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부모들 “갑작스런 통보로 앞길 막막”…현대해상 “지급율 98% 넘어”
‘발달지연아동권리보호연대’ 등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에 따르면 현대해상은 지난 5월부터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치료비 등 보험금 심사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현대해상은 당시 보험 가입자들에게 발송한 알림톡에 “일부 의료기관에서 수익을 위해 정상 범주의 아이에게도 발달지연이라는 과잉 진단을 내리고 부모님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장기 치료를 유도하거나 월‧분기 단위로 진료비 선결제를 강요한 사례가 언론보도 됐다”며 “일부 발달센터는 의사의 직접 관여 없이 민간치료사들이 치료를 전담하면서 실손보험금 청구를 위해 진료비 서류를 불법으로 발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해상을 비롯한 손해보험 업계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발달지연 치료 실비 청구 건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브로커가 개입한 것이 아닌지 의심, 심사 기준을 강화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은 발달 적기에 적절히 치료하면 발달장애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발달지연이란 아이의 나이가 더해가면서 선천적‧후천적 다양한 요인으로 정신적·사회적·기능적 발달이 지연되는 것을 말한다. 의료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영향으로 외부 접촉이 줄고 마스크 사용 기간이 늘면서 발달지연 아동이 크게 늘었다. 지난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발달지연으로 진료를 받은 0~19세 아동‧청소년은 12만 6183명이었다. 2018년 6만 4075명에서 4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올해 7월까지 이미 10만 명 넘게 치료를 받았다.
특히 0~5세 영유아의 발달지연은 지난해 기준 발달지연 전체 연령의 약 70%(8만 1430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0~3세가 5만 1217명으로 가장 많았고, 4~5세가 3만 213명, 6~9세가 2만 9070명, 10~19세 1만 5683명 등의 순이었다. 4∼5세의 경우 2018년 대비 2.3배로 가장 크게 늘었고, 6~9세도 2.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발달지연 관련 실손보험금 지급액도 늘어났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현대해상‧삼성화재‧DB손해보험‧메리츠화재‧KB손해보험, 5개 손해보험사가 최근 5년간 지급한 발달지연 관련 실손보험금은 2018년 190억 5800만 원에서 지난해 1185억 800만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에 어린이보험 점유율 업계 1위인 현대해상이 지난 5월 민간 치료사의 발달지연 치료 비용은 실손 의료보험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밝히는 등 보험금 지급 기준을 강화하자 부모들은 매달 수백만 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송수림 발달지연아동권리보호연대 공동대표는 “대학병원을 제외한 의원에서 운영하는 치료센터는 실비 지원을 안 해주겠다고 하는데 대학병원은 진료 대기만 1년 넘게 기다려야 하고 진료 후 치료센터 대기는 2~3년이 걸리기도 한다”며 “발달지연은 대부분 만 36개월에 검사를 통해 판정받고 만 7세까지 치료가 이뤄지는데 대기만 하다 치료시기를 놓친다”고 말했다.
발달지연아동권리보호연대에 따르면 발달지연 아동이 받는 치료는 언어치료‧감각통합치료‧놀이치료‧인지치료 등이 있다. 발달지연 아동은 통합적인 치료가 필요해 중복으로 2~3가지씩 일주일에 2회 이상 치료를 받는데, 한 치료 당 평균 8만~12만 원의 비용이 든다. 만약 네 가지 치료를 주 2회씩 모두 받는다면 200만~300만 원이 든다고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은 얘기한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1~2가지 치료만 받는데, 그렇다 해도 매달 치료비는 100만~2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국가 지원책은 전무한 상황이라 부모들은 그동안 개인적으로 가입한 실손보험에 의지해왔는데 이마저도 어려워진 것이다.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에 따르면 계약 당시 약관에는 발달지연 관련 지급 기준 등이 명시돼 있지 않았다. 기존에는 진료비 영수증과 진료세부내역서만 내면 발달지연 치료비 관련 보험금을 지급해왔는데, 5월 이후 치료사 자격증번호가 적힌 서류 등을 요구하며 지급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송수림 대표는 “현대해상은 약관을 변경한 것도 아니고 알림톡 발송 통해 안내해준 것뿐”이라며 “의사의 진단하에 실시하는 놀이치료인데도 놀이치료사는 국가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비 지급을 안 하겠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말 현대해상에 어린이 실손보험의 약관에 규정된 보험금을 지급하고, 약관상 보험금 청구시 필요한 서류를 제외하고 다른 서류는 고객에게 요구하지 말라고 지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해상은 현재 발달지연 치료비 관련 보험금 지급률이 높다며 대학병원에서 이뤄진 진단만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현재 (발달지연 치료비 관련) 보험금 지급률이 98% 넘어가는데 대학병원 진료만 인정해준다면 보험금 지급률이 98%를 넘을 수 있겠냐”며 “처음에는 의료법에 해당하는 분들에 의해 이뤄진 치료만 인정하겠다 했으나 판례 등을 확인한 후 의사 주도하에 이뤄지는 치료에 대해서 모두 지급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발달지연 아동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2배 증가했는데 관련 보험금 지급액이 2018년 약 98억 원에서 지난해 697억 원으로 4년 만에 7배가량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심사를 강화하는 것은 보험사 고유의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현대해상을 제외한 실손보험사들은 현재는 발달지연 치료비 지급 관련 심사를 강화하지는 않고 있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일괄적으로 심사를 강화할 계획은 없지만 치료 적정성 여부 심사를 강화할지 여부는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 이슈로 발달지연 치료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보험 브로커들이 발달지연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도 있어서 손해보험 업계 전반에서 문제의식은 있는 상황”이라며 “급작스럽게 증가하니까 면밀히 살펴보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고 전했다.
발달지연 아동을 진단‧치료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부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하는 발달센터와 거기서 발생하는 부당한 실손 진료비 청구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도 이를 보험사에서 알고 있었다면 실비 보상에 대한 표준안을 만들고 가입자에게 안내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이를 이유로 갑자기 일방적으로 지급을 거부하는 것을 보험상품 가입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 말했다.
대한소아청소년 행동발달증진학회는 탄원서에서 “발달지연 아동에게 발달지연을 만회할 시간은 한정적”이라며 “치료시기를 놓친다면 그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근본적으로는 개인이 사보험에 기대 발달지연 치료를 할 것이 아니라 국가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은미 오름벗 특수교육대상자학부모연합회 회장은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은 어디서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전부 스스로 찾아보고 주변에 수소문해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발달지연 아동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과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수림 발달지연아동권리보호연대 공동대표는 “미국‧일본‧영국 등 해외에서는 발달지연 아동 판정을 받으면 국가에서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을 짜서 부모에게 (치료 계획을) 브리핑 해주는 구조라고 한다”며 “우리나라는 병원이 어디 있는지도 전부 부모가 찾아봐야 하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교육받아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국가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