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도 흥행세 꺾여 불황기 모습 재연…관객수 회복 절실한데, 영화산업 골든타임 지나가나
‘서울의 봄’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고 흥행세가 ‘노량: 죽음의 바다’로 이어지면서 연말 극장가에는 오랜 만에 훈풍이 불었다. ‘위시’가 엄청나게 흥행해 한국 영화 흥행 성적이 저조해질지라도 사실 넓게 보면 한국 영화에도 이득이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거치는 동안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극장 관객 수가 급감했다. 더 이상 영화 관람이 가장 익숙한 여가생활이 아닌 세상이 됐다. 한국 영화건 외화건 다시 사람들이 즐겁게 극장을 찾는 문화가 되살아나지 못한다면 한국 극장산업은 수십 년 전으로 퇴보할 수 있다. 그만큼 투자가 축소되면 한국 영화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위시’는 1월 첫 주말까지 62만 1375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개봉 첫 주말인 1월 6일과 7일 하루 관객 수가 20만 명을 넘지 못했다. ‘서울의 봄’과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 첫 주말에 하루 50만~60만 관객을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큰 차이다. ‘서울의 봄’과 ‘노량: 죽음의 바다’가 1월 6일과 7일 하루 관객 수 10만여 명을 기록해 ‘위시’가 그리 큰 차이로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것도 아니다. ‘위시’의 흥행 저조는 극장가의 ‘위기’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서울의 봄’은 꾸준히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개봉 후 41일 연속 일일 관객 수 10만 명 이상 동원 기록을 세운 ‘서울의 봄’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1월 8일까지 누적 관객 수 1257만 1313명을 기록해 역대 흥행 순위 14위에 올랐다. 1월 8일에는 ‘노량: 죽음의 바다’를 밀어내고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흥행세가 꺾이고 있다. 1월 8일까지 누적 관객 수 419만 7972명을 기록했다. 관객 수 1761만 6299명으로 역대 흥행 성적 1위인 ‘명량’과 726만 6340명의 관객을 동원한 ‘한산: 용의 출현’에 크게 뒤처진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더 스케일이 큰 해전 장면이 등장하며 볼거리가 많아졌지만 관객 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연말의 흥행 기세를 이어 ‘노량: 죽음의 바다’와 ‘위시’가 쌍끌이 관객 동원을 하고 ‘서울의 봄’이 굳건히 뒤를 받치는 형국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비록 전편의 흥행 저조라는 핸디캡이 있지만 흥행세가 이어지는 상황이라면 ‘외계+인 2부’도 기대를 걸어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1월 들어 다시 극장가는 불황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2024년은 한국 영화계의 기회이자 위기다. 미국 배우·방송인 노조(SAG-AFTRA) 파업 여파로 할리우드 대작 영화의 개봉이 차질을 빚는 한 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4년 개봉 예정인 마블 영화는 7월에 개봉하는 ‘데드풀3’ 한 편일 정도다. 2024년 상반기 개봉 예정 외화 가운데 그나마 대작은 2023년 하반기 개봉이 미뤄진 ‘듄: 파트2’,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 정도다. 11월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디터2’, 12월에는 ‘반지의 제왕: 로히림의 전쟁’이 개봉 예정이지만 흥행 성적은 지켜봐야 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건재하지만 ‘글래디에디터2’에는 러셀 크로가 연기한 막시무스와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코모두스가 없다. 게다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근 흥행 성적은 기대 이하다. 2023년 12월 개봉한 ‘나폴레옹’은 국내에서 22만여 명의 누적 관객 수를 기록했고 2022년작 ‘하우스 오브 구찌’는 14만 관객에 그쳤다. 그나마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마지막 영화는 2015년작 ‘마션’으로 488만 관객을 동원했다.
‘반지의 제왕: 로히림의 전쟁’은 피터 잭슨 감독이 아닌 가미야마 겐지 감독의 영화로 애니메이션이다. ‘공각기동대’로 유명한 가미야마 겐지 감독의 작품이라 기대치는 높지만 실사 영화의 프리퀄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영화라 흥행 성적을 점치기 쉽지 않다.
마블 영화를 비롯한 할리우드 대작 영화는 한국 영화가 개봉 일정을 조정할 만큼 강력한 경쟁자였다. 그런데 배우·방송인 노조 파업 여파로 2024년은 그 어느 해보다 할리우드 대작 영화가 적게 개봉하는 터라 분명 한국 영화 입장에서는 기회다.
그렇지만 극장을 찾는 관객 수 자체가 줄어든 상황을 타개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회’로만 보기도 힘들다. 한국 영화건 할리우드 대작 영화건 좋은 영화가 많이 개봉해 대중이 영화 관람의 즐거움을 느껴서 극장을 찾는 발길이 늘어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한국 극장가는 2013년 2억 1335만 1030명으로 처음 2억 명을 돌파했고 꾸준히 성장해 2019년에는 2억 2667만 8777명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2020년에는 더 성장할 것이라 여겨졌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직격탄을 맞으며 5952만 3967명을 기록했다. 2004년 집계 이후 최저치다. 2022년 1억 1280만 5094명을 기록하며 다시 1억 명을 넘겼다. 그렇지만 2022년에 미국과 영국 등 극장산업 강국으로 분류되는 국가의 관객 수가 70~80% 수준으로 회복된 데 비하면 50% 수준의 회복률에 불과하다. 게다가 2023년에도 1억 2513만 5954명에 그쳤다.
연간 관객 수가 2억 명을 넘겼을 당시 한국 극장산업 규모는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해외 대작 영화들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개봉하고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내한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만큼 투자도 활성화돼 한국 영화도 급속도로 발전했다.
올 초 극장 관객 수 회복이 더딜 경우 한국 극장산업은 크게 위축되고 투자도 줄어들어 한국 영화도 퇴보할 수 있다. 극장 요금 인하, OTT 홀드백 규제 등의 대책이 거론되고 있지만 속도는 나지 않고 있다. 그렇게 한국 극장산업과 영화의 골든타임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