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 사운 건 5개월 협상 마무리…멤버 ‘개별 활동’ 협의 남은 데다 ‘베이비몬스터’와의 균형 숙제
YG엔터로서는 가장 강력한 IP(지식재산권)로 통하는 블랙핑크와 다시 손을 잡았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있다. 먼저 이번 재계약이 ‘그룹 활동’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멤버들의 개별 활동에 대해서는 아직 방향이 뚜렷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룹으로 활동할 때는 YG엔터 소속이지만 개별은 각자 다른 회사를 통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른 ‘따로 또 같이’ 활동이 그룹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YG엔터 입장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YG엔터, 완전체 활동 재개 착수
블랙핑크의 멤버 지수와 제니, 로제, 리사는 YG의 연습생으로 발탁돼 오랜 기간 훈련을 거쳐 지난 2016년 4인조 그룹으로 데뷔했다. 시작부터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K팝의 성장을 이끌었고 최근 1년 동안 진행한 월드투어 콘서트로 약 2억 6000만 달러(약 3411억 원·투어링데이터 집계)에 이르는 매출을 달성하는 톱 그룹으로 성장했다. 방탄소년단(BTS)을 제외하고 그 어떤 그룹도 이루지 못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7월 말 YG엔터와 전속계약 기간이 만료된 블랙핑크의 거취는 국내는 물론 해외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보통 전속계약 만료 직후 스타들은 소속사 잔류 혹은 이적에 관한 사안을 발표하지만 블랙핑크와 YG엔터는 입을 닫았다.
YG엔터는 “신중하게 협의하고 있다”는 답변 외에 극도로 말을 아꼈다. 그야말로 ‘사운’이 걸린 사안이기에 전속계약 만료 이후 5개월이 지날 동안 협의와 협의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멤버들을 설득하고 앞으로 그룹 활동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서 결국 ‘완전체 그룹 활동 재계약’을 이끌어 냈다.
YG엔터는 12월 6일 “소속 아티스트 블랙핑크 멤버 4인 전원의 그룹 전속계약 체결의 건에 대한 이사회 결의를 완료했다”고 공시했다. 블랙핑크를 발굴하고 7년 동안 글로벌 그룹으로 성장시킨 YG엔터의 수장 양현석 총괄 프로듀서도 입장을 내고 “앞으로 블랙핑크는 자사를 대표하는 것은 물론, K팝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세계 음악 시장에서 더욱 눈부시게 빛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YG엔터는 이번 재계약 이후 블랙핑크의 신규 앨범 발매와 월드투어 공연을 추진한다고 알렸다.
#월드투어 가능한 '유일한 걸그룹'
블랙핑크와의 재계약에 YG엔터의 명운이 엇갈린 데는 이유가 있다. 현재 YG엔터의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기 때문. 설립 이후 YG엔터가 거대 엔터기업으로 팽창하도록 이끈 그룹 빅뱅이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논란과 부침을 겪었고, 현재 멤버들 모두 YG엔터를 떠난 상태다. 가장 마지막까지 YG엔터에 잔류했던 지드래곤(GD·본명 권지용) 역시 최근 AI(인공지능) 관련 기업으로 이적을 준비하고 있다.
YG엔터에게 블랙핑크는 회사의 매출을 좌우하는 ‘슈퍼 IP’이자, 회사를 상징하는 존재다. 트레저 등 후발 그룹을 내놓았지만 어디까지나 빅뱅이나 블랙핑크의 저력에는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YG엔터 안팎에서 블랙핑크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더욱이 블랙핑크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전 세계 월드투어를 진행할 수 있는 ‘유일한 걸그룹’으로 꼽힌다. 재계약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내외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일까. 블랙핑크와의 그룹 활동 재계약 사실을 공개한 직후 YG엔터 주가는 상승을 거듭했다. 12월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6일 YG엔터는 전날 대비 1만 2300원(25.63%) 오른 6만 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기관과 개인이 각각 62억 7300만 원, 49억 400만 원어치를 순매수하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시장이 블랙핑크의 재계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실하게 드러낸 수치다.
덕분에 YG엔터의 최대 주주인 양현석 프로듀서도 오랜만에 웃었다. YG엔터 지분 315만 1188주(16.87%)를 보유한 양 프로듀서는 이번 주가 급등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었다. 재계약 발표 전인 5일 종가 4만 8000원으로 계산한 양 프로듀서의 지분가치는 1512억 5702만 4000원. 하지만 6일 기준 387억 5961만 2400원이 불어난 1900억 1663만 6400원이 됐다. 재계약 발표만으로 단번에 387억 원을 벌어들였다.
#'완전체' 경쟁력 유지 고민
블랙핑크와의 재계약으로 중요한 고비는 넘겼지만 사실 YG엔터로서는 넘어야 할 산이 산적해 있다. 당장 그룹 활동 외에 멤버들의 개별 활동에 대해서는 마무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YG엔터는 블랙핑크의 ‘완전체 그룹 재계약’을 발표하면서도 멤버들이 최근 더욱 집중하는 개별 활동에 관해서는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가요계에서는 블랙핑크가 음반 발표와 공연 등 그룹 활동은 YG엔터와 진행하지만 그 외 솔로 앨범이나 연기 활동을 포함한 해외 프로젝트는 개별 회사를 통해 이뤄갈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멤버 4명이 솔로 앨범을 통해 성과를 거두면서 개인 활동에 자신감을 얻었고, 각자 샤넬과 디올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앰버서더로 활약하는 ‘위치’에 올라 있다. 때문에 원하는 활동의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이런 가운데 멤버 제니와 지수는 1인 기획사를 설립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이들은 음악 활동뿐 아니라 연기자로도 욕심을 내고 있다. 지수는 드라마 ‘설강화’로 연기를 시작해 지난여름 개봉한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을 통해 스크린에도 진출했다. 공공연하게 드라마와 영화 출연에 의욕을 보이고, 제작진으로부터 다양한 러브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제니 역시 미국 HBO드라마 ‘디 아이돌’의 주연을 맡아 연기자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 이에 더해 태국인 멤버 리사는 해외 엔터테인먼트사와 손잡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만약 이들이 지난 7년 동안 집중적으로 해왔던 그룹 활동보다 각자 원하는 방향에서 움직인다면 ‘완전체 그룹 체제’의 경쟁력에도 변화가 미칠 수 있다. YG엔터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한쪽에선 YG엔터의 신규 그룹 베이비몬스터의 존재가 블랙핑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꺼낸다. 11월 27일 YG엔터는 새로운 걸그룹 베이비몬스터를 내놓았다. 블랙핑크 이후 YG엔터가 7년 만에 선보이는 신인 걸그룹으로 양현석 프로듀서가 직접 기획과 제작을 맡아 첫발을 내디뎠다.
베이비몬스터는 출발부터 고무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의 반응이 뜨겁다. YG엔터로서는 베이비몬스터를 블랙핑크를 잇는 글로벌 K팝 그룹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지원을 쏟아 붓고 있다. 블랙핑크와 재계약을 마무리한 만큼 앞으로 베이비몬스터 지원에 더 집중할 가능성도 크다. 블랙핑크와 베이비몬스터 사이에서의 균형감 역시 YG엔터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