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신분 김광호 차기 청장 임명 여부 초미 관심…광주·전남 발 브로커 사건 등 사기 저하 극복도 과제
#윤희근과 국회, 김광호와 법정
2024년을 앞두고 경찰 안팎의 시선은 윤희근 경찰청장에 쏠려 있다. '총선 시즌'이 다가오며 그의 출마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윤 청장은 조직의 반발을 무릅쓴 채 경찰국 신설을 용인하고, 노동계 등에 거침없이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 등으로 이번 정부와 호흡을 잘 맞춰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그가 고향인 충청북도 청주시의 흥덕구 등에서 출마할 수 있다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됐다.
윤 청장의 출마 여부는 금방 알게 된다. 총선에 나오려면 공직자 사퇴 시한인 2024년 1월 11일까지 직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차례 "출마하지 않는다"고 공언했으나, 여전히 충북 등지에서는 여권의 잠재 후보로 입길에 오르고 있다. 윤 청장이 청주 흥덕경찰서장과 충북경찰청 정보과장·제1부장 등을 거치는 등 고향에서 오랜 기간 공직에 헌신해온 배경도 작용한 모양새다.
윤 청장 출마 여부를 떠나 경찰은 2024년 새로운 수장을 맞이해야만 한다. 윤 청장 임기가 2024년 7월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출마 여부에 따라 이르면 약 열흘, 늦어도 반 년가량의 시간이 남았는데 다음 인사는 아예 안갯속이다. 과거 조현오, 강신명 경찰청장처럼 서울경찰청장이 승진하는 수순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 김광호 서울청장이 자칫하면 법정에 서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청장은 현재 이태원 참사의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피의자 신분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 참사 당시 인파밀집 등에 따른 사고 가능성을 예견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등의 혐의다. 서울경찰 총 책임자로서의 과실과 참사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 등이 기소의 관건으로 꼽힌다. 1년 넘게 이어 온 수사라 곧 결론이 예상된다.
전망은 아직 시계제로 상태다. 일단 정부는 김 청장을 신임하고 있다. 서울청장은 통상 1년 안팎 재직 후 교체가 대세였는데, 2022년 6월 임명된 그는 피의자 신분임에도 10월 인사에서 유임됐다. 단, 거리에서는 이태원 참사 유족 등을 중심으로 김 청장 기소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당초 서울서부지검은 2023년 4월 김 청장을 불구속 기소하려 했으나 대검찰청 보완 요구로 처분이 늦춰졌다.
#'역대급' 사기 저하…곧 폭발할 수도
갑진년 경찰의 어깨는 여느 때보다 무겁다. 김 청장 등 지휘부가 수사를 받는 것을 두고도 국민의 시선이 따갑지만, 10만 명이 훌쩍 넘는 일선 경찰관들을 중심으로 지휘부를 향한 불신마저 급속도로 악화한 탓이다. 광주·전남 등지에서 불거진 이른바 '사건브로커'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검찰한테 발각되며 공론화한 사건이라 경찰로서는 뼈아픈 자존심 상처로 남아 있다.
이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현직 경찰관은 확인된 수만 6명에 달한다. 11월 15일에는 의혹에 연루된 전남경찰청장 출신 치안감이 스스로 숨지기도 했다. 약 한 달 뒤인 12월 22일에는 제3자 뇌물교부 혐의를 받는 전직 경찰관 A 씨가 구속됐고, 일선 경찰관들을 양성하는 현직 중앙경찰학교 교장(치안감)마저 관련 의혹에 얽혀 최근 직위 해제됐다. 단, 이 관계자들은 혐의를 부인한다고 알려졌다.
현장 경찰관들이 모인 전국 경찰직장협의회는 해당 사태에 "조직을 이끌어간다는 고위직들이 경찰 전체의 공정성과 신뢰를 잃게 해 경찰의 위상을 떨어뜨렸다"며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장면"이라고 비판했다. 전국 직협은 "지휘 고하를 불문하고 문제를 발본색원해야 한다"면서 "깜깜이식 승진인사를 바꾸거나 인사 청탁 등을 방지할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일선 경찰관들의 사기 저하가 지휘부의 일탈 때문만은 아니다. 가뜩이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당연시 여기는 조직 문화가 만연했다는 인식이 매우 팽배하다. 12월 6일 일선에 하달된 '예산 부족에 따른 초과근무 자제령'이 기폭제였다. 치안 업무 특성상 초과근무를 자제할 수는 없는데, 결국 수당 등 보상 체계만 사라졌다는 불만이다.
이 문제로 윤 청장은 "이유를 불문하고 사태에 사과드린다"며 "올해 책정된 예산 범위 내에서 재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고 수습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효과는 약하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경찰 내 일각에선 조만간 '수당 현실화' 등을 공식적인 경로로 문제 삼으려는 계획도 검토 중이다. 한 관계자는 "2024년 상반기 안으로 정부 등을 상대로 한 소송 등 어떤 식으로든 절차를 밟을 듯하다"고 귀띔했다.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일도 급하다. '마약과의 전쟁' 일환으로 고 이선균(48)과 지드래곤(본명 권지용) 등 연예인을 겨냥한 마약 수사를 빈손으로 마무리한 장면은 흑역사다. 특히 2개월여 수사를 받던 이 씨가 스스로 숨진 사건은 강압수사 의혹으로 번졌다. 경찰은 새해벽두까지도 이를 해명해야 할 현실인데 약점이 크다. 이 씨 등과 관련한 첫 보도가 입건 전 조사(내사) 과정에서 경찰발로 나왔다는 게 치명적이다.
이 밖에도 2023년 도입한 형사들의 기동순찰대 겸임 등에 따른 수사력 부족, 또 치안센터 일부 폐지로 인한 농어촌 치안 공백 등의 문제가 차츰 가시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아직 '답보' 상태인 경찰대 개혁 역시 2024년에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 어떤 파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이는 폐지든 유지든 어느 한쪽의 강한 반발이 예상돼 '묘수'가 특히 요구되는 사안이다.
#'희망'과 '시험대'
물론 경찰에도 가시밭길만 놓여 있지는 않다. 오래 근무한 경찰관들에게 국립묘지 안장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염원의 목소리가 커가고 있다. 윤 청장까지 직접 팔 걷고 돕고 있다. 그는 2023년 여러 차례에 거쳐 이에 동참한다는 뜻을 피력해 왔다. 11월 21일 경찰의날 기념식에도 직접 참석해 "위험한 업무환경 속에서 장기간 헌신한 경찰관들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일선 경찰관들도 12월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소방관들과 집회를 열고 "경찰·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국립묘지 안장 범위 확대 개정 법안에 대한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등 기세가 비장하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8월 국가보훈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국민 안전을 위해 헌신한 경찰관과 소방관의 국립묘지 안장 범위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복수직급제'가 안착할 원년이라는 기대감도 따른다. 최근 발표된 경무관 승진 인사를 보면 31명으로 예년보다 소폭 늘어났다. 2021년은 24명, 2022년은 22명이었다. 복수직급제로 그동안 총경급 직위가 해오던 직무를 경무관이 맡을 수 있게 된 영향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 제도가 자리를 잡으면 순경에서 경무관 승진까지 필요한 최저 근무연수가 기존 16년에서 11년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경찰은 2024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대공수사권도 넘겨받는다. 이를 대비하고자 안보수사 인력을 총 403명 증원해 총 1127명까지 늘렸다. 이는 시험대다. 이른바 '검수완박'으로 수사권이 확대됐으나 아직 역량은 입증하지 못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가운데, 대공수사는 과연 다를지 주목된다. 윤 청장은 "우수한 수사 인력이 오래 일하도록 하는 등 역량 강화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