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OCI·한미약품 등 파트너십 사례 늘어…향후 우호 약화되거나 정치권 제재 가능성도
박철완 전 상무는 금호석유 지분 8.87%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다. 박 전 상무는 2021년 삼촌인 박찬구 금호석유 회장 측에 의해 퇴출됐다. 박찬구 회장이 보유한 금호석유 지분은 장남 박준경 금호석유 사장과 장녀 박주형 금호석유 부사장을 합쳐도 15.83%에 불과하다. 경영권이 탄탄하지 않은 셈이다. 금호석유가 OCI와 자사주 맞교환을 추진한 것도 OCI의 힘을 빌려 경영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재계에서는 박철완 전 상무가 보도자료를 배포한 이유가 따로 있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자사주 맞교환 시도를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금호석유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금호석유와 한 대기업이 자사주 맞교환을 위한 이사회를 개최할 것이란 소문이 있어 이에 대응하고자 나선 것”이라며 “금호석유가 지분 교환 파트너를 계속 물색 중인 것으로 안다”고 강조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금호석유뿐 아니라 재계 30~50위권 기업집단에서 지분 교환 파트너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호석유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자사주 교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지배력 굳건해진 이우현 OCI 회장
공교롭게도 OCI는 최근 금호석유에 이어 한미약품의 백기사로 나섰다. OCI는 지분 매각, 현물 출자, 신주 발행 등을 통해 한미사이언스 지분 27%를 보유하게 됐다. 그리고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이 OCI홀딩스 지분 10.36%를 보유하게 된다.
재계에서는 송영숙 회장의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의 반발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한미약품그룹뿐 아니라 OCI도 지분 맞교환을 통해 경영권 강화 효과를 얻었다. 이우현 OCI그룹 회장이 보유한 OCI홀딩스 지분은 6.55%에 불과하다. 이 회장의 삼촌인 이화영 유니드 회장과 이복영 SGC이테크건설 회장은 각각 OCI홀딩스 지분 7.41%, 7.37%를 갖고 있다. 이 회장보다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우현 회장은 2017년 부친인 고 이수영 회장 작고 후 매년 100억 원씩 6년에 걸쳐 상속세를 납부했다. 이 회장은 2018년 4월 상속재원 마련을 위해 OCI홀딩스 주식 27만 7466주(1.08%)를 SK실트론에 매각하기도 했다.
당초 OCI그룹 일가는 태양광 업체 넥솔론을 성장시킨 후 이를 통해 상속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이우현 회장과 동생 이우정 씨는 2007년 각각 50억 원씩 투입해 넥솔론을 설립했다. 하지만 넥솔론은 별다른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2017년 11월 법정관리 폐지 결정을 받았다. 이 회장은 200억 원에 가까운 투자금을 대부분 날렸다.
이우현 회장과 삼촌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하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삼촌을 믿고 의지할 관계가 아니라고 분석한다. 이 회장은 2020년 전후로 모친으로부터 주식을 대여 받아 OCI홀딩스 최대주주에 올랐던 적이 있다. 이를 놓고 삼촌들을 견제하려는 목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촌들은 설령 OCI를 욕심내지 않더라도 나중에 보유 지분을 비싸게 되팔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라며 “이우현 회장은 우호적인 주주 영입으로 삼촌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고 강조했다.
#사모펀드의 새로운 사업 모델?
한미약품과 OCI를 연결 지어준 곳은 사모펀드 라데팡스파트너스(라데팡스)다. 라데팡스는 당초 한미약품 오너 일가의 지분을 취득해 공동보유약정을 맺은 후 공동경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펀드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으면서 아예 새로운 대기업 파트너를 찾는 쪽으로 선회했다.
라데팡스는 이참에 다른 중견기업·대기업의 지분 공유 파트너 물색 사업을 검토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라데팡스는 이번 딜로 150억 원을 받았다”며 “당초 한미사이언스 공동경영 펀드 구성으로 목표로 했던 이익이 300억 원인데, 그 절반을 컨설팅 한 번으로 채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서로 유사한 처지의 기업들을 찾아 맺어주는 사업이 승산이 있다고 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라데팡스 관계자는 “향후 사업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으며 OCI-한미 통합의 순조로운 마무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사한 사업을 검토하는 또 다른 사모펀드 관계자는 50대 그룹 중 최소 절반이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지분 맞교환을 검토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호석유 외에도 DB그룹, 현대그룹, 한진그룹 등이 있고 롯데그룹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롯데지주 지분율이 13%에 그치고, 롯데지주의 계열사 지배력도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재계는 지배구조와 상속세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았다고 반기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처음 손을 잡을 때는 신뢰가 굳건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호 관계가 흐려질 수 있다. 일례로 고려아연은 최씨 집안과 영풍그룹 장씨 집안이 함께 세운 회사지만 2019년 3세 경영이 시작된 후 경영권 분쟁을 맞이했다.
정치권이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 대기업 간 지분 맞교환은 대체로 자사주가 활용된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자사주 규제 강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자사주 의무 소각은 재계 반발로 최근 발표된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빠졌다. 다만 자사주 보유 목적과 처분 계획 선보고 등은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이외에도 대기업 간 지분 맞교환이 남발되면 어떤 식으로든 제재 방안이 나올 수 있다고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추측하고 있다. 경영권 강화 목적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할 경우 법원이 제동을 걸 가능성도 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지난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추진했을 때도 법원 제동으로 무산된 바 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