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6석’ 내부보고서에 발칵…비대위원장에 한동훈 원희룡 등 물망 ‘윤’ 그림자 우려
#윤심, 위기론에 궤도 수정
인요한 혁신위가 ‘희생’을 외쳤지만 여당 지도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용산에서도 기존 지도 체제를 뒤집는다고 판단되는 명확한 신호가 나오지 않았다. 초선 의원들이 무더기로 ‘김기현 체제로 가야 한다. 내부 총질이 웬 말인가’라고 한목소리를 낼 만큼 윤심은 ‘김기현 지도부 유지’로 정리됐다는 해석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라는 내용의 여당 자체 판세 보고서가 12월 8일 공개되면서 기류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보수언론들도 일제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경고를 쏟아냈다. 윤심 방향의 궤도가 수정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여권에 충격파를 준 내부 총선 판세 자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49개 지역구 중 6개에서만 우세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세인 지역구는 강남갑·을·병, 서초갑·을, 송파을 등 6곳뿐이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서울에서 강남갑·을·병, 서초갑·을, 송파갑·을, 용산 등 8석을 확보했는데 내년 총선에서는 이보다 더 적은 의석을 확보할 전망이라는 것이다.
보고서가 나오자 여권 내부는 술렁였다. 보수 언론들이 기사와 사설을 총동원하면서 국민의힘을 때렸다. 이용호 의원은 12월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열고 “강서 선거 참패의 충격은 어느새 잊히고, 당 지도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강서 패배 이전으로 돌아갔다”며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지지 않는 모습에 실망한 국민들은 자꾸만 우리 당을 떠나가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여당의 총선위기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정가의 시선은 다시 희생을 요구받았던 인사들에게로 쏠렸다. 변화 없인 총선 승리가 힘들고, 이를 위해선 희생이 절실하다는 당내 여론이 빠르게 퍼졌다. 4선 도전 의지를 강하게 불태웠던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장 의원은 12월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인요한 혁신위가 중진 의원들의 희생을 촉구하자 장 의원은 관광버스 92대에 지지자 4200여 명을 동원한 내용의 글을 올리는 등 세를 과시하며 출마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그랬던 장 의원이 거센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정가에선 장 의원이 일찌감치 불출마 의사를 굳혔고, 보다 극적인 타이밍을 노렸다는 이야기도 나오긴 한다.
장 의원이 결단하자 김기현 전 대표도 힘을 쓰지 못하고 퇴진했다. 김 전 대표는 기자회견 형식도 빌리지 않고 서면으로 퇴진을 발표, 외부의 힘에 떠밀리는 듯한 인상을 줬다. 김 대표가 내심 불만을 표출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는 직을 던지는 대신, 5선 도전을 원하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를 놓고도 당내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윤 대통령이 김 전 대표의 총선 출마와 관련 격노했다는 말도 흘러 나왔다.
이들의 변심은 윤심을 빼고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들이 갖고 있는 여권의 정치적 입지를 감안하면 윤심과의 교감 없는 독자적 정치적 행보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정치권의 일치된 의견이다. 여권 한 핵심 인사는 “윤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이들의 불출마를 설득했다고 들었다. 이는 그만큼 총선 판세가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귀띔했다.
물갈이 파도가 ‘장제원’이라는 높은 문턱을 넘어섬에 따라 혁신위가 타깃으로 삼았던 다선, 중진은 물론 초선들에게로까지 과녁은 무한대로 확대될 전망이다. 당의 주요 고비마다 ‘집단행동’을 이끈 여러 친윤 의원들까지 혁신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이들은 지난 12월 11일 단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김기현 책임론을 제기한 서병수 하태경 등 비주류 중진 의원들을 겨냥해 ‘자살특공대’ ‘엑스맨’이라며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재선 출신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과반은커녕 대선 득표율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윤심이 지금 체제를 무작정 고집하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이고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 연대) 퇴진은 결국 윤심에 따른 것이다. 콘크리트 지지율을 형성했던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자기 의지대로 선거를 이끌어가려다 2016년 총선에서 패배한 선행 사례를 보면 윤심의 변심은 상황논리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물갈이, 선택 아닌 필수
장제원 의원 불출마 선언이 나온 다음날인 12월 13일, 홍준표 대구시장은 SNS에 이런 내용의 글을 올렸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심사 위원을 하면서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과 함께 현역 중진 등 37명을 설득해 불출마 시키고 당을 일대 쇄신한 일이 있었다. 그 덕에 노무현 탄핵이라는 태풍 와중에도 강남도 전멸이라는 예상을 깨고 우리는 선전한 일이 있었다.”
홍 시장 회고처럼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 후폭풍으로 100석도 건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뤘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김문수 공관위원장(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에게 불출마를 권고했고 최 대표는 이를 받아들였다. 강남 출마를 저울질하던 홍사덕 당시 원내총무도 격전지로 불리는 경기 고양 일산갑으로 옮겼다. 한나라당은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고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천막당사를 치며 달라진 모습까지 보이자 가까스로 121석을 건져 탄핵 정국에서 참패를 면할 수 있었다.
이렇듯 역대 총선에서 정치 거물들의 용퇴를 앞세운 대폭 물갈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당의 전면에 섰던 간판 정치인들을 물러나게 만드는 효과는 바로 쇄신과 혁신 이미지 창출로 이어졌고 선거 경쟁에서의 승리를 일궈냈다. 총선 역사 교과서만 꺼내 봐도 물갈이는 승리 공식이었던 셈이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이자 정치적 멘토이기도 했던 6선 실세 이상득 전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했다. 포항에 지역구를 뒀던 그는 대구·경북(TK)의 정치적 거물로서 강력한 지역 지지 기반을 갖고 있었지만 물갈이 압력을 버틸 수 없었다. 장제원 의원 불출마를 두고 이상득 전 의원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11년 12월 이뤄진 그의 불출마 선언은 쇄신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긍정적 평가로 이어졌고 이후 연쇄 불출마 선언으로 이어졌다. 5선의 김형오, 3선의 박진, 원희룡 등 중진의원은 물론 초선의 장제원 의원과 대표적인 소장·쇄신파 홍정욱 의원 등의 불출마 선언까지 나왔다. 새누리당은 19대 총선에서 152석을 확보하며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을 제치는 승리를 거뒀다.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서도 한나라당 텃밭인 경남 밀양·창녕에서 3선을 지낸 김용갑 의원이 그해 1월 초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국회의원 3선은 환갑”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역시 한나라당 텃밭에 지역구를 뒀던 김기춘(경남 거제) 정형근(부산 북·강서갑) 의원도 잇따라 불출마선언을 내놨다.
이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강재섭 전 대표까지 불출마를 선언했다. 강 전 대표는 친이(친이명박) 계열이 득세하고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대거 공천 탈락해 당내 혼란이 일어나자 불출마를 결정했다. 대표가 결단하는 모습을 보이자 격화되던 당내 갈등이 진정되는 국면으로 바뀌었고 한나라당은 18대 총선에서 153석을 차지하며 과반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새누리당(지금의 국민의힘)은 이 경로로 가지 않았다. 인적 쇄신을 둘러싸고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갈등까지 격하게 벌였다. ‘진박(진짜친박) 공천’에 반발, 대표 직인을 들고 부산으로 가는 ‘옥새 파동’이 벌어지는 등 극심한 혼란 속에 민심은 여당에 등을 돌렸고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패배했다.
#인재 영입 난항
비대위원장 하마평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등이 오르내린다. 모두 ‘윤심’에서 자유롭기 힘든 인사들이다. 이들 중 한 명이 발탁될 경우 용산발 공천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당 내홍의 새로운 불씨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한동훈 장관의 경우 선대위 역할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고, 김한길 위원장과 인 전 위원장에 대해선 당내 비토 기류가 감지된다. 원 장관이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지금 위기론의 밑바탕엔 기울어진 당정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대통령실에 휘둘려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 우리에게 가장 큰 리스크는 ‘윤석열 대통령’”이라면서 “인요한 혁신위처럼 좌초하지 않으려면 전권이 보장된, 용산의 눈치를 보지 않는 비대위원장이 발탁돼야 한다”고 했다.
여당은 비대위를 앞세워 물동이를 비우는 작업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새 물을 길어오는 다음 차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다선, 중진에다 초선들에 대한 교체도 불가피한데 대체 인재풀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총선 전망이 좋지 않자 인재 영입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텃밭인 영남권의 경우 손들고 나오는 희망자는 넘쳐나지만 민심을 감동시킬 만한 적임자는 적은 인물 기근 현상에 빠져 있다. 국민의힘은 40명 안팎의 영입 인재를 지역구 후보로 배치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인물 구하기에 나서고 있지만 뚜렷한 주목을 받을 만한 사람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지원 숫자만 많을 뿐 자랑할 만한 인물은 많지 않다는 전언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출범했을 때부터 내년 22대 총선을 겨냥해 참신하고 능력 있는 신진 인사 100명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보고가 올라갔지만 이 작업이 이행되지 않았다. 아무리 선거가 바람이라지만 그 근간에는 인물이 자리하는 데 지금은 인물 위기 상황이다. 나가라고는 하는데 들어올 사람은 솔직히 없다. 김장연대로 불리는 진윤이 물러나고 새로운 측근 그룹인 찐윤이 몰려온다는데 이렇게 하다가는 정말 큰 낭패를 볼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