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기록 제조기, 부진 끝 435일 만에 우승 차지…파리 올림픽 금메달 조준
한때 세계 여자골프를 평정했던 그는 지난해 데뷔 이래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하지만 천재에게 부진은 2년간 이어지지 않았다. 2024시즌 개막전부터 우승을 차지, 다시 한 번 부활을 알렸다.
#'천재 소녀'의 등장
리디아 고는 등장부터 골프계에 충격을 안긴 인물이다. 2012년 커리어 첫 LPGA 투어 우승(캐나다 여자 오픈)을 차지하던 당시 리디아 고의 나이는 15세에 불과했다. 당시 대회 준우승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던 시기의 박인비였기에 놀라움을 안겼다. 15세 나이에 우승은 LPGA 역대 최연소 우승 기록(15세 4개월 2일)이었다.
리디아 고는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 다시 한 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대회 2연패를 차지했다. 이때까지도 그는 아마추어 신분이었다. 아마추어임에도 LPGA 투어 2승을 쌓아 올린 것이다. 이미 2012년 전미 아마추어 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아마추어 무대에서 증명할 것이 없었던 그는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2014시즌 LPGA 투어에서만 3승을 올리며 본격적인 기록 사냥에 나섰다. 이후 각종 최연소 타이틀에는 리디아 고의 이름이 새겨졌다. 데뷔 첫해 최연소 시즌 상금 100만 달러 돌파, 최연소 신인상 수상 기록을 남겼다. 급기야 2015년 2월에는 세계랭킹 1위에 올라 남녀 골프선수를 통틀어 최연소 세계랭킹 1위 기록도 세웠다. 이 모든 것들이 10대에 리디아 고가 벌인 일들이다.
프로 전향 이후 온전히 치르는 두 번째 시즌, 역시나 리디아 고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간 힘을 쓰지 못하는 듯했던 메이저 대회에서의 우승(에비앙 챔피언십)을 포함, LPGA 투어 시즌 5승을 쓸어 담았다. 2015 시즌을 마친 그의 손에는 투어 상금왕, 올해의 선수, 레이스 투 CME 글로브 등의 트로피가 쥐어졌다. 모든 수상은 당연히 최연소 기록과 함께였다. 최연소 투어 10승 달성 기록 또한 그의 몫이었다.
2016시즌 또한 탄탄대로를 달렸다. 메이저 우승 1회 포함 시즌 4승을 챙겼고,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박인비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과 함께 올해의 선수, 상금왕 등 각종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부진과 부활
지지 않는 태양은 없다는 격언을 증명하듯 '천재 소녀' 리디아 고도 흔들렸다. 시즌 4승을 올린 2016시즌부터 조짐은 보였다. 시즌 막판 참가한 5대회 연속 톱10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 시기 장기간 함께 해온 캐디, 스윙 코치와 모두 결별했다.
슬럼프의 터널은 예상보다 길었다. 2017시즌 우승 0회, 컷오프 3회 등 자신의 커리어에서 최초의 사건들을 겪었다. 자연스레 장기집권 하던 세계랭킹 1위 자리도 내주게 됐다. 이듬해 한 차례 우승으로 만회하는 듯했으나 2019, 2020시즌까지 2년 연속 무관에 그쳤다. 2년간 시즌 상금이 50만 달러 내외를 오갔을 정도로 성과가 없었다.
천재 소녀가 감각을 회복한 시기는 2021시즌이었다. 4월 열린 롯데 챔피언십에서 28언더파의 기록으로 우승, 1084일 만에 미소와 함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회 연속 참가한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며 골프 역사상 최초 2연속 메달리스트에 등극했다. 시즌 말에는 최저타수상인 베어 트로피를 수상, 궤도에 올랐음을 알렸다.
감각을 조율한 그는 다시 전성시대를 열었다. 2022시즌 3승과 함께 올해의 선수 수상, 베어 트로피 2연패에 성공했다. 세계랭킹 1위 복귀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개인으로선 결혼에까지 성공, 겹경사를 맞았다.
결혼 이후에는 다시 부진에 빠졌다. 시즌 내내 선두권과는 멀었고 상금 순위는 90위였다. 시즌 최종전, 비공식 대회에서 유일한 트로피를 들었다. 그의 부진을 두고 갖가지 분석이 뒤따르기도 했다. 스윙에 대한 지적이 오갔고 '20대 중반 이후 하락세가 시작되는 한국 골퍼들의 모습이 보인다'는 가시 돋친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리디아 고는 이 같은 평을 비웃기라도 하듯 2024시즌 개막전부터 트로피를 따냈다. 약 1년 2개월 만의 우승이었다. 2, 3라운드에서는 노보기 플레이로 여전한 감각을 자랑했다.
#한 발짝 다가선 명예의 전당
스포츠 선수로서 최고의 명예라는 명예의 전당 입성도 멀지 않았다. 이번 우승으로 리디아 고는 통산 20승 고지에 올랐다. 메이저 우승 2회가 포함돼 있기에 우승으로만 22점을 쌓았다. 이외에도 올해의 선수상, 베어 트로피 수상 등으로 26점이 됐다. LPGA 명예의 전당 입성 조건까지 1점만을 남겨둔 것이다.
'최연소 기록 제조기' 리디아 고는 당초 명예의 전당과 관련해서도 기록 달성이 예상됐던 인물이다. 최연소 명예의 전당 입성에 최단기간 입성 조건 달성 가능성도 예견됐다. 당시 명예의 전당은 27점을 채우고 투어에서 10년간 활동해야 입성이 가능했다.
2022년 명예의 전당은 '10년 조건'을 삭제했다. 활동 기간에 관계없이 점수만으로 입회가 가능해졌다. 현재로선 활동기간 10년을 넘긴 리디아 고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조건이다. 입성까지 한 걸음만을 남겨둔 상황,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 기대감을 높인다.
각종 최연소 기록을 보유한 리디아 고는 명예의 전당 입회 또한 최연소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상황이다. 기존 기록은 2016년 입회한 박인비의 27세 10개월 28일이다. 아직 27번째 생일이 지나지 않은 리디아 고에겐 기록 달성까지 1년 이상의 여유가 있다.
리디아 고의 이번 우승은 '반짝 우승'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미 한 차례 긴 부진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부진을 떨친 2022시즌 리디아 고는 436만 4403달러를 상금으로 벌어들여 상금왕, 올해의 선수 등을 휩쓸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바 있다.
이번 시즌에는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이 예정돼 더욱 관심을 모은다. 앞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냈던 리디아 고는 "금메달을 따고 3개의 컬렉션을 가질 것"이라며 참가 의사를 밝혔다. 현재 세계랭킹 9위로 올림픽 참가 조건에 부족함이 없다. LPGA 명예의 전당이 가입 조건을 완화하며 이전에는 점수가 없던 올림픽 금메달에 포인트를 부여한 것도 리디아 고의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