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백현동?’ 자연녹지서 4단계 종상향 추진 부담…인접 부지 정치인 부동산 특혜 의혹 불거질 가능성도
재단법인 세종연구소는 외교부 소관 국가정책연구재단이다. 1983년 12월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순직자 유가족을 위한 장학재단으로 설립됐다. 설립 초기 재단 이름은 ‘일해’였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의 호다. 일해재단 설립 과정엔 내로라하는 재벌들이 참여했다. 5공 비자금 마련을 위한 경제인 갈취 목적 재단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일해재단은 두 차례 개명 절차를 거쳤다. 1987년 일해연구소를 거쳐 1988년 세종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국판 헤리티지 재단을 모토로 국가정책을 연구하는 집단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름이 세종연구소로 바뀐 뒤 첫 이사장은 고 정주형 현대그룹 회장이었다.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정부적 성향 인사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외교, 안보, 국방 등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이들이 외교국방통일정책 싱크탱크 격 재단 수장으로 추대됐다.
문재인 정부에선 문정인 전 청와대 외교안보특보가 세종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던 박준우 전 벨기에유럽연합 특명전권대사가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이명박 정부는 3선 의원 출신 권철현 국민의힘 상임고문을 세종연구소 이사장으로 앉혔다. 윤석열 정부에선 이용준 전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가 세종연구소 이사장직을 맡았다. 이 이사장은 공석인 국정원장 하마평에도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세종연구소 이사장들은 정권 성향에 따라 바뀌었다. 그러나 전·현직 이사장들은 세종연구소 경영 정상화를 위한 공통된 목표가 있었다. 바로 세종연구소 부지 매각이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228-3 외 14필지가 매각 대상 부지다. 전체 부지에서 국유지를 제외한 대지면적은 5만 7210㎡(약 1만 7336.4평)다. 매각을 할 경우 토지 가격은 수백억 원 대를 호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사장들이 토지 매각에 나섰던 이유는 간단하다. 2000년 이후 적자가 지속해서 누적되고 있는 까닭이다. 2005년 이후엔 골프연습장 및 러시아 부동산 개발 등에 투자했다가 160억 원이 넘는 손실을 보기도 한 것으로 파악된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세종연구소 경영 정상화 유일한 활로는 토지 매각밖에 남지 않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토지 매각 절차는 세 차례나 좌절됐다. 2006~2007년에 세종연구소는 처음으로 부지 매각을 추진했다. 그러나 소관 정부부처인 외교부가 ‘불가’ 의견을 냈다. 2009년엔 외교부가 세종연구소 토지 매각을 승인했다. 그러나 지자체인 성남시가 난색을 표했다. 성남시가 세종연구소 부지를 개발행위 제한구역으로 지정하면서 매각이 무산됐다. 성남시는 제3자에게 토지가 매각되더라도 자연녹지 대지에 맞는 공공업무시설 외 사용 불가 방침을 통보했다.
세종연구소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8년 9월 재정난 극복을 목적으로 연구소 부지에 대형복합건물을 지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세종연구소는 성남시에 교통영향평가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4년차인 2021년, 문정인 전 이사장이 세종연구소 수장이 됐다. 문 전 이사장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경영난을 타개하려다 된서리를 맞았다. 대형 아울렛 기업에 초장기 임대 계약을 추진하다 논란 중심에 섰다. 최장 90년 임대계약 이후 대형복합건물을 짓고, 해당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로 세종연구소 경영난을 해결하겠다는 취지였다.
잡음이 많았다. 세종연구소가 임대 계약에 앞서 성남시에 부지 용도를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 상향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왔다. 당시 성남시장은 은수미 전 시장이었다. 그 과정에서 세종연구소에 ‘이재명 성남시’ 출신 인사가 종상향 관련 실무를 추진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제2의 백현동’이라는 비판론이 제기됐다.
백현동 의혹 중심에 있는 부지가 공공기관이었던 한국식품연구원 11만㎡ 규모 부지라는 점, 자연녹지지역이 준주거지로 4단계를 건너 뛴 종상향이 됐다는 점 등이 회자됐다. 세종연구소 부지 장기 임대계약 절차 과정 각종 요소들이 ‘백현동 의혹 닮은꼴’이라는 기류가 형성됐다.
여기에다 문 전 이사장이 자신의 사임이 의결된 2023년 3월 14일 대형 아울렛 업체와 임대 계약을 체결한 것도 논란이 됐다. 외교부 승인을 건너뛰고 계약부터 진행해 도마에 올랐다. 일련 과정을 진행한 인물로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꼽혔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세종연구소개발위원장직을 겸하며 부지 장기 임대 계약 추진 핵심이란 평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문 전 이사장이 추진한 장기 임대계약은 외교부 승인 없이 체결된 까닭에 효력을 상실했다. 세종연구소 부지와 관련한 숙제 바통은 이용준 신임 이사장으로 넘어갔다. 이 이사장도 부지 매각 절차에 돌입했다. 11월 세종연구소는 부지 매각 추진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매각 주관사로는 삼일 PwC가 선정됐다.
지역 부동산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세종연구소 부지는 판교와 분당 접점에 위치한 요충지라는 평가다. 제2판교 테크노밸리, 제3판교 테크노밸리 등과 인접해 향후 사업성이 뛰어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여기다 인접 지역에 고등공공주택지구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호재를 품고 있는 예정 지구 정중앙에 세종연구소 부지가 위치해 있다.
뛰어난 강남 접근성이 주목받는다. 세종연구소 부지는 성남에서 강남구 내곡동을 진입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성남시 내에서도 요충지로 주목받는 입지에다, 강남 접근성까지 갖춘 부지 매각 흥행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문제는 종상향 여부다. 지역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세종연구소 부지는 종상향이 이뤄질 경우 가격이 몇 배는 뛸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서 “그런데 백현동 의혹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종상향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세종연구소 부지 매각은 ‘종상향 없는 매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기존 4000평 규모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거나, 종상향이 필요없는 시설로 이용할 주체에 부지를 매각하려는 계획이 구체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종상향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부지가 매각되더라도, 부지를 매입하는 쪽 입장은 다를 수 있다”면서 “부지를 매입한 뒤 종상향을 추진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종상향 이후 본격 개발을 추진할 경우 반경 2km 이내에 인접한 서울공항으로 인해 국방부에 별도 인가를 받아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면서 “세종연구소 부지가 ‘노른자’로 꼽히지만, 실제 매각에 선뜻 나설 수 있는 주체가 많지 않은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변수는 또 있다. 세종연구소 부지 매각이 본궤도에 오를 경우 인접 부지를 둘러싼 각종 특혜 의혹이 불거질 가능성이다. 지역 관계자에 따르면 세간에 알려져 있지 않은 전·현직 유력 정치인 및 가족들이 보유한 부동산 자산이 세종연구소 인근에 적지 않다는 소문이 도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혀 예상치 못한 ‘화제의 인물’들이 세종연구소 부지 매각으로 이득을 볼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후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상당히 매력적인 부지임에는 틀림없지만, 개발 과정에서 상당한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점과 개발 관련 특혜 시비 구설수가 일 수 있는 다양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면서 “전 정부에 이어 현 정부도 부동산을 매각하고 세종연구소를 정상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너무나도 다양한 이슈들이 얽혀 있어 실제 매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라고 바라봤다.
이 관계자는 “세종연구소는 사실 사활을 걸고 부지 매각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현재 세종연구소 자금난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이 상태로 3년 이상을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