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못내고 무기한 활동 연장, 그나마 8개월 이상 정기회의 중단…경찰대 개혁 의지 물음표
#의결→논의→여론 수렴…이상한 순서
경찰제도발전위는 2022년 9월 6일 첫 회의 개최 후 2024년 1월 18일 출범 500일을 넘겼지만 아직도 손이 비어있다. 경찰대학과 국가경찰위원회 개혁 등 여러 의제를 해결하겠다며 야심차게 설립했는데, 여태까지 의결한 사안은 내부 분과위원회 구성과 본인들의 활동 기한 연장이 전부다.
스스로 어떻게 언제까지 활동할지만 의결한 셈인데 그마저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원래 경찰제도발전위의 활동 기한은 2023년 3월까지였다. 그 전까지 경찰대와 국가경찰위원회 개혁만 논의했으나 결론이 나오지 않자 2023년 6월까지 3개월 더 연장했다. 그럼에도 아무런 진전을 내지 못해 결국 '무기한 활동 연장'을 의결했다.
당시 박인환 경찰제도발전위원장은 "늦어도 2023년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기한을 연장하고도 정기회의는 2023년 5월 23일 이후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그 대신 '현장 여론'을 수렴하겠다며 각 지역을 돌고 있다. 논의·의결의 선행 조건인 여론 수렴을 오히려 가장 뒤늦게 시도하는 셈이다.
이는 마지막 정기회의의 결과가 여론 수렴 필요성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록에는 '존속기한 연장안 의결'의 근거로서 "일부 안건은 분과위원들이 개선안을 마련하였으나, 전체 위원들이 참여하는 추가적 현장 방문을 통해 폭넓은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늦게라도 여론 수렴에 나선 행보는 다행이지만 8개월 넘는 정기회의 중단은 심하다는 지적이다. 출범부터 마지막 회의까지 '실패한 논의'를 거듭해온 시간과 맞먹는 기간이다. 여론 수렴을 위한 현장 간담회도 2023년 5월 이후 5차례에 불과했다. 각각 자치경찰 관련 2차례, 주취자 업무 2차례, 과학수사 1차례 등이다.
경찰제도발전위 내부에서도 답답함을 털어놓는 이들이 많다. 일요신문이 일부 위원들에게 정기회의 중단 배경 등을 묻자 "우리도 모르겠다", "워낙 오래돼서 논의 내용도 다 까먹었다", "현장 간담회도 시간 되는 인원들만 몇몇 참석하는 것 같다" 등의 대답이 돌아왔다.
현장간담회 대상에 경찰대가 빠진 지점도 눈길을 끈다. 경찰대 개혁은 경찰제도발전위의 설립 근거와 다름없던 데다, 경찰대 학생 및 관계자들의 여론 수렴은 일찌감치 중요한 과제로 꼽혔던 까닭에서다. 이에 경찰대 현장에서 여론을 수렴하기에는 그동안 진행해온 논의의 중간 결과물 자체가 다소 빈약한 탓 아니냐는 의문도 나온다.
실제 경찰제도발전위는 경찰대 개혁 논의 내내 평행선만 달렸다고 전해진다. 우선 경찰대 폐지의 경우 경찰간부후보생 출신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카르텔을 형성할 수 있다는 우려에 가로 막혔다. 카르텔이 본질적으로 특권 의식에 기인했으므로 경찰대가 없어지면 '유일무이' 경위로 입직한 경간부 출신에 힘이 쏠릴 수 있다는 뜻이다.
경찰대는 유지하되 졸업 때 경위 시험을 보는 안도 거론됐으나 실효성을 의심 받았다. 경간부 시험과 별도의 경위 시험을 보게 할지가 문제였다. 경찰대만 따로 시험을 보면 불공정 시비가 따를 수 있다. 또 학연에다 시험까지 합격한 이상 카르텔이 더 심해질 가능성도 있다. 반면 경간부와 같은 시험을 보면 경찰대에 입학할 동기가 사라진다.
#경찰대 개혁 의지 후퇴했나
일각에선 경찰대 개혁 의지가 후퇴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정치 상황하고도 관계가 있다. 애초 경찰대 개혁이 화두로 떠오른 시점은 현 정부 취임 초기로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따른 문제 제기가 큰 때였다. 정부가 경찰 통제 일환으로 경찰국 신설을 추진하며 동시에 내세운 과제가 '경찰대 카르텔 해체'였다.
하지만 2022년 8월 경찰국 출범 후 정부와 경찰의 갈등은 희미해져갔다. 오히려 합이 좋았다. 경찰 지휘부는 정부 정책인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며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이끈 류삼영 전 총경을 중징계했다. 또 민주노총과 화물연대 등 노동계의 집단행동에 선제적으로 강경 대응한 모습도 정부와 호흡을 잘 맞췄다는 평가다.
이런 분위기에서 경찰대 출신들도 자신감을 회복해 나갔다. 정권 초기 요직에서 배제됐던 경찰대 출신들이 시간이 지나 다시 속속 등장했다. 가령 2022년 치안정감 승진 인사 때만 해도 치안정감 5명 가운데 3명이 비경찰대 출신이었다. 2023년 1월 총경급 승진 때는 통상 55%였던 경찰대 출신이 42%까지 줄었다.
그러다 2023년 9월 상황이 반전됐다. 치안감으로 승진한 8명 가운데 6명이 경찰대 출신으로 초강세였다. 치안정감으로 승진한 2명 가운데 1명이 경찰대 출신이었는데, 김수환 전 경찰대학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최근 요직인 경찰청 차장으로 옮겼다. 같은 시기 서울경찰청장에 임명된 조지호 전 경찰청 차장도 경찰대 출신이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만 봐도 현 정부의 경찰대 개혁 의지에 물음표가 붙는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인 2021년 총경 이상 가운데 경찰대 출신은 467명이었으나 2023년 7월에는 496명까지 늘었다. 특히 '경찰의 별' 경무관은 2021년 64명에서 이듬해 60명으로 줄었지만 2023년 다시 65명으로 늘었다.
경찰 내부에서는 경찰대 개혁 이전에 인사 시스템의 공정성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서울청 소속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대 외에도 경찰 간부후보생,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101경비단 등 같은 집단 출신끼리 서로 밀고 당겨주는 문화는 곳곳에 존재한다"며 "경찰대를 폐지해도 카르텔 현상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의외로 경찰대 출신에서 수사경과 시험을 치른 인원이 많지 않다는 분위기가 있다"며 "수사 공정성 시비나 부실수사 논란 등으로 불이익 받을 가능성을 고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작은 실수로도 징계하고 승진에서 누락하는 조직문화가 이런 상황을 만든 게 아닐까 싶다"고 추측했다.
실제 경찰대 출신인 윤희근 경찰청장과 조지호 서울청장만 봐도 수사경과 여부는 확인되지 않으나 적어도 주요 경력에 수사는 없다. 윤 청장은 경정 이후 정보과를 주로 거쳤다. 조 서울청장도 경찰청 공공안녕정보국장 등을 지내며 '기획통'으로 불렸다. 통상 경찰에서 수사 외 요직으로는 정보·인사·기획·경비 등이 꼽힌다.
단 경찰제도발전위 회의를 주관하는 경찰국의 관계자는 "정기회의는 멈췄어도 경찰제도발전위 자체는 현장 간담회 등을 통해 계속 가동 중"이라며 "경찰 인사 시즌이 지나고 세 달 안으로는 경찰대 개혁 등 결과물을 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물론 아직 목표일 뿐 현재는 정해진 사항이 무엇도 없다"고 덧붙였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