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지급 지연 및 계약된 보수 미지급·삭감도…“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필요”
A 씨(25·여)는 서울 마포구 소재 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단기 프리랜서로 벌이를 하고 있다. A 씨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본인의 프로필을 적어놓고 클라이언트들의 요청이 오면 이에 응답해 작업을 진행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A 씨는 “보통 작업을 진행할 때 시간당 계약을 하지 않고 프로젝트 단위로 페이를 산정한다”며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명확하지 않을 때, 정확히 어떤 디자인을 원하고 어떤 문제점을 해소하면 되는지 본인들도 전문가가 아니니까 잘 모른다. 소통하면서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걸 이끌어 내야 하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소통 과정에 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로 인해 디자이너는 시안을 최대한 많이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A 씨는 “디자인 시안을 만들면 만들수록 제가 일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추가금액을 받지 않는 게 언제부턴가 암묵적인 룰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안을 계속 만들면서 추가 노동에 대한 금액을 어떻게 산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디에도 추가금액에 대한 계약 명시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A 씨는 “보통 클라이언트들이 일을 맡길 때 여러 분야를 퉁쳐서 작업을 맡길 때도 적지 않다. 디자인도 분야가 많은데 비전공자들은 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일이 들어오는 자체가 귀하다 보니 이렇다저렇다 따질 수가 없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A 씨의 프로젝트당 수익은 한 달에 약 150만 원이다. 이는 월 209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최저임금 9820원(지난해 기준)을 적용해 계산했을 때 나오는 월 205만 2380원보다 훨씬 부족한 금액이다. A 씨는 “주변 선후배들도 비슷하게 번다. 하지만 아직 사회초년생이라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2년 기준 프리랜서 노동자의 규모는 406만 4000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반 수준이지만 이들의 노동권을 보장할 법·제도는 사실상 없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의 ‘프리랜서 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프리랜서의 29.5%가 ‘보수 지연 지급’을 경험했다. ‘정산 자료 미공개’가 17.2%, ‘계약된 보수 일방적 삭감’이 14.3%, ‘계약된 보수 미지급’이 11.3%였다.
프리랜서들은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노동자로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정식 근로계약을 맺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돼야 근로기준법의 보호대상이 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이 근로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다.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법 제14조). 즉, 사업 또는 사업장에 취업해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문제는 프리랜서와 클라이언트 관계와 같은 수요 독점 시장에서 공급자는 협상력이 없다. 독점시장에서 구매자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며 공급자는 이를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이 경우 공급자가 정당한 가격을 요구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공급자인 프리랜서를 보호할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산업구조와 기술발전, 노동환경, 가치관 변화 등으로 특수고용, 플랫폼노동, 프리랜서, 독립계약자 등이 늘고 있다”며 “문제는 이러한 프리랜서 일자리가 일부를 제외하면 소득과 일자리의 불안정성이 높고,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및 노동권 적용을 받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박은정 인제대 교수는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에 대해 공통적인 최소한의 보호를 제공하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양보연 인턴기자 bbyy3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