그런데 콘텐츠웨이브는 지난해 1217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콘텐츠웨이브가 IPO를 강행하더라도 SK스퀘어가 원하는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콘텐츠웨이브가 IPO 대신 CB를 상환하기에는 보유 현금이 부족하다. 콘텐츠웨이브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지난해 말 기준 459억 원에 불과했다. 콘텐츠웨이브가 남은 1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내지 못하면 SK스퀘어의 지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SK스퀘어의 재무구조가 악화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SK스퀘어의 핵심 자회사 SK하이닉스는 최근 부진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상반기 7조 611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6조 2844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SK하이닉스의 영향 때문인지 SK스퀘어도 지난해 상반기 8264억 원의 영업이익에서 올해 상반기 1조 3735억 원의 영업손실로 적자전환했다.
김정훈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SK스퀘어의 주력 자회사인 SK하이닉스의 경우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에 따른 수요 회복 시점의 불확실성과 누적된 메모리반도체 업계의 재고 수준을 고려하면 단기적인 실적 흐름은 둔화가 불가피해 보인다”며 “향후 SK스퀘어의 적극적인 투자 전략 실행 가능성을 감안할 때 재무안정성은 현 수준 대비 약화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SK스퀘어 "11번가 가치 제고 방안 고민"
SK스퀘어가 아예 11번가를 매각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투자은행(IB)업계 일각에서는 SK스퀘어가 중국 알리바바그룹과 11번가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꽤나 구체적인 소문도 퍼지고 있다. SK그룹 입장에서 이커머스가 주력 사업은 아니고, 11번가가 실적에 큰 기여를 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11번가를 매각해도 SK그룹 전반적인 분위기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알리바바그룹이 11번가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 11번가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11번가 입장에서 SK그룹보다 중국 직구 시장을 장악한 알리바바그룹과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안 그래도 알리바바그룹은 계열사 알리익스프레스와 타오바오 등을 통해 한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한국 대표는 지난 9월 12일 알리바바코리아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국 직구 시장을 중요한 ‘키 마켓’으로 보고 있다”며 “소비자에게 더 많은 상품과 착한 가격, 빠른 배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알리바바그룹은 11번가 인수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SK스퀘어는 11번가와 관련해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SK스퀘어 관계자는 “11번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