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포인트 개각 통해 한동훈 등판 효과 극대화 노려…감동 부족하고 인재풀 한계 드러냈단 지적도
#취임 이후 가장 큰 규모
윤 대통령은 12월 4일 경제부처를 비롯한 6개 부처 개각을 함으로써 취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내각 교체를 했다. 19개 중앙부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다. 추가적으로 장관급 부처 또는 기구에 대한 교체 인사가 예상돼 내각 교체 폭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번 개각은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할 장관들을 내보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에서의 3선 도전을 위해 떠나고 후임으로 최상목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지명됐다.
윤 대통령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에 송미령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에 박상우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에 강도형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원장,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에 오영주 외교부 2차관,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에는 강정애 전 숙명여대 총장을 지명했다. 교체된 전임 장관들 모두 총선에 나갈 것이 확실시된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천 계양을에서 겨룰 가능성이 급부상중이고 공동 선대위원장 또는 비상대책위원장 얘기도 나온다. 재선 의원 출신인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경기 분당에 나가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충남 천안,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부산 사하에 출마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곳은 민주당 현역 의원이 있는 지역구다. ‘험지 탈환’ 임무를 맡게 되는 셈이다. 비례대표 의원 출신인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국민의힘 강세 지역인 서울 서초을 출마설이 오르내린다.
#한동훈 정치권 등판 초읽기
정치권에선 총선 출마를 위한 공직자 사퇴 시한(2024년 1월 11일)을 앞둔 연말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원포인트 개각이 이뤄질 것으로 점친다. 이번 개각에 한 장관을 넣지 않은 것은 그의 정치 등판 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전술로 읽힌다. 한 장관은 12월 6일 국민의힘 정책의총에 참석했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업무 수행차 여당을 찾은 것이지만 모든 언론은 그의 이날 정책 의총 참석을 입당 신고식으로 받아들였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를 찾았다가 지지세를 확인했던 한 장관은 여론조사 수치에서도 보수 진영 차기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12월 4일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가 ‘고성국TV’ 의뢰로 대구 시민 중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9명을 상대로 12월 1~3일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응답률 6.0%)에 따르면 범보수 인사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은 한 장관(38%), 홍준표 대구시장(13%) 순이었다(여론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정치판 등판 초읽기에 들어간 한 장관은 전국을 돌며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11월 17일 대구를 찾으면서 정치 등판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은 한 장관은 나흘 만인 11월 21일 대전을 방문했고 11월 24일에는 울산을 찾았다. 그의 광폭 행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총선을 앞둔 ‘전국 투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동훈여지도(한동훈과 대동여지도의 합성어)’까지 등장했다. 한 장관의 지지자를 자처하는 이용자가 그의 현장 방문 동선을 표기한 것이다. 법무부 행정 일정이라고 설명하지만, 분위기는 정치 유세장을 방불케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동훈 바람’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추진하는 신당 위세를 잠재우는 효과까지 발휘하고 있다.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가 공동으로 여론조사업체 메트릭스에 의뢰해 12월 2~3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 12월 6일 발표한 정례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포인트·응답률 11.9%) 결과에 따르면 신당 창당과 관련, ‘지지할 의향이 없다’가 68%에 이르렀다.
한 장관 진로를 놓고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에 출마해 대선 주자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에다 그가 학창시절을 보낸 서울 강남권 출마,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 자객 공천, 그 밖의 험지 출마 등의 얘기가 난무하고 있다. 최근 들어선 비례대표 안정권 순위 부여를 통해 당의 간판인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겨 전국적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2월 5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내년 총선 역할론과 관련해 “(당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석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오찬 회동에서 한 장관 거취 관련 대화가 오갔느냐는 질문에 “비밀”이라며 이같이 답했는데 한 장관을 내각에서 빼내 비장의 무기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발언으로 들렸다.
#무미건조 인사였다는 비판도
총선 국면에 대비해 국민의힘을 강화하는 진용은 꾸려졌지만 내각 약화는 여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다. 정통 관료와 관계기관장 출신 등 검증된 전문가들을 중용해 국정과제 이행 속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확실한 결과를 도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이지만 보수 언론들조차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우선 여권에선 한동훈 원희룡 박민식 등 야당 의원들과 거침없이 겨루는 간판 장관들이 내각에서 사라졌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감지된다. 또 흔히 말하는 ‘감동’이 부재한 무미건조 인사였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는 고질적인 인재풀 부족 때문이라는 지적과도 맞물린다.
추가 개각도 예정된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에 대한 질타도 쏟아지는 중이다. 지난 8월 임명된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까지 개각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 장관은 내년 총선에서 경기도 수원에 나갈 가능성이 높은데 취임 3개월 만에 자리를 비우게 되는 셈이다.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로 책임론이 나오는 박진 외교부 장관이 물러나고 외교안보 라인의 대거 교체도 점쳐진다. 국정원장 이동이 유력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경우, 9개월 만에 주미대사에서 안보실장으로 갔는데 9개월 남짓 만에 또 자리를 바꾸게 된다. 단명 장관 속출, 돌려막기 인사에 대한 뭇매가 쏟아질 전망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 개각은 언론의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평이다. 이는 곧 개각을 통한 메시지 전달에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2연평해전 승리를 이끈 이희완 대령을 보훈부 차관으로 임명한 차관 인사가 장관 지명보다 나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민주당과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는 정국, 게다가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치러지는 청문회도 여권의 걱정거리다. 12월 4일 개각 대상자 6명 중 절반이 여성(송미령 오영주 강정애 후보자)인데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여성 장관 후보자들의 전례가 좋지 않아 청문회 정국에서의 위기감이 감지된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말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보건복지부 장관에 김승희 전 국민의힘 의원을 ‘여성 전문가’로 지명했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은 학제개편 논란, 김 전 의원은 부동산 편법증여 의혹 등으로 각각 자진사퇴했다. 올해는 김행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낙마했다.
정가에선 좁은 인재풀 속에서 여성 중용을 쫓다가 낙마라는 된서리를 맞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낙마가 많다 보니 청문회 기피증에 시달렸고, 개각을 통한 국정쇄신을 주도적으로 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져왔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 인사에서 탈피한 것은 점수를 받았지만 그 대안을 잘 찾았느냐는 물음에는 속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며 “인재풀을 더 넓혀야 하는데 이번 개각도 좋은 점수를 받기는 무리”라고 아쉬워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