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비윤 한동훈 추대 내홍, 대통령실 변화 요구 거세…총선용 장관 차출로 약체 전락한 내각도 고민
#쇄신 동력 잃어버린 국민의힘
국민의힘 텃밭 부산에 지역구를 둔 하태경 의원이 수도권 출마를 선언하고, 윤석열 정부 창업공신이자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까지 나왔다. 끊임없는 리더십 부재 논란을 일으키면서 당내 혼란의 중심에 섰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달라질 것 같았던 국민의힘은 혁신 릴레이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불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보였던 김기현 전 대표는 5선 도전 의지를 굽히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도층 확장을 위해 인요한 혁신위가 요구했던 ‘희생’의 바통은 다른 주자들에게로 전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한동훈 비대위’를 둘러싼 내홍까지 벌어졌다. 그 밑바탕엔 내년 총선 공천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 해석이다. 민심의 향방이 바뀌고 ‘윤심’까지 달라졌는데도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김기현 체제 고수를 외쳤던 여당 내 상당수 친윤 그룹은 이번엔 한동훈 비대위원장 쪽으로 몰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친윤 그룹은 ‘윤심’이 한 위원장에게 있다고 봤다. 한 위원장이 비대위를 이끌면 공천 경쟁이 유리해질 것이란 기대감 속에 ‘한동훈 추대론’을 띄웠다. 비윤 그룹은 대통령실·검찰 출신 등 이른바 ‘윤심 신인’들과의 공천 경쟁이 빤한 실정인데 한 위원장이 들어오면 공천이 사실상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경계심이 발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원장 인선을 둘러싼 당내 논의 과정에서 친윤과 비윤과 강하게 날을 세우는 장면을 드러냈다. 비윤계인 초선의 김웅 의원(서울 송파갑)은 12월 15일 의원총회에서 한 위원장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에 빗대며 ‘한동훈 추대’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김 의원은 이 자리에서 “우리가 국민의힘이냐, 용산의 힘이냐. 왜 짜고 와서 한동훈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미느냐”며 “한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하면 내년 총선(승리)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 발언에 대해 친윤계 장예찬 최고위원은 12월 18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나가 “비윤계나 비주류라고 하는 분들이 기본적으로 참 싸가지가 없다”며 “한 장관이 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합리적으로 근거를 대고 설득하면 되는데 쓰는 단어를 보면 아바타나 김주애가 왜 나오나. 그럼 그렇게 잘난 김웅 의원이 차기주자 1위 하라”고 때렸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런 당내 상황에 대해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12월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동훈 장관의 비대위원장 추대론에 대해 “정치 참 많이 타락했다”며 “김기현 밀다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더니 한동훈 밀어 연명하려고 몸부림치는구나”라고 지적했다. 홍 시장은 “듣보잡들이 지도부라고 거들먹거리다가 당 망쳐 놓고 아직도 저리 설치니 이 당이 온전하겠나”라고 덧붙였다. 친윤 의원들이 김기현 전 대표에게서 한 위원장으로 말을 갈아탄 뒤 공천권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이들을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읽힌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전통적으로 쇄신의 깃대를 잡아온 세력이 초선들인데 지금 여당의 경우, 이들이 이런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면서 빈축을 사고 있고 결국 다선 중진 의원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다선이 오히려 살아남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버티기에 들어간 형국”이라며 “여당이 쇄신 동력 부재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고 걱정했다.
선거 경쟁이 가장 치열한 수도권의 여당 출마 희망자들은 크게 동요하는 모습이다. 공정한 경쟁이 되지 않고 새 비대위가 공천 전횡을 할 수 있다는 우려에다 이런 당의 모습으로 인해 중도층이 여당을 외면하면서 공천이 되더라도 민주당에 크게 밀릴 것이라는 불안감이 닥치고 있는 것이다.
#불신의 늪에 갇힌 용산
대선에서 승리한 여당이, 그것도 야당 복까지 터졌는데도 비대위 체제로 가게 된 위기 상황에 대해 보수언론들조차 윤석열 대통령 책임론을 거론하고 나섰다. 동시에 윤 대통령의 변화를 촉구했다. 정부 출범 후 집권당이 대통령실 입김에 지나치게 흔들렸다는 지적이다. 김기현 전 대표 사퇴 과정에서조차 용산이 관여한 것 아니냐는 게 정가의 중론이다. 김 전 대표가 기자회견 형식이 아닌 사퇴서를 내놓는 형식으로 갑자기 물러난 것만 봐도 이런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홍준표 시장은 12월 16일 이를 바로 때렸다. 김기현 전 대표의 사퇴에 대해 홍 시장은 “5공 시대도 아닌데 당 대표가 대통령의 눈치 보며 거취를 결정했다. 서글프다”면서 꼬집었다. 이어 홍 시장은 “(용산의 힘으로 된) 그런 당 대표가 지난 9개월간 당을 지휘했으니 당이 저런 꼴이 될 수밖에 없다”며 “그래도 정신 못 차리고 똑같은 길을 가려고 하니 한심하다”고 했다. 한동훈 전 장관 비대위원장 추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당내에서는 이제부터라도 수평적 당정관계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비대위 출범 과정에서도 여당의 약점으로 지적된 ‘수직적 당정관계’는 별로 고쳐지지 않았다고 여당 현역 의원들 상당수는 토로했다. ‘한동훈 추대론’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비윤 그룹은 용산에 대해 잇따라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최재형 의원은 12월 17일 페이스북에서 “어제 이발을 하는데 우리 당의 어려운 상황과 비대위원장 선출에 관한 TV 뉴스를 듣던 이발사가 ‘한 사람만 변하면 되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며 “우리 당이 극복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당정의 수직적 관계를 바로잡는 것이라는 소리로 들렸다”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직언이었다.
김태흠 충남지사도 12월 17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 기회에 보수 울타리를 넘어서서 중도도 포용할 수 있는 정치의 새판 짜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당이 소외되고 용산에 모든 힘이 집중되는 체제를 바꿔야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충고로 읽힌다.
검찰 재직 당시 윤 대통령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는 한 법조인은 “윤 대통령은 사심 없이 원칙에 부합하는 판단을 하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수사와 비교하면 정치는 훨씬 더 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영역”이라며 “정치 분야에서는 전문가 집단인 여당이 충분한 자율성을 갖는 체제로 옮겨간다면 현재 위기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약체 내각은 또 어쩌나
총선 주자가 떠나가는 내각은 빈자리 후유증이 커질 전망이다. 여당의 김기현 체제가 그랬던 것처럼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끄는 내각에 대한 존재감 부족 지적이 많았는데 한동훈 원희룡 등의 이름값 있는 장관이 빠져나가면서 이런 우려는 더 커지게 됐다.
더욱이 내각 개편 과정에서 장관 자리를 너무 가볍게 여긴다는 질타도 쏟아졌다. 방문규 산업부 장관의 경우, 취임 3개월도 안 돼 후임자가 지명되면서 총선 출마를 준비하게 됐다. 수출 부진 등 과제가 산적한 시점에서 산업부 장관이 임명장 잉크도 마르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그는 후임도 없이 이임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도 보임 9개월 만에 국정원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는데 이 인선도 돌려막기 비판을 받았다. 조 실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때 주미대사를 맡았는데 미국 대사로 간 지 9개월 만에 국가안보실장으로 왔고 다시 9개월 만에 국정원으로 가게 됐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12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전날 지명된 것에 대해 ‘돌려막기’ 인사라고 비판하면서 “대통령의 안보 관련 인재 풀은 조태용 안보실장 한 사람밖에 없는 건가”라고 몰아세웠다.
장관 후보자들은 청문회 검증 과정에서도 호된 시련을 겪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는 12월 18일 국회 청문회에서 20대 자녀에게 1억 원가량을 지급, 증여세 탈루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증여세 대상인지는) 저는 (관련) 없는 것으로 알고 용돈 차원에서 좀 줬다”고 답했다가 난타를 당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까지 12월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거액을 용돈으로 줬다는 발언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말이냐”라고 했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12월 19일 국회 청문회에서도 그의 음주운전과 폭력 이력이 야당 의원들로부터 집중 조명됐다. 12월 20일 청문회에 나간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역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설립한 회사에 LH가 광고를 집행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였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3번째 비대위 체제로 가는 상황 자체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이제 비대위가 출범해 지도체제가 정비되고 있으니 악재를 호재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