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세 자녀 후견인으로 가해자 부모 선임…가해자 측 ‘외가 사는 막내 아이도 넘겨라’ 청구
유족들의 고통은 끝이 없다. 법원은 가해자인 남편의 자녀들 친권을 박탈했으나 정작 새 후견인은 가해자 가족으로 결정했다. 가해자 가족들은 이를 빌미로 남은 자녀들을 모두 돌려보내라고 유족에 소송까지 제기한 상황이다. 피해자 유족들은 이런 상황을 너무 힘겨워하고 있다. 2022년 발생한 이른바 '여수 의처증 살인 사건' 피해자 유족들의 사연이다.
#시도 때도 없는 폭력, 결국…
“사랑하는 엄마에게. 2021년은 코로나 때문에 여행은 못 갔지만 추억은 쌓은 것 같아. 2022년에는 가족끼리는 아니어도 엄마랑 둘이서 추억을 많이 쌓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엄마는 일하느라 아프고 힘들겠지만 내가 크면 돈 많이 벌어서 엄마가 일을 안 했으면 좋겠어. 나는 꼭꼭꼭 다음 생에도 엄마 딸로 태어날 거야. 엄마, 사랑해♡”
초등학생 딸은 엄마와 단둘이라도 예쁜 추억을 쌓길 소원했다. 아이들한테 엄마가 전부였듯, 엄마도 녀석들이 전부였다. 엄마는 이토록 아기자기한 손 편지를 사진까지 찍고 보관했다.
그러고 불과 약 세 달 후인 2022년 5월 7일 오전 5시 25분쯤 전남 여수의 한 아파트. 몰려온 경찰차와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새벽의 적막함을 깨트렸다.
주차장에는 한 여성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곧장 병원으로 옮겨진 그녀는 호흡조차 멀쩡히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아이들 걱정뿐이었다. 가까스로 의료진의 옷가지를 붙들고 “저 죽나요? 우리 새끼들은 어떻게 하나요?” 호소했다.
하지만 의사와 간호사들의 분투에도 현실은 쉽지 않았다. 입원 닷새 만인 5월 12일, 그녀는 결국 숨지고 말았다. 딸과의 추억은 정말 '다시 태어나도 모녀로 만날 수 있기를' 기약해야 했다.
가해자는 남편 A 씨(42). 일용직 용접공으로 주말부부 생활을 하던 그는 평소에도 근거 없이 아내를 의심하는 의처증이 심했다. 아내 성폭행도 잦았던 데다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도 폭력을 휘둘렀고, 흉기를 꺼내드는 일도 여러 번이었다. 심지어 이를 말리는 딸마저 때리곤 했다.
아내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녀가 지인과 나눈 통화 녹취록을 통해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엿볼 수 있다. 하루는 지인에게 극심한 공포감을 털어 놓았다.
“살인 사건이 날 것 같아. 하루는 (남편이) 음주운전을 하고 찾아 왔어. 그냥 (나를) 죽일 것 같아. 더는 같이 못 살겠어.”
시부모에 대한 섭섭함도 컸다.
“우리 시어머니는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본인만 힘들고 우울하다는 식이야. (여러 문제에 대해) 지금도 나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할 거야.”
남편의 폭력 행위 등을 시어머니 등도 어느 정도 인지했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내는 이혼을 결심하고 상담까지 마친 후 남편 A 씨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다. 남편은 분노했다. 기어코 아내가 있는 곳까지 찾아왔다. 무서움에 떨며 피신하는 아내를 끝내 쫓아가 붙잡고는 곧장 미리 준비한 흉기를 휘둘렀다. 아내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바로 그날이다.
A 씨는 범행 직후 인근 산으로 도주했다. 경찰은 약 130명을 투입해 수색에 나서 그를 검거했다. A 씨는 경찰에 '겁을 주려고 칼을 들었을 뿐'이라더니 재판에서는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등 시종 반성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1심 판결에서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등에서도 형량이 유지됐다.
#아이들을 가해자 부모에 맡긴 법원
형사재판은 이렇게 끝났지만 피해자의 유족들에겐 또 다른 아픔의 시작이었다.
피해자에게는 세 자녀가 있다. 사건 당시 첫째도 초등학생이었을 정도로 어린아이들이다. 광주가정법원 순천지원은 A 씨의 친권을 박탈했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의 후견인을 가해자인 A 씨의 부모로 선임했다.
법원은 A 씨 부모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데, 아이들이 이 동네에서 교제해온 친구가 많다는 등의 논리로 후견인을 결정했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외가가 있는 타지로 이사를 가 낯선 환경에서 새로 적응하기보다 현재 환경에서 기존 친구들과 교제하며 할머니와 생활하는 게 심리적 안정감 회복에 비교적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세 아이 가운데 두 명도 여수에서 할머니와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에 세 남매는 현재 떨어져 살고 있다. 아이들의 뜻을 반영한 조치이기도 하다. 둘은 친할머니, 하나는 외가 이모와 지내고 있다. 단, 유족들은 법원이 정서적으로 매우 어린 아이들의 판단만 전적으로 반영한 데 대해 유감을 드러낸다.
특히 법원의 이런 결정으로 두 자녀는 엄마가 흉기에 쓰러져버린 바로 그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 이게 아이들에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과 전문가들의 판단은 달랐다. 당시 담당 피해자 심리전문요원은 세 아이를 모두 상담했다. 당연히 세 남매의 정서는 '매우 불안' 상태였다.
경찰은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경찰 및 기타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유족을 후견인으로 선임하는 게 아이들 입장에서 최선이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가해자인 A 씨의 가족들은 애초에는 후견인으로 나설 뜻이 강하지도 않았다. 경제 형편이 좋지도 않았던 까닭에서다. 그러나 피해자 측이 후견인 신청을 하자 돌연 입장을 바꿔 맞대응에 나섰다.
실제 아내가 숨진 직후 A 씨 아버지의 녹취록을 들어보면 “우리가 키울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애들을 위해서라도 외가에서 키우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A 씨 아버지는 “여수에서 키운다고 해봐야 아이들이 잔혹한 사건과 관련한 가족이라는 낙인 때문에 오히려 교우 관계가 힘들어질 수 있다”며 “앞으로 커서 사회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부분까지 생각하면, 조만간 1∼2년 안으로는 성씨도 엄마 쪽으로 바꿔야 할 정도”라고도 말했다.
#'우리가 후견인…아이 넘겨라' 또 법원으로
유족들은 무한정 상처를 더해가고 있다. 2023년 11월 2일 A 씨 가족들은 유족들을 상대로 '유아 인도 심판 청구'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피해자 가족과 지내는 막내 아이까지 자신들에게 인도하라는 소송이다. 소송비도 전액 유족들이 내라고 청구했다.
A 씨 가족은 외가에서 지내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이모와 함께 살고 있지만 후견인으로서 재산 관리를 원활히 해야 하며 남매들이 떨어져 지내게 할 수도 없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심판 청구서에서 “외가에서 지내는 아이가 병원 수술 등 급박한 상황에 닥치면 후견인으로서 조치가 불가능하다”며 “급박한 일이 아니더라도 학원등록 등 일상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며, 아이들의 원만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남매들을 함께 양육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하나 남은 아이는 품에 안은 채 꼭 지키고 있다. 한 가족은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는데 상대방은 무엇 하나라도 더 얻겠다고 분투하는 상황에 몹시 참담하다”며 “다른 두 딸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연락조차 안 되는 현실에서 해도 너무 한다”고 절규했다.
반면 A 씨 가족의 법률대리인 측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아이들을 키울 정도의 형편은 충분하다”면서 “후견인으로서 아이들의 보험 등 재산 관리를 해야 할 필요가 큰 데다, 남매들이 함께 지내는 게 마땅하므로 유아 인도를 청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애초 적극적으로 후견인 신청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외가에서 잠시 지냈던 아이들이 외로움 등을 토로하며 다시 여수로 돌아오기를 바랐다”며 “현재 여수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는 만큼 아이들이 조모 등의 품에서 잘 커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법원이 아이들의 복리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지웅 변호사(법률사무소 정)는 “통상 후견인 선임은 가사조사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떻든 가해자의 부모가 후견인으로 결정된 상황은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정 변호사는 그러면서 “아이들이 여수에 친구가 많더라도 현재 지내는 아파트는 엄마의 사고와 관련한 트라우마가 여실히 묻어난 곳인 데다, 혹여나 친가가 아들인 A 씨의 행위를 조금이나마 옹호하면 아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며 “진행 중인 유아 인도 심판 청구에서 법원이 이 부분도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