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풋옵션 계약 상 시총 1조 5000억에 상장해야 하지만 물류업계 현실은 녹록지 않아
롯데그룹은 2016년 현대로지스틱스를 인수했다. 롯데그룹은 2019년 기존 계열사였던 롯데로지스틱스와 현대로지스틱스를 합병해 롯데글로벌로지스를 탄생시켰다. 합병에 앞서 현대로지스틱스는 2017년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사모펀드 메디치인베스트먼트를 대상으로 150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당시 현대로지스틱스의 기업가치는 8451억 원으로 책정했다. 롯데그룹 계열사라는 프리미엄을 감안했을 때 적정한 수준의 몸값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현재는 물류업계 전반에 대한 기대치가 크게 낮아졌다. 물류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의 시가총액도 2017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롯데글로벌로지스가 높은 몸값으로 IPO를 성공하지 못하면 메디치인베스트먼트에 투자 원금과 이자를 물어줘야만 한다. 롯데글로벌로지스가 2024년까지 IPO를 성공하지 못하면 메디치인베스트먼트는 풋옵션(주식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롯데글로벌로지스는 IPO를 추진하고는 있지만 성공적인 IPO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다.
#공모가 산정 과정에서 진통 클 듯
메디치인베스트먼트는 현대로지스틱스 투자 당시 지분 31.51%를 확보했다. 이후 현대로지스틱스와 롯데로지스틱스가 합병하면서 메디치인베스트먼트의 롯데글로벌로지스 지분율은 21.87%로 줄었다. 메디치인베스트먼트의 투자액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합병법인 롯데글로벌로지스의 기업가치는 1조 2180억 원으로 추산된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투자 유치 과정에서 메디치인베스트먼트와 풋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2024년까지 IPO에 성공하지 못하면 연 복리 3%를 가산해 지분을 되사주기로 한 것이다. 7년 치 복리 이자를 감안하면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최소 시가총액 1조 5000억 원의 기업으로 상장해야 한다. 메디치인베스트먼트와 롯데글로벌로지스는 해당 시가총액 요건을 맞추기로 구두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택배업계 사정상 1조 5000억 원의 몸값은 녹록지 않다.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주관사단을 선정한 지난 11월 초 기준 택배업계 압도적 1위인 CJ대한통운의 시가총액은 1조 7000억 원 수준이었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4118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증권가에서 예상하는 CJ대한통운의 올해 영업이익은 4590억 원, 내년 영업이익은 5050억 원이다. 하지만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626억 원으로 CJ대한통운과 비교하면 체급 차이가 느껴진다.
(주)한진과 비교하면 더 심각하다. (주)한진의 올해 예상 영업이익은 1248억 원으로 롯데글로벌로지스보다 높은 수준이다. (주)한진의 영업능력이 롯데글로벌로지스를 앞선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주)한진의 시가총액은 3000억 원대에 불과하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최근 장외시장(K-OTC)에서 주당 2만 1000원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장외시장에서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시가총액은 7000억 원대다. 목표치의 절반에 불과한 셈이다. 다만 장외시장에서 롯데글로벌로지스 하루 거래량이 수십 주에 불과해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뿐만 아니라 증권가에서는 롯데글로벌로지스보다 CJ대한통운의 앞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택배시장 경쟁이 심화하면서 최근 몇 년간 주가가 부진했다. 특히 쿠팡의 존재감이 컸다. CJ대한통운의 택배시장 점유율은 2020년 50.1%에 달했지만 올해 3분기에는 44.1%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올해 4분기부터 다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CJ대한통운이 중국 유통 업체들과 독점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CJ대한통운은 중국 알리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분위기다. CJ대한통운의 알리 관련 취급 물량은 올해 1분기 350만 박스에서 올해 3분기 900만 박스로 늘었고, 4분기에는 1000만 박스 이상을 취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소비 파편화와 해외직구의 일상화로 택배는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맞았다”며 “CJ대한통운은 알리 외에도 다양한 글로벌 온라인 몰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 연구원은 이어 “해외직구 물량에 대한 도착 보장 서비스를 제공할 인프라를 갖춘 회사는 CJ대한통운이 유일하다”고 분석했다.
#현금 여력 없는 롯데지주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글로벌로지스의 몸값 산정과 관련해 “이익 규모가 선두 업체에 비해 적어도 ‘스토리’가 있다면 높은 몸값을 밀어붙일 수 있는데 롯데글로벌로지스는 CJ대한통운에 비하면 이마저도 부족하다”며 “풀필먼트(판매부터 배달까지의 전 과정을 서비스하는 것)나 친환경 등의 포인트도 약하다”고 지적했다.
증권가에서는 일명 ‘파두 사태’로 인해 후발주자들이 역풍을 맞을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파두는 시가총액 1조 원대로 상장했지만 2분기와 3분기 매출이 각각 5900만 원, 3억 원대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로 인해 주관사 책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증권업계 다른 관계자는 “롯데렌탈과 롯데쇼핑 또한 고평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각각 5만 9000원, 40만 원에 상장 강행했다가 현재 2만 원대, 7만 원대에 거래되는 상황”이라며 “아직은 롯데글로벌로지스 상장과 관련해 실무적인 절차에 들어가지 않아 세세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으나 공모가 선정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롯데그룹이 롯데글로벌로지스 IPO 계획을 중단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롯데지주가 메디치인베스트먼트로부터 롯데글로벌로지스 지분을 되사는 데 수천억 원을 들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롯데지주는 자금 여력이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자금도 호텔롯데 지분 확대에 집행해야 한다. 호텔롯데는 롯데그룹의 주력 사업 중 하나인 면세점과 호텔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롯데지주의 호텔롯데 지분율은 0.17%에 불과하다. 현재 호텔롯데 지분은 대부분 일본계 자본이 갖고 있다.
이와 관련, 롯데글로벌로지스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보며 적합한 시기에 IPO를 진행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