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병 돌기가 암컷 겉날개 돌기와 닮아…수컷들 헛되이 힘쓰다 탈진하거나 죽어
하지만 간혹 수컷의 이런 구애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바로 황갈색을 띠는 빈 맥주병이다. 맥주병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고 짝짓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런 희한한 광경을 처음 목격한 사람은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대릴 그윈과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의 데이비드 렌츠였다. 1981년, 호주에서 현장 조사를 하고 있던 두 곤충학자들은 어느 날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몇몇 ‘보석 딱정벌레’ 수컷들이 안쓰럽게도 버려진 황갈색 맥주병과 짝짓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게 아닌가. 이에 둘은 맥주병을 집어들고 딱정벌레들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곤충들은 병에 딱 달라붙어서는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학자들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맥주병마다 여러 마리의 수컷들이 달라 붙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호기심이 발동한 둘은 즉시 간단한 실험을 진행했다. 주변에 있던 자동차 운전자들이 길가에 던지고 간 빈 맥주병을 땅 위에 놓아둔 후 과연 딱정벌레들이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많이 달려드는지 관찰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두 개의 맥주병에 총 여섯 마리의 수컷이 달려들었다.
그렇다면 대체 딱정벌레들은 왜 맥주병에 집착하는 걸까. 햇빛에 반짝이는 갈색 병을 자세히 살펴보자 답은 명백했다. 맥주병 바닥 부근에 있는 작은 고리 모양의 돌기가 햇빛을 받으면 암컷 겉날개의 돌기 모양과 비슷하게 보여 혼동하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진화의 덫’이라고 부른다. 이는 인간 활동에 의한 환경 변화로 인해 서식지 환경이 열악해질 때 발생한다. 이로 인해 동물들의 개체수는 급격히 감소하고 심지어 멸종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보석 딱정벌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맥주병을 암컷으로 착각하는 수컷 딱정벌레는 헛된 노력 끝에 결국 기아나 탈진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심한 경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실제 그윈과 렌츠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수컷들은 탈진해서 병에서 스스로 떨어지거나, 혹은 개미와 같은 포식자의 먹이가 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사실을 알게 된 호주의 맥주 회사들이 맥주병의 디자인을 바꿨다는 점이다. 덕분에 이제는 더 이상 딱정벌레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은 돌기 같은 건 없다고. 출처 ‘어뮤징플래닛’.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