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별로 유약 불량 제품 대처 달라 구매자 분통…“소비자분쟁해결기준처럼 사후관리 관련 기준 제시해야”
가죽유약은 가죽으로 된 제품 보호 및 방수를 위해 마감 처리시 바르는 물질로 가죽을 깔끔하고 매끈하게 다듬을 수 있게 한다. 일반적으로 가방, 지갑 등 가죽으로 된 제품에는 유약 처리가 돼 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명품가방, 명품지갑 등에도 유약이 입혀져 있다. 유약이 제대로 칠해지면 제품 사용 기간과 관계없이 유약이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 없이 유약이 벗겨진 제품은 대체로 불량으로 취급된다.
30대 여성 A 씨는 2020년 샤넬에서 ‘보이백’을 구매했다. 샤넬 보이백 가격은 2020년 11월 기준 △스몰 614만 원 △미듐 671만 원 등이다. A 씨는 지난해 10월 보이백을 메고 나갔다가 옷 앞뒤로 검은 물감 같은 것이 묻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알고 보니 유약이 벗겨져 옷에 묻은 것이다. A 씨는 곧장 샤넬 매장을 방문해 항의했지만 직원에게 12만 원 정도를 지불해서 수선을 받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A 씨는 “평소 가방을 아껴 관리를 정말 열심히 했다. 특히 (샤넬) 보이백은 가격이 비싸서 자주 들고 다니지도 않고 관리를 잘했는데 유약이 묻어 당황스러웠다”며 “더 황당한 건 불량 제품에 대한 조치보다 ‘(유약이) 묻어나올 때마다 와서 12만 원 정도 내고 수선을 받아라’라는 답변”이라고 말했다. 이어 “너무 당당한 태도에 불쾌했다”고 덧붙였다.
유약 불량 문제가 종종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처리하는 규정은 명확하게 마련돼 있지 않다. 소비자가 매장을 찾아 문제를 제기하면 자체 심의에 따라 교환 혹은 수선 여부가 결정된다. 보상 여부는 지점 혹은 직원마다 다르다. 30대 여성 B 씨는 2020년 남편으로부터 루이비통 반지갑을 선물로 받았다. 지난해 12월 반지갑의 유약이 벗겨지면서 끈적거림이 생겨 B 씨는 매장을 방문했다. 루이비통 매장에선 15만 원의 유상 수선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2020년 같은 반지갑을 구매한 30대 여성 C 씨는 다른 매장에서 유약 불량 문제로 반지갑을 교환받았다. 이에 대해 B 씨는 “매장마다 규정이 다른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 명품 브랜드 직원으로 일했던 명 아무개 씨는 “내가 있었던 브랜드는 유약 불량 제품을 모두 유상으로 수선했지만 사용 기간에 따라 어떤 사후처리를 해주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었다”고 귀띔했다.
최근 루이비통 제품의 유약 벗겨짐으로 매장을 방문했다는 30대 여성 D 씨는 “루이비통 셀러(직원)가 2024년부터 유약 불량 제품에 대한 조치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며 “2023년까지 교환을 위주로 조치를 취했지만 올해부터는 수선 여부를 확인한 후 최대한 수선하는 방향으로 조치를 취한다고 했다”고 언급했다. 다만 “(유약 불량 제품) 단종 모델에 대해선 조치가 없었다”며 “비싸서 몇 번 안 들었는데 단종된 유약 불량 제품이면 소비자만 손해”라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들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처럼 제품의 사용 기간을 정해두고 수선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명품 쇼핑 채널을 운영하는 한 유튜버는 “유약 벗겨짐을 겪은 적 있는데 구매한 지 5년 정도 뒤 유약 벗겨짐이 시작됐다”며 “비싼 돈을 주고 구매했기에 매장을 찾아가려다가 오래 전에 샀기 때문에 직접 비용을 내고 수선집에 맡겼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도 무턱대고 ‘교환해달라’ ‘무상수선해달라’ 할 수 없지 않나”라며 “소비자분쟁해결기준처럼 ‘가방 몇 년 사용 이내면 불량 제품 무상수선’ 등 기간을 정해두고 수선 조건을 내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같은 지침을 만들면 명품 브랜드별로 홈페이지에 명시해두고 소비자들이 확인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약 벗겨짐, 악취 등의 현상을 ‘소비자 관리 문제’로 보고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례도 있다. 2019년 루이비통에서 가방을 구매한 E 씨는 “2022년부터 가방 핸들 부분이 끈적거리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핸들이) 본드 같은 게 뭉친 것처럼 되면서 악취가 났다”며 “매장을 방문했는데 직원이 사과하면서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부요인이 뭐냐고 물었더니 ‘핸드크림, 손소독제, 손 접촉 등이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손으로 안 드는 핸드백도 있나”라며 “핸들 (유약) 불량인 가방이었으면 애초에 안 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명품 브랜드들이 제품 가격 인상에만 관심이 있을 뿐 국내 소비자들의 하소연을 모른 척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은 매년 이뤄지고 있다. 에르메스는 새해 벽두부터 제품 가격을 최대 44% 정도 인상했다. 샌들 ‘오란’ 중 도마뱀 가죽으로 생산된 제품의 가격은 기존 245만 원에서 352만 원으로, 로퍼 로얄 제품은 기존 152만 원에서 174만 원으로 올랐다. 루이비통은 2021년 다섯 차례, 2022년 두 차례, 지난해 한 차례 가격을 인상했다. 샤넬은 지난해 2월과 5월 가격을 올렸다. 디올은 △2021년 7월 △2022년 1월, 7월 △2023년 1월(뷰티), 7월 등 매년 두 차례에 걸쳐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명품업계의 전략은 어떻게 하면 구매를 더 어렵게 만들어 구매 욕구를 극대화시킬지, 희소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제품 품질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사후 대처를 잘해서 소비자를 이끌어야 한다는 전략은 없다”고 설명했다.
명품업계의 전략은 우리나라에서 통하고 있는 모양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명품 시장은 21조 9909억 원으로 전년(19조 6767억 원)과 비교해 11.8% 성장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약 43만 원)로 △미국 280달러(37만 원) △중국 55달러(7만 원) 등 주요국을 상회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