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상식 “공천과 무관” 두둔, 친문계의 강한 만류 탓 관측…친명계 “속보여” 제명·출당 요구
1월 10일 윤영찬 의원은 ‘원칙과 상식’ 탈당 기자회견을 약 30분 남겨두고 민주당 잔류를 선언했다. 그는 SNS에 “지금까지 함께해온 원칙과 상식 동지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할 따름”이라며 “민주당을 버리기에는 그 역사가, 김대중 노무현의 흔적이 너무 귀하다”고 글을 올렸다. 기자회견 약 2시간 전 이원욱 의원이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4명 모두 탈당한다고 밝혔던 것을 감안하면 윤 의원은 잔류 여부를 두고 막판까지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 일각에선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동료 정치인의 여성 수행비서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언론 보도 시점과 맞물려 잔류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현 부원장은 이 사건으로 윤리감찰단 감찰을 받는 중이다. 감찰단 징계수위에 따라 공천 컷오프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 부원장은 지난 대선 때 이재명 캠프 대변인을 지낸 대표적 친명 인사로 꼽힌다. 2023년 초부터 비명계 윤영찬 의원 지역구인 성남시중원구 출마를 준비해왔다.
친명계는 윤영찬 의원 잔류 결정을 평가절하했다. 1월 10일 친명계 원외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새로운 가치나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는 이낙연과 탈당파들의 관심사는 오직 권력과 공천뿐”이라며 “최근 벌어진 상황으로 급하게 꼬리를 내린 윤영찬 의원만 봐도 그들의 의도는 투명하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엔 친명계 이동주 양이원영 의원 등이 배석했다. 1월 11일 친명계 원외 모임 ‘민주당혁신행동’은 윤 의원의 제명·출당을 요구했다.
‘원칙과 상식’은 윤영찬 의원의 고민과 선택은 현근택 감찰과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다. 1월 11일 이원욱 의원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그전부터 실존적 고민을 털어놨었다”며 “(현근택 언론 보도는) 월요일(1월 8일)이고 저한테 고민된다고 울먹이며 전화한 건 일요일(1월 7일)이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조응천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한 2~3일 전부터 윤영찬 의원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며 “‘잔류냐 신당이냐 고민할 마지막 상황까지 왔다’ ‘자기는 우리처럼 혁명가가 못 되는 모양이다, 뭐가 그렇게 밟히는 게 많은지 모르겠다, 고민 좀 해보고 말씀드리겠다’라고 (문자가) 왔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대표도 1월 11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윤 의원의 처지에서 여러 가지 고민스러운 것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저를 오랫동안 도와주신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며 “‘공천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라는 얘기들을 하는데 사실은 현근택 문제 보도되기 며칠 전부터 이미 고민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공천 때문은 아니다, 그건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가 있다”고 말했다.
윤영찬 의원 잔류 결정은 2023년 연말 이전부터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의원들의 강한 만류와 설득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특히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역할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월 10일 임 전 실장은 SNS에 “윤 의원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불면의 밤을 견디며 몇 번이고 속울음을 삼켰겠지요. 윤영찬을 모르는 사람들은 짐작하지 못할 것”이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통음하며 그를 붙들었는지를. 그는 정치적 판단으로 남은 것이 아니라 그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윤영찬 의원이 누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 김영주 부의장도 “탈당은 아닌 거 같다”며 “같이 조금 더 기다리면서 모색을 해보자. 시간을 갖고 당을 바꿔보자”라는 취지로 설득했다고 전해진다.
자신을 정치권으로 입문시켜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에 남아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고 한다. 1월 6일 문 전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따른 야권 대통합으로 끝내 정권 교체를 해낼 수 있었지만, 오늘 우리는 김 전 대통령 앞에서 부끄럽다”고 지적하며 야권통합을 강조한 바 있다.
이낙연 전 대표와 윤영찬 의원은 동아일보 기자 시절부터 선후배로 오랜 인연을 맺어왔으나, 정치권 입문 배경이 다르다. 이 전 대표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동교동계 출신이다. 2003년 동교동계 새천년민주당과 친노무현계 열린우리당으로 분당할 때도 이 전 대표는 새천년민주당에 남았다. 친이낙연계 좌장 설훈 민주당 의원도 동교동계 출신이다.
윤영찬 의원은 2017년 3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삼고초려를 한 끝에 네이버에 사표를 내고 정치권에 입문했다. 윤 의원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캠프였던 ‘더문캠’ SNS본부장으로 합류했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가 된 뒤에는 민주당 선대위 SNS본부장으로 일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청와대에서 국민소통수석을 지냈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됐다. 당시 문재인 정부 청와대 참모 출신 19명이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1월 12일 민주당혁신행동은 윤영찬 의원을 포함한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을 싸잡아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청와대 권력 핵심에서 친하게 지낸 사이라고 어떤 잘못도 눈감아주고 비호하는 것이 공정하고 상식적인 일인지 묻고 싶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영찬 의원 측은 “당분간은 본인 선택에 입장 내기 어렵다. 이낙연 신당이나 원칙과 상식 의원분들을 공감하고 잘 되길 희망한다”며 “구구절절 이해를 바란다고 설명하기보다는, 그분들의 시간을 위해 비켜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