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선거법 위반 언급하며 고발 검토…전문가들 “개입 입증할 ‘구체적 정황’ 부족”
#당무개입이냐 소통 문제냐
1월 21일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 실장은 한 비대위원장에게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을 둘러싼 공천 논란,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의혹 대응에 대한 우려 등을 전달했다고 알려졌다. 이날 친윤계 이용 의원은 국민의힘 국회의원 단체 텔레그램 대화방에 대통령실이 한 비대위원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는 기사 링크를 공유하는 등 한 위원장의 거취를 압박하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대통령실은 “비대위원장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며 “지지 철회 논란과 관련해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논란을 일축했다.
1월 22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 사퇴 요구 및 당무개입 여부’ 질의에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평가는 제가 하지 않겠다. 그 과정에 대해선 제가 사퇴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1월 21일에도 한 위원장은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의 ‘당무개입’이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1월 24일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의 전례 없는 당무개입, 고위 공무원들의 국가공무원법에 위배되는 정치 개입, 정치 중립 의무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등이 모두 드러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 관권선거 저지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당 차원에서 고발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제22대 총선을 80여 일을 앞둔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한동훈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김경율 비대위원 공천 논란을 거론한 것은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것이 민주당 판단이다. 1월 23일 민주당 법률위원장인 김승원 의원은 SNS(소셜미디어)에 “명백한 공직선거법 9조 및 85조 위반 행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2년 감옥에 보낸 것과 궤를 같이한다”며 “그 전의 행위도 모두 고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직선거법 제85조(공무원 등의 선거관여 등 금지) 1항에는 공무원 등 법령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제9조(공무원의 중립의무 등) 1항에는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단체 포함)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1월 25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비대위 회의에서 “당정 간 의사소통 문제를 가지고 대통령실의 당무개입이라는 얼토당토않은 프레임을 씌우려 한다”며 “(민주당 ‘윤석열 정부 관권선거저지대책위원회’에 대해) 결국 상대 당의 당내 사정에 훈수를 두며 또 다른 음모론을 생산하기 위한 특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1월 23일 서정욱 변호사는 ‘YTN 더뉴스’에서 “대통령 이전에 당원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 시스템을 해라, 이런 표현을 한다든지 또는 지지를 하거나 또는 지지를 철회하는 것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행위”라며 “이게 불법적인 정무 정치 개입이 아니고 충분히 당원으로서 우려를 표할 수 있는 이런 사안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예를 들어 청와대 누구누구를 공천을 무조건 줘. 이렇게 구체적 개입한 게 아니고 시스템에 따라서, 원칙에 따라 공천했으면 좋겠다. 이 원론적인 발언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2015년 7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는 박근혜 대통령 발언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85조, 9조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6월 25일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며 국회법 개정을 두고 갈등을 빚던 당시 유승민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판했다.
당시 선관위는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 등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정치문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정치적 의견을 표명한 것”이라며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볼 수 없어 ‘공직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성배 변호사 "사안 자체가 덜 익었다"
민주당 안팎에서 거론되는 ‘박근혜 당무개입’과 비교해 봐도 사안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긴 어렵다. 2018년 11월 21일 서울고법 형사1부(김인겸 부장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같은 징역 2년 형을 확정했다. 박 전 대통령이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를 통해 이른바 ‘친박근혜계 리스트’를 작성하고,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통해 친박계의 선거전략을 수립해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공천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1심 판결문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떻게 공천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지위를 이용해 현기환 수석 등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통해 친박계 인물의 선거전략 수립을 위해 대구·경북(TK) 등 전국 다수의 지역구에서 ‘진박 감별용’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현기환 수석이 친박계 최경환 윤상현 의원과 수시로 만나 위 여론조사 결과를 공유하면서 각 지역구별로 친박 후보자를 내세울 사람의 지지도 및 적정성에 대해 상호 검증했다고 판결문에 적시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배신자라고 낙인을 찍은 유승민 의원 대항마로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을 내세우라고 지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친박 리스트 자료 및 전체 지역구별 친박 후보자들 및 지지도 현황 자료를 모두 보고받았다. 친박계 지지 상승 제고 방안, 핵심 연설 문구 등을 정리한 광역지구별 경선·선거운동 전략 문건을 만들게 하기도 했다. 아울러 박 전 대통령이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임명을 지시했다고 판결문에 적시됐다. 이한구 위원장은 20대 총선에서 ‘공천 파동’을 빚으며 김무성 대표와 극심하게 대립했던 인물이다.
현재로선 윤석열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구체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고 볼 만한 정황은 없다. 박성배 변호사는 일요신문에 “대통령실이 비대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는 점은 부적절하다고 할 순 있다. 다만 그 자체가 선거에 개입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공직선거법 9조, 85조가 받아들여지려면 선거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했다는 근거를 구체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 현 단계에서는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적다. 김경율 공천 논란도, 대놓고 끌어내려라. 그 정도는 돼야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삼을 순 있는데, 사안 자체가 아직 덜 익었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