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분양사업 민간 개방·전관 취업 규제 강화…일각서 “주거비 상승” 우려, 법 개정 어려움도 따를 듯
#LH 공급 독점 깬다는 국토부
지난 4월 29일 인천광역시 검단신도시에 있는 검단 안단테 공사 현장의 지하 주차장 1층과 2층의 슬래브(철근 콘크리트 건물 바닥)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검단 안단테는 1666세대 규모 공공분양주택이다. 붕괴 면적은 약 968㎡로 파악됐다. 늦은 시각에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없었다. 사고 여파로 재시공이 결정됐고 입주는 무기한 미뤄졌다.
5월 9일 국토부는 건설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를 꾸렸다. 10명의 건축전문가가 약 두 달 동안 정밀조사를 실시했다. 7월 5일 국토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하 주차장 32개 기둥에 전단보강철근이 들어가야 하지만 15곳에서 철근이 누락된 것이 확인됐다. 철근이 빠진 곳에 하중이 집중되면서 붕괴 현상이 발생했다.
이후 국토부는 LH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91개 단지의 철근 누락 여부를 전수조사했다. 그 결과 15곳에서 전단보강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나타났다. 무량판 구조 건물에는 기둥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전단보강근을 충분히 설치해야 한다. 당시 국토부는 시공사의 부실시공, 건축사와 구조기술사 간의 구조계산 오류, 감리 부실 문제, 전직 LH 직원의 로비 등을 철근 누락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러한 조사를 토대로 국토부는 12월 12일 LH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LH의 공공분양사업은 민간에 개방된다. 공공분양은 LH가 택지를 개발해 사업자에게 분양하거나 주택을 건설해 수요자에게 공급하는 사업을 말한다. 국토부는 민간기업과의 경쟁을 통해 공공분양주택 품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공분양사업 민간개방이 실행되면 공공주택 지구 조성과 택지 개발사업 등 토지 업무는 LH가 담당한다. 주택분양 사업은 민간에 개방된다. LH가 주택분양 사업을 시행할 경우 설계·시공사 선정 절차를 조달청에 위탁해야 한다. 선정된 업체는 용역 수행을 관리하는 일만 할 수 있게 된다.
국토부는 철근 누락 사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던 전관예우 문제 등에 대해서도 대책을 내놨다. 우선 LH 퇴직자의 재취업 문턱이 높아진다. 국토부는 재취업 심사 대상자를 현재 2급(부장급) 퇴직자에서 3급(차장급) 퇴직자로 확대했다. 2급 이상으로 퇴직한 직원이 퇴직한 지 3년 안에 재취업한 업체는 LH 발주 사업 입찰이 원천 제한된다. 철근 시공 불량 등 주요 안전 항목을 위반한 업체는 일정 기간 LH 사업 수주를 제한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도 도입된다.
#서민 주거안정 해칠 수도
혁신안 발표 직후 LH의 공공임대주택 공급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공공임대주택은 서민들에게 소액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민간건설사가 공공주택 공급에 참여하면 분양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 분양가격이 상승하면 서민들이 공공임대주택 거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서민 주거안정이라는 제도의 취지가 훼손되는 셈이다.
국토부는 민간건설사와의 경쟁체제 구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주택의 안전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국토부 조사 결과 LH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단지 15곳에서 철근 누락이 발견됐지만, 민간건설사가 건설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조사를 근거로 국토부는 민간건설사 아파트의 안전성이 더 높다고 판단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밝히지 않았지만, 임대료 상승 역시 억제할 수 있다고 했다.
국토부는 경쟁체제가 효과적일 경우 LH의 주택건설 기능을 민간에 이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들은 기자간담회에서 “민간이 시행하는 것이 LH가 주로 공급하는 도급 방식보다 효과적이고, 품질 면에서, 국민 입장에서 좋다면 LH는 주택건설사업에서 손을 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서민 주거비 대책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주거 문제의 핵심은 주거비 부담인데 공공이 안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며 “민간은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임대료가 비싸진다. 청년들이나 서민들이 (공공이 공급한 주택에) 못 들어가는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 소장은 “(국토부는) 민간건설사에서 철근 누락이 없었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고 한다. 그러나 LH의 경우에도 발주는 LH가 했고 시공은 GS건설이 했다”며 “사고는 민간건설사에서 발생한 것인데 LH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효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도 “LH가 민간건설사에 택지 매각을 할 때 조성 원가로 할 것 같다”며 “저렴한 조성원가로 받고 민간 개발사는 (시장가격으로) 분양하게끔 한다는 것은 사실상 공공주택을 민간이 공급하게끔 하는 민영화 수순을 밟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간사는 “국토부에서는 민간 무량판 구조 단지에서는 부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광주 아이파크 사고 등 민간건설사에서 계속 산재가 발생하고 있다”며 “무량판 구조에서만 철근 누락이 없었다는 것으로 민간 아파트가 더 튼튼하고 안전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여경희 부동산 114 수석연구원은 “(혁신안이) 건설업계를 투명하게 하고 어느 한쪽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다”며 “감리를 더 까다롭게 하면 분명히 아파트 품질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여 수석연구원도 “이러한 부분에서 인건비나 기술 개발 비용 등 비용 증가가 생길 수 있다.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며 “(국토부가 가격을 조절하겠다고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분양가에 당연히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혁신안 실현은 미지수
혁신안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혁신안 추진 일정에 따르면 국토부는 2024년 3월 민간시행 공공주택 도입 규정을 담은 공공주택법 개정안과 전관업체 입찰 제한을 담은 LH 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2024년 3월은 22대 총선을 코앞에 둔 시기다. 혁신안을 국회에서 면밀하게 논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내년은 총선이 있다. 시행령 개정으로 할 수 있는 게 있겠지만, 결국 입법이 필요하다”며 “총선 끝나고 의원들이 바뀌는 상황에서 국회가 (법안을) 충분히 논의할 여력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법안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야권 일각에서 혁신안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2월 12일 논평에서 “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는 것이 공공주택사업의 목적”이라며 “민간건설사는 수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연히 무주택 서민들의 부담이 어떤 식으로든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 의원은 “혁신안이 ‘집 걱정 없는 삶’을 바라는 국민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건설 경기 침체 속에 처한 민간건설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국토부는 12월 12일 보도자료를 내고 “법률 개정이 필요한 과제는 조속히 개정안을 발의하고, 하위법령 또는 LH 내규 개정이 필요한 과제는 내년 상반기까지 개정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오진 국토교통부 제1차관은 “이번 혁신방안을 충실히 이행하여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LH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혁신안의 큰 틀은 나왔지만, 세부적인 것들과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라며 “여러 가지 법 개정이나 지침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LH에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