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까지 최초 청구고객에 6개월간 지급” 방안 발표…발달지연아동 부모들 “대국민사기극”
지난 10월 2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정무위원회 소속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성재 현대해상 대표이사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좌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성재 대표는 “당사가 (발달지연 치료비) 청구 건이 가장 많고 지급 보험금도 현격하게 늘다보니 과거에는 이슈가 아니었던 민간치료사가 이슈가 돼서 지급 심사 기준에 차이가 생겼다”며 이같이 말했다.
어린이보험 점유율 업계 1위인 현대해상은 앞서 지난 5월 발달지연 아동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민간치료사에 의한 치료는 실손 의료보험 지급 대상이 아니라 밝히며 보험금 지급 기준을 강화했다. 기존 진료비 영수증과 진료세부내역서만 제출하면 발달지연 치료비 관련 보험금을 지급해 왔으나 이후에는 치료사 자격증 번호가 적힌 서류 등을 요구하는 등 관련 서류를 강화해 심사를 진행했다. 이에 기존에 현대해상에 가입해 발달지연 관련 치료비를 받아왔던 아동 부모들 중 더 이상 치료비를 받지 못하는 부모들이 생겨나며 논란이 됐다.
논란이 지속되자 국회에서는 지난 10월 현대해상 대표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시켜 이 점을 물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증인 출석 예정일 전날 이성재 대표가 강훈식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보험금 청구 건에 대해 우선적으로 지급하며 고객 분들께 안내해 나가겠다” 약속하면서 논란이 봉합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지난 11월 29일 현대해상이 보험금 지급 방안을 공개하며 또 다시 갈등이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대해상은 이날 강훈식 의원실, ‘발달지연아동권리보호가족연대(가족연대)’ 등과 만난 자리에서 발달지연 치료비 보험금 지급 기준을 밝혔다. 이날 현대해상이 제시한 지급 기준은 ‘6개월 유예기간’, ‘최초 청구 고객’이다. 민간자격자에게 치료를 받고 상세불명의 발달지연 코드로 최초 보험금을 청구하는 고객에게 먼저 정상적인 의료기관에 대한 안내를 실시하고,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보험금 지급 기한은 이달 1일부터 내년 4월까지 최초 청구 고객으로 한정한다. 내년 4월 최초 청구 고객의 경우 내년 10월까지 보장한다. 즉, 기존에 발달지연 치료비를 청구해서 받은 이력이 있거나 보험금 지급 문제로 어려움 겪은 부모들은 대부분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가족연대는 “이는 앞서 현대해상 이성재 대표가 강훈식 의원과의 좌담회를 통해 약속한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며 “이날도(11월 29일) 현대해상은 ‘가족연대 및 의원실, 금융감독원까지도 지급 기준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없다. 우리는 협상을 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고 일방적 통보만 받았을 뿐”이라며 분개했다.
또 현대해상의 발달지연 치료비 관련 보험금 지급율이 98%를 넘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송수림 가족연대 공동대표는 “상반기에는 5월 18일 알림톡 이전에는 기존대로 지급했고 5~6월까지도 지급이 이뤄졌다. 7월 이후 자료를 봐야하는 것”이라며 “금융감독원이 지난 8월 현대해상에 약관상 보험금 청구 시 필요한 서류를 제외하고 다른 서류는 고객에게 요구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여전히 치료사의 자격 번호를 내라고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해상은 국정감사 증인 출석 예정일 전 좌담회에서 이성재 대표가 말한대로 세부방안을 마련해 지급하는 것이란 입장이다. 현대해상 측은 “자정 노력을 해 준 의료기관과 환자 보호자들, 협조해 준 민간자격자분들의 혼선을 방지하고 현재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선의의 고객을 보호하고자 6개월의 유예기간을 결정했다. 당사 보상 정책의 변경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고객 분들께 안내해 나가겠다’ 말한 대로 전원할 때까지 민간자격증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지급하겠다는 것이고 추후 세부방안을 수립해 발표하겠다고 한 대로 이번에 ‘최초 청구자’라는 자격과 ‘6개월’이라는 유예기간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발달장애 아동이 늘어나면서 불법으로 병원과 연계한 발달센터에서 민간자격자에게 치료를 하는 경우가 다수 생겨나고 있다. 이로 인한 부작용과 피해를 막기 위해 지급 심사를 강화했다는 것이 현대해상 측의 얘기다. 현대해상에 발달지연으로 청구한 피보험자의 약 90%는 병·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의원 기준 2021년 4429명에서 지난해 7130명으로 60.98% 늘었다. 올해 들어선 8월까지 9257명으로 지난해 전체 피보험자수를 넘어섰다.
앞의 현대해상 관계자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의료기관에 대해서 시정 요청 및 보건소에 행정 신고 등을 통해 대응을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가족연대 측은 “보험계약자는 병원의 불법적인 내부 계약 관계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이 없다”며 “현대해상에서 불법 브로커병원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쟁점은 또 있다. 현대해상은 국가자격증이 없는 민간 자격 치료사의 의료행위는 불법이라며 치료사 자격번호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미술‧놀이치료와 관련한 국가자격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분야는 대학원을 마친 후 민간자격증을 취득해 발달센터 등에 미술‧놀이치료사로 취업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이들 자격증을 국가자격증화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회에서도 이러한 내용으로 법안을 발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강훈식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민간자격증의 국가자격화를 법안 발의해 통과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한 국회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발달장애인 판정을 받지 않은 발달지연아동을 위한 국가적 지원은 없는 상황이다. 근본적으로는 이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치료 프로그램이나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발달지연 및 발달장애 가족들은 입을 모은다. 당장 지원이 어렵다면 사보험을 통해서라도 국가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정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정책실장은 “현재 지자체에서 출산장려 정책으로 태아보험을 들어주는 제도가 꽤 활성화 돼 있다. 국가가 당장 발달지연 아동을 위한 정책이나 지원이 어렵다면 민간 재원을 동원해서라도 정부가 보전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