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은 안 받고 공공기관은 문 닫아…대안으로 내놓은 ‘우체통’은 미흡
유효기간이 지났거나 변질·부패 등으로 사용할 수 없는 의약품을 ‘폐의약품’이라고 한다. 폐의약품 처리를 위한 분리배출이 시행된 지 약 15년째지만 아직까지 분리배출 참여도는 높지 않다. 지난 9월 발표한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따르면 ‘폐의약품 분리배출 인식 설문조사’결과 “폐의약품 분리배출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시민은 60.1%였다.
하지만 “분리배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시민은 36%에 그쳤다. 분리배출을 알고 있는 시민 중 폐의약품 분리배출을 실천하지 않은 이유로 82.6%가 “귀찮고, 분리배출함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40대 직장인 A 씨는 “분리배출해야 하는 건 알고 있지만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잘 모르기도 하고 찾아보기 귀찮아서 그냥 쓰레기봉투에 버린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폐의약품을 분리배출하지 않고 변기에 버리거나 종량제 봉투로 배출하면 환경오염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박정임 순천향대학교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약은 다른 말로 하면 독성 화학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며 “화학물질이 본래의 목적이 아닌 의도치 않은 다른 곳(환경)에 적용될 때는 생태계나 토양, 환경 등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이어 “약품에 의해 호르몬 교란이 생겨 물고기들이 성비가 바뀐 사례도 있다”며 “나중에는 돌고 돌아 사람에게 영향이 올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소비자원 안전감시국 식의약안전팀 관계자에 따르면 “폐의약품이 무분별하게 버려질 경우 토양·수질오염이 발생하고 지속적인 항생물질 노출로 다제내성균(내성을 가진 병균, 슈퍼박테리아를 의미)의 확산을 초래할 수 있다”며 “오염된 의약물질이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연구결과가 지속적으로 보고 된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폐의약품 분리배출 방법은 동네 약국이나 주민센터, 구청, 보건소 등에 있는 ‘폐의약품 수거함’에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폐의약품 수거함은 운영시간 외에 이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약국에서는 폐의약품 수거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폐의약품을 거두는 일이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폐의약품 수거함에 대해 D 약국의 약사는 “이제 약국에서 (폐의약품을) 수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S 약국의 약사는 “(폐의약품을) 받을 수 있지만 우리도 받아서 주민센터에 전달하는 시스템”이라며 “보건소나 주민센터에 가면 수거함 있다”고 전했다.
50대 주부 B 씨는 “약국에 가서 버리려 했는데 안 받는 곳이 있더라”며 “공공기관이나 약국에 (약을) 버리는 것도 좋지만 집 아래 폐건전지함처럼 폐의약품 수거함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폐의약품을 회수하기 위해 우정사업본부 등과 손잡고 지난 7월부터 우체통을 활용해 수거하기로 했다. 현재 사용되는 우체통을 보면 ‘「폐의약품」우체통 회수’라고 적혀있는 스티커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폐의약품 전용 회수봉투 또는 일반 종이봉투 겉면에 ‘폐의약품’을 표기해 알약이나 가루약을 넣고 밀봉해 넣으면 수거 작업이 진행된다.
기후환경본부 자원순환과에서 우체통을 활용한 폐의약품 수거 효과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23년 7월부터 약 3개월간 폐의약품 수거량이 전년 동기 대비 약 32% 증가했다. 우체통 수거 실적은 7월 212kg, 8월 426kg, 9월 433kg이다. 월별 실적은 증가 추세지만 증가폭은 둔화하고 있다. 동아제약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에서 2018년 발생한 폐의약품은 4690톤으로 추정된다. 이점을 감안하면 폐의약품 회수 실적은 미미한 수준이다.
우체통 전체 숫자가 되레 감소하고 있어 둔화세이 장기화 가능성도 있다. 우정사업본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체통 개수는 1993년 약 5만 7000개에서 2020년 약 1만 개로 크게 감소했다. 우체통은 지금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모습이다. 기자가 ‘지도’ 어플로 확인한 우체통을 찾아갔을 때 이미 사라진 우체통도 있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약국이나 공공기관, 우체통은 폐의약품을 수거하는데 하나의 거점일 뿐”이라며 “이들은 단순히 도와주는 역할이고 지자체 소관 업무다”고 말했다. 이어 “수거량을 늘리려면 각 지자체에서 더 많은 관심과 책임을 갖고 일을 처리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양휴창 인턴기자 didgbck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