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리 판단 여전히 주요 체크 포인트…AI 발달·PF 부실·미국 선거·금값 추세 등 주목
①금리 인하 기대와 실망
2022년말 4.5%까지 오른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가 2023년 초를 정점으로 더 오르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예상보다 강한 미국의 고용과 소비가 계속되며 소비자물가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이 5%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서 연준의 목표치인 2%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금리 상승으로 보유채권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은행(SVB) 뱅크런 사태가 터지고 유럽에서는 크레디트스위스(CS)가 무너지며 금융시장 불안은 더욱 커졌다. 연준은 상반기에만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더 올렸다.
하반기 들어 중국 및 유럽의 경기침체로 국제 유가가 하락했고 물가 상승세도 진정되면서 12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처음으로 새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한다. 자산시장은 무거웠던 금리 부담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를 서둘러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다우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경기를 감안할 때 금리 인하폭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②증시 구원투수 인공지능
예상 밖의 긴축 지속과 잇따른 금융 불안에도 글로벌 증시는 2023년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가장 큰 동력은 인공지능이다. 2022년 말 오픈AI의 ‘챗GPT’가 공개되면서 인터넷, 모바일에 이은 제3의 기술혁명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로 관련주가 급등했고 특히 엔비디아 등 반도체 기업들이 주목을 받았다.
인터넷 연결 없이도 통역이 가능해지면서 2024년에는 오랜 기간 침체를 보였던 스마트폰 시장과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얻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AI 기술의 발달은 기계의 자동화 속도를 높인다. 로봇과 자율주행 자동차 산업에도 자극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의학과 바이오 분야도 AI 활용으로 연구 속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③집값 반등 이끈 정책대출
2023년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변수는 정책대출이었다. 집값 하락으로 깡통 전세가 속출하면서 내집 마련 수요가 커졌지만 금리 상승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하고 특례보금자리론을 공급했다. DSR 부담을 줄이거나 피할 수 있는 우회로였다. 그 결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반등세를 보였다.
새해에도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명분으로 신생아 특례대출을 최대 26조 9000억 원 공급할 예정이다. 신청일 기준 2년 내 출산한 가구에 최저 1%대 금리로 최대 5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담보인정비율(LTV)이 70%에 달해 7억 원 이상 집을 살 수 있다. DSR 규제도 적용되지 않는다. 2022~2024년 신생아를 약 60만 명으로 추산하면 최소 43만 가구 이상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새해 입주물량이 크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도권과 대도시의 주택수요를 자극하는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④아슬아슬, 부실 시한폭탄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계속 커졌다. 9월 말 기준 금융권 부동산PF 대출 연체율은 2.42%로 2022년 말(1.19%)의 두 배가 넘는다. 대출 잔액도 134조 3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4조 원 급증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옥석 가리기’ 방침을 밝혔지만 부실자산을 어떻게 처리하고 그에 따른 건설사 부도위험 확대와 증권사·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손실부담을 어떻게 흡수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불분명하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에는 정부가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해외에서도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급락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직전 우리나라 금융권이 공격적으로 투자했던 곳에서도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2020년 말부터 2021년 초까지 홍콩 H지수에 투자된 ELS에서도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가운에 은행에 불완전 판매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올해 제기된 각종 부실 우려가 얼마나 현실화될지 여부는 2024년에 그 전모가 드러날 전망이다.
⑤정쟁·선거, 경제불안 변수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양적완화로 정부의 시장 영향력이 커졌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물론 코로나19와 고령화에 따른 복지 부담 등으로 재정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정치적 양극화로 정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 올해 미국 국채금리 급등도 공화-민주 양당의 첨예한 대립으로 촉발됐고 사상 초유의 하원의장 퇴진으로 이어졌다. 국내에서도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부동산 및 세제 관련 법 개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결국 국회에서 법 개정이 필요한 국민연금 개혁도 아직 안조차 만들어지지 못했다.
2024년에는 76개국에서 약 42억 명이 선거에 참여한다. 전국 선거만 40여 개국이다. 역대 최대 국가, 최다 인구가 선거투표장으로 향하는 해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합계의 약 42%(44조 2000억 달러)가 영향을 받게 된다고 추정했다. 우리나라에 가장 중요한 선거는 4월 총선과 11월 미국 대선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여부는 내년 전세계의 최대 관심사다.
⑥자원, 경제전쟁 무기가 되다
긴축을 초래한 물가 상승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원자재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교란은 어느 정도 정상화됐지만 자원을 무기로 한 대결이 이뤄지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이 됐다. 전쟁 수행을 위해 고유가가 절실한 러시아, 경제개발을 위한 재정확보가 필요한 OPEC은 생산량 조정으로 유가를 높이려 시도했다. 하지만 미국의 셰일 오일을 비롯한 비(非) OPEC이 생산량을 크게 늘리며 유가는 오히려 크게 하락했다. 미국은 러시아를 제치고 유럽의 난방에너지 공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가 됐다.
반도체와 전기차 등 차세대 핵심 산업을 위한 자원 확보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시장에서도 전기차 업체보다 배터리 소재와 원자재를 공급하는 기업들이 더 주목을 받기도 했다. 특히 이 부분을 선점한 중국은 미국의 제재와 견제에 맞서 자원 무기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중남미 등도 막대한 희귀 광물 매장량을 앞세워 자원전쟁에 뛰어들었다.
⑦금과 비트코인의 부활
금값은 2023년에만 10% 이상 급등한다. 채권과 달리 이자가 나오지 않는 금은 금리 상승기에는 자산가치가 낮아진다. 여전히 금리의 절대 수준이 높은 상황에서 금값이 상승한 배경에는 중국 등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공격적인 매수가 있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들은 대부분의 ‘국부’를 달러(미국 국채)로 보유해왔다.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면 가치하락 위험이 커진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달러 결제망 접근을 제한했다. 달러화 자산은 미국이 통제권을 갖는다. 유사시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팔고 공격적으로 금괴를 매입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이유다.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서도 금은 중요하다. 중국의 6월 말 기준 금 보유량은 2113톤(t)으로 미국(8133t)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독일(3353t), 이탈리아(2452t), 프랑스(2437t)는 물론 러시아(2330t)보다도 작다. 중국 GDP가 미국의 6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
비트코인 역시 금과 비슷한 자산이 되고 있다. 올 초 1만 7000달러에서 시작해 최근 4만 3000달러 선을 넘었다. 비트코인은 가상자산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국제적으로 결제수단으로 활발하게 이용된다. 달러 결제망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미국이 선물에 이어 현물 ETF도 허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긍정적 재료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