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보다 큰 보다폰 인수에 주가 폭락…사실 아이폰 출시 전 잡스 만나 ‘일본 독점권’ 따내 초대박
#자산 1조 엔을 손에 쥐면…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야후가 이제 막 탄생했다. 야후의 가치를 확신한 손 회장은 35% 지분을 100억 엔(약 900억 원)에 인수해 야후 최대주주가 된다. 소프트뱅크 사원이 아직 6~7명이던 시절이었다. 2000년 직전에는 ‘닷컴 버블’이 도래해 소프트뱅크의 주가는 그야말로 절정에 달했다. 손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제 개인 재산이 빌 게이츠를 넘어선 적이 있어요. 세계 제일의 갑부가 빌 게이츠였는데, 딱 3일간 제가 그를 제친 거죠. 너무 짧아서 기록이 안됐지만(웃음). 그때 제 자산은 일주일에 1조 엔씩 불어나고 있었거든요. 자산 1조 엔을 손에 쥐면 어떻게 될까요. 뭔가 이상해집니다. 돈이 기호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많은 사람이 몰려듭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옵니다. 인간 불신이 생기고, 호사스러운 마음일지 모르겠으나 돈이 싫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돈을 기부하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신이 답을 주셨어요. 닷컴 버블 붕괴입니다.”
손 회장은 그간 여러 차례 경영 위기에 직면한 바 있다. 가장 큰 위기가 2000년 닷컴 버블 붕괴다. 당시 소프트뱅크의 주가는 20조 엔을 돌파, 도요타자동차에 이어 일본 기업 중 시가총액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주가가 무려 90% 넘게 폭락했다. 시가총액은 2800억 엔까지 쪼그라들었고 “손정의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흔히 성공한 사람은 위기가 닥쳤을 때 다르다고들 한다. 손 회장은 어땠을까. 그는 “밑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크게 도약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닷컴 버블로 실력 이상 높이 인정받았지만, 이제 진짜 나의 ‘저력’을 보여줄 때가 왔다”라는 생각에 강렬한 의욕이 솟구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왕 싸울 거면 일본에서 제일 큰 회사랑 붙고 싶었다”고 한다. NTT도코모였다.
#부채는 두렵지 않다
“여러분, 우리 회사에 입사하면 ‘부모님이 소프트뱅크 괜찮겠냐? 소프트펑크 아니야?’ 이러실 수도 있어요. 그 회사는 빚더미인 걸로 알고 있다고 말이죠.” 손 회장은 대학 졸업예정자들을 향해 농담을 건넸다. 그러면서 손 회장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많은 빚을 경험했고 그래도 살아남았다”며 “빚은 두렵지 않다”고도 했다.
2006년 손 회장이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마음으로 보다폰 일본법인을 매수했을 때의 일이다. 무려 1조 7500억 엔을 쏟아부었다. 당시 소프트뱅크 시가총액은 6000억 엔 정도였다. 그런데도 1조 7500억 엔짜리 회사를 샀다.
곧바로 일본 주간지들은 “손정의가 1조 엔을 시궁창에 버렸다”며 “거액의 빚을 안고 뜬금없이 휴대전화사업에 진출한 것”을 대대적으로 기사화했다. 소프트뱅크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1주일 동안 60% 가까이 폭락했다. 겨우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됐는데, 1주일 만에 또다시 60%가 폭락했으니 주주들은 아우성을 쳤고 대출해준 은행은 화를 냈으며 회사 간부들은 손 회장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다만, 손 회장에게는 비책이 있었다고 한다. 손 회장은 “당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1조 7500억 엔의 승부를 걸었다”고 말했다. 그 비책은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아이폰이 출시되기 2년 전, 손 회장은 잡스를 만나러 갔다. 당시 손정의는 애플이 스마트폰을 만들고 자신이 통신사업을 하게 되면 일본 시장 독점 유통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잡스는 웃으며 약속을 했고, 이날 두 사람의 대화는 현실이 됐다.
2006년 손 회장은 보다폰을 인수해 소프트뱅크 모바일을 출범시켰다. 잡스는 2007년 아이폰을 공개했다. 그리고 2008년 소프트뱅크와 애플은 아이폰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일본 이동통신 업계 후발주자였던 소프트뱅크는 2008년 7월 일본에서 아이폰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면서 업계 1위 NTT도코모와 KDDI 가입자를 대거 흡수했다. 덕분에 날개를 달아 크게 비상할 수 있었다.
알리바바 투자도 6분 만에 결정…‘속전속결 승부사’
손정의 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은 익히 유명하다. 2006년엔 보다폰 일본법인을 매수했는데, 당시 일본 역대 최대 금액인 1조 7500억 엔(약 16조 원)을 쏟아부었다. 조만간 ‘모바일 인터넷 시대가 시작된다’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일생일대의 도박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으로 일본 3대 이동통신 회사 중 하나로 키워냈다.
2013년에는 미국의 휴대전화 업체인 스프린트를 1조 8000억 엔, 그리고 2016년에는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암(ARM)을 무려 3조 3000억 엔을 들여 인수했다. 특히 ARM 인수는 속전속결로 끝냈다. 협상부터 합의까지 단 2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 이에 대해 손 회장은 “관련 인수합병(M&A) 구상은 10년 전부터 해왔다”고 밝혔다.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시대에는 초저소비 전력 반도체칩을 대량 이용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이렇듯 원하는 먹잇감을 집요하게 쫓다가 승산이 보일 때 속전속결로 처리한다. 이것이 바로 흉내 낼 수 없는 손 회장만의 진면목이다. 사실 그의 과감한 투자 시작은 1995년 미국 야후 설립자인 제리 양과의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손 회장은 첫 대면임에도 불구하고 야후 가치를 높이 사 2억 엔을 투자하는 한편, 이듬해 자신도 야후재팬을 설립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에도 손 회장은 일찌감치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손 회장은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잭 마(중국명 마윈)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불과 6분 만에 2000만 달러의 투자를 결정했다. 역시 첫 대면이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