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더’로 만난 여성들이 접근, 약물 먹이고 살인…표적은 주로 성매매 목적으로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여성을 만난 남성들이 사라지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런 일은 주로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다. 주된 범행 대상은 외국인 남성들이며,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이렇게 사라진 남성들이 시신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실제 최근 두 달 사이에만 관련 사건으로 사망한 미국인은 8명에 달했다. 데이트 앱과 관련된 폭력 및 살인 사건은 특히 콜롬비아 메데인, 카르타헤나 등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디지털 노마드’ 비자로 콜롬비아에 입국한 외국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들을 노린 강력 범죄가 급증하자 콜롬비아 주재 미 대사관은 ‘데이트 앱 경보령’을 발령하면서 “틴더, 범블 등 온라인 데이트 앱에서 만난 여성들을 주의하라”고 당부하고 나섰다.
라오스계 이민자 출신인 미국 국적의 코미디언 투 게르 시옹(50)이 메데인으로 여행을 떠난 건 지난해 11월 29일이었다. 평소 콜롬비아를 자주 방문한 그는 이번에는 떠나기 며칠 전 틴더를 통해 만난 한 콜롬비아 여성과 직접 만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꿈에 부푼 여행은 곧 악몽으로 변하고 말았다.
메데인에 도착하고 열흘이 지났을 무렵, 시옹은 다급한 목소리로 콜롬비아에 있는 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나는 지금 납치됐다. 도와달라. 이 사람들이 내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으니 빨리 2000달러(약 270만 원)를 보내달라”고 울부짖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미국의 시옹 가족들은 서둘러 3140달러(약 420만 원)를 송금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 시옹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가족과 친구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소식이 끊기고 며칠 후 콜롬비아 경찰은 시옹의 시신을 발견했다. 발견 장소는 시 외곽의 나무가 우거진 외딴 협곡이었다. 시신에는 10여 군데 자상이 있었으며, 머리에는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외상 자국이 있었다. 시옹의 형제인 에 시옹은 BBC 인터뷰에서 “그는 콜롬비아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했다. 활기찬 콜롬비아 사람들에 대해 늘 이야기했다. 심지어 스페인어도 배웠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이런 식으로 비극을 맞으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며 통곡했다.
시옹의 친구가 전한 바에 따르면, 시옹은 메데인에 도착한 후 틴더를 통해 만난 여성들과 몇 차례 만남을 가졌다. 심지어 납치되기 며칠 전까지도 이 여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 여성들이 시옹을 납치 및 살해한 용의자로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즉시 수사에 나선 콜롬비아 경찰은 얼마 후 시옹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성인 세 명과 청소년 한 명을 체포했다.
현지 매체 ‘엘콜롬비아노’에 따르면, 17세 소년은 시옹의 납치와 살해 사건에 가담한 사실을 인정한 후 미성년자를 수감하는 특별 구치소로 이송된 반면, 나머지 세 명은 현재 강도 및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시옹처럼 데이트 앱을 통해 여성을 만나러 나갔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미 대사관은 즉시 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자국민들에게 호텔과 같은 사적인 장소에서 단 둘이 만남을 갖지 말 것, 친구나 가족, 호텔 직원에게 누구와 함께인지를 알려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만일 강도를 만난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으므로 절대 저항해선 안 된다고도 덧붙였다.
또한 지난 1월 2일, 미 국무부는 콜롬비아에 ‘범죄와 테러’의 위험으로 인해 ‘여행을 재고해야 한다’는 의미의 ‘레벨 3’ 권고를 내렸다. 그런가 하면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국경을 비롯해 아라우카, 카우카, 노르트 데 산탄데르 등에 ‘레벨 4’를 부여해 여행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미 대사관이 이렇게 강력하게 경고하고 나선 데는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11월과 12월 두 달 사이 데이트를 나갔다가 미심쩍은 이유로 사망한 미국인들이 8명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메데인 관광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 및 살인 범죄 행위는 32건 발생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40% 증가한 수치였다. 그리고 이 가운데 최소 12명은 미국인이었다.
이런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온라인 데이트 앱에서 알게 된 여성들을 직접 만났다는 데 있었다. 먼저 카페나 레스토랑, 혹은 술집 등 공공장소에서 만난 다음 호텔이나 개인 아파트로 자리를 옮긴 후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도 같았다. 피해자들이 수치심 때문에 알리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실제 발생한 범죄 건수는 신고된 것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미 대사관은 추정했다.
범행 수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술에 몰래 마약을 타서 의식을 잃게 한 다음 납치 혹은 감금한 상태에서 금품을 갈취하거나 몸값을 요구하는 식이다.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살인을 서슴지 않는 경우도 많다.
범행에 주로 사용되는 약물은 스코폴라민이라는 독극물이다. ‘악마의 숨결’이라고도 불리는 무색무취의 이 약물을 술에 몰래 타서 먹이는 것이다. 스코폴라민이 투여되면 최장 24시간 동안 의식을 잃게 된다. 연구용으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독성 강한 이 약물은 남미 등 일부 우범지역에서 주로 성폭행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빈번하게 사용되며, 특히 알코올과 함께 섭취할 경우 현기증이 나거나, 잠이 오거나, 최면 혹은 환각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좀비처럼 무의식 상태에서 돌아다닐 경우 치명적이 될 수도 있다.
2021년, 미국 출신의 사업가인 오머 블로흐(28)는 틴더를 통해 만난 어린 콜롬비아 소녀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는 “틴더에서 한 젊은 여성과 매칭이 됐다. 그냥 평범한 소녀와 만나는 데이트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라고 회상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둘은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맥주맛이 썼다고 기억하는 그는 “내 집으로 들어가서 키스를 나눴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그 후로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정오가 다 돼서야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그 여자가 내 아이패드, 핸드폰, 지갑, 신용카드, 신분증 등을 전부 다 가져갔다”며 분개했다. 훗날 검사 결과 그 역시 스코폴라민에 중독된 상태였다.
텍사스 출신의 알록 샤는 2022년 말, 틴더에서 20대 중반의 콜롬비아 여성을 만났다가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카페에서 만나 커피를 마신 다음 맥주를 사들고 여성과 함께 자신의 호텔방으로 올라간 그는 그때만 해도 불안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후 갑자기 시야가 흐려진 그는 “마치 단기 기억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면서 공포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그는 가까스로 의식을 잃기 전에 그 여성이 자신의 목에 의심스런 가루를 문지른 사실을 기억해냈다. 즉시 그 여자를 방에서 내쫓은 그는 그 일을 겪은 후 “지금은 현지인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고 있다. 너무 위험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그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2022년, 틴더를 통해 만난 여성과 데이트를 했던 폴 응우옌은 결국 숙소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시신은 이틀 후 휴대폰과 지갑이 사라진 채 쓰레기통 옆에서 발견됐다.
그런가 하면 제프 휴이트는 메데인의 한 호텔방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으며, 테네시 출신의 필립 멀린스는 호텔방에서 약물에 중독된 채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단순히 약물과다복용으로 사망한 것인지, 아니면 당시 호텔 방 안에 다른 사람이 있었는지 여부는 현재 조사 중이다. 또한 텍사스에서 온 제프리 허튼슨은 데이트 앱에서 만난 18세 여성과 함께 호텔 스위트룸으로 올라갔다가 목에 최소 20개의 자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이처럼 콜롬비아를 방문한 외국인 남성들이 범행의 표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이곳에서는 매매춘이 합법이기 때문이다. 즉, 성매매를 목적으로 도시를 방문하는 남성들을 골라서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의미다. 관광국의 카를로스 칼레는 “메데인을 방문하는 관광객들 가운데는 특정한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 즉, 성매매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살해된 남성들 모두가 성매매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범행은 콜롬비아 마약 갱단과 연루된 경우가 많다. 범죄 전문가들은 틴더나 범블과 같은 데이트 앱들은 콜롬비아 갱단이 희생양을 찾고 유인하기 위해 점점 더 선호하고 있는 도구라고 말한다. 보고타의 범죄 및 보안 전문가인 안드레스 니에토는 “이들은 예전에는 술에 취한 사람이 술집 밖에서 택시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온라인으로 피해자를 고른 뒤 데이트 장소로 초대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갱단은 종종 남성들을 유혹하기 위해 매력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들을 고용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피해자가 점점 늘기 시작하자 콜롬비아 당국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페데리코 구티에레즈 메데인 시장은 “우리는 많은 관광객들이 이 도시를 방문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단지 섹스와 마약을 목적으로 오는 관광객들은 환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특히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매매를 단속하도록 경찰에 지시했다”고도 강조했다.
이처럼 관광객들과 ‘디지털 노마드족’ 사이에서 인기 있는 목적지가 된 메데인은 관광객들에게 안전하면서도 매력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동시에 그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범죄 요소들을 해결해야 하는 이중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