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조합원 공평 분배하고 종신고용·세습제 시행…최근엔 ‘가리비 대궐’ 눈총, 중국 금수 조치 타격도
#가난한 마을의 반격
사루후쓰무라는 인구 2700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주력 산업은 낙농, 그리고 어업이다. 흔한 시골 마을처럼 보이지만, 마을 주민의 평균 소득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바다와 가까운 주택 지역에는 어부들의 호화로운 저택이 즐비하다. 이른바 ‘가리비 대궐’로 불린다.
총무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사루후쓰무라 주민의 연간 평균 소득은 약 732만 엔(약 6530만 원)으로 지자체별 1인당 소득 랭킹에서 도쿄도 세타가야구를 누르고 전국 6위에 올랐다. 평균 소득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은 가리비 어부들이다. 사루후쓰무라는 일본 유수의 가리비 어획량을 자랑하는 데다, 품질이 뛰어나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절반가량은 냉동품이나 말린 관자로 중국 등에 수출된다.
주간겐다이가 공개한 이 지역 가리비 어부들의 수입은 놀라웠다. 20대 중반의 한 어부의 경우 “부업까지 합쳐 연 수입이 4000만 엔”이라고 한다. 또한, 홋카이도 도심 삿포로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어부들도 많아 가리비잡이가 없는 겨울 3개월 동안은 삿포로에서 느긋하게 보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이 줄곧 부자 마을이었던 건 아니다. 특히 1960년대 사루후쓰무라는 남획으로 어장이 황폐해지고 수산 자원이 고갈돼 힘든 시기를 보냈다. 전기가 마련된 것은 1970년대다. 위기에 몰린 어부들이 마을과 협력해 관리형 어업으로 전환을 꾀했다. 가리비 공동 기업체를 설립해 다 같이 가리비를 잡고 모두가 이익을 분배하는 방식이다.
가령 사루후쓰무라어협은 해역을 4구획으로 나눠 1년마다 구획을 바꿔 조업하는 ‘4륜체제’를 시작했다. 매년 많은 양의 치패(어린 조개)를 방류해 바닷속에서 4년간 기르고 가리비잡이 철이 되면 어획한다. 남획을 막는 동시에 생육이 진행돼 어획량을 유지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 어법은 다른 지자체에서도 본떠 시행 중이다. 그럼에도 사루후쓰무라의 소득이 높은 이유는 “평등을 중시하는 조직 만들기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78세까지 배당금 지급
보통은 가비리 어선의 주인인 선주가 선원을 고용하고, 선주 기준으로 벌이를 분배한다. 선원은 노동력이 싼 외국인 기능실습생을 쓰기도 한다. 반면, 사루후쓰무라에서는 어협 조합원들이 어선을 탄다. 그리고 어획으로부터 얻는 이익은 조합원 전원에게 공평하게 분배된다. 기존에 이익이 컸던 어부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이 획기적인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수입은 주로 연차와 그해 어협의 수익으로 결정된다. 기본 월급도 정해져 있어 누가 얼마를 버는지 대충 알게 된다. 일반 갑판원은 40만 엔, 기관사가 42만 엔, 선장은 45만 엔이다. 여기에 ‘증산수당’과 ‘배당금’이 붙는다. 증산수당이란 어협의 계획보다 어획량이 많을 경우 받는 것으로, 말하자면 보너스다. 배당금의 경우 5년 차가 되면 준조합원에서 정식 조합원으로 승격돼 78세까지 받을 수 있다. 60세 정년제 또한 사루후쓰무라 특유의 제도다. 환갑을 넘겨 고기잡이에 나서는 것은 신체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정년을 60세로 정하고, 이후 금액은 줄어들지만 78세까지 배당금을 받게 된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이 같은 연공서열이나 종신고용은 다른 어협에서는 보기 드물다”고 전했다. 회사에 비유하자면 정규직의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이에 대해 사루후쓰무라어협은 “과거 도와준 조합원들에게 보답하는 건 당연하다. 고령이 될 때까지 지탱한다는 생각으로 제도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조합의 수익이 소득으로 직결되므로 조합원들은 경영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어획고를 올리고자 한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중국으로의 가리비 수출은 확대일로를 걸었고, 어협의 인터넷 쇼핑몰 매출액도 증가세였다. 가리비 어부의 주머니는 부풀어 오르기만 했다. 증산수당도 배당금도 1000만 엔을 넘기며 40대 어부의 경우 연수입 3000만 엔은 당연해졌다. 풍어를 이룬 해라면 20대도 연수입 2000만 엔을 훌쩍 넘긴다.
당연히 이들의 권리는 굳건히 지켜지고 있다. 조합원의 후계자가 아니면 새로운 조합원이 될 수 없는 것. 요컨대 가리비 어부가 될 수 있는 것은 가리비 어부의 아들뿐이다. 고소득을 좇아 이주 희망자들이 줄을 잇는다지만, 세습제 때문에 그 소원은 이뤄지지 않는다. 한편 가리비 어부의 아들이라도 모두 가리비 어부가 되진 못한다. 가리비 어부가 될 수 있는 것은 친자나 양자 2명까지라는 규칙이 있기 때문. 형제가 3명이라면 1명은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한다.
#중국 금수 조치로 치명타
그러나 마을을 둘러싼 상황이 일변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해 주요 수출국인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을 전면 수입 금지한 것. 마을 내 수산사업 경영자는 “가리비가 망하면 마을은 끝장”이라며 위기감을 드러낸다. 더욱이 가리비 어부에 대한 세간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중국의 금수 조치에 따라 일본 정부는 9월 ‘수산업계에 긴급지원으로 1007억 엔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사루후쓰무라 가리비 어부들은 그동안 중국에서 실컷 돈을 많이 벌지 않았냐”며 불평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
사루후쓰무라어협 관계자는 “‘부유한 마을에 보조금 따위는 필요 없다’라는 불만 민원 전화가 오고 있다”며 “관련 정책이 발표된 9월, 10월에는 이른 아침부터 클레임이 쇄도해 전화로 욕설을 듣기도 했다”고 밝혔다. 주간겐다이는 “마을에서 취재하는 동안 많은 가리비 어부들이 ‘가리비 대궐’이라는 말을 불편해했다”고 전했다. 언론에 부자 마을로 소개된 후 조회수를 노린 유튜버들의 마을 방문도 잦다고 한다.
한 가리비 어부는 “마음대로 집 영상을 찍어 내보내는 것에 화가 난다. 신축된 집은 세련된 외관이지만, 내부는 아주 평범한 집이다. 부자라고 자랑해서 이득 볼 게 하나도 없다. 취재에는 별로 응하고 싶지 않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