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 감시·ESG경영 등 다양한 측면 고려…“편법 경영 우려” 시각도 상존
식음료업계가 최근 법조계 출신의 인사를 사외이사로 활발히 영입하고 있다. SPC, 대상, 롯데칠성음료, 오리온은 2023년 3월 주주총회에서 판·검사, 변호사 출신을, 오뚜기는 1년 앞선 2022년 성낙송 전 판사를 영입했다. 식음료 및 유통업이 국민의 보건·건강과 관련이 높아 대표적인 정부 규제 산업으로 꼽힌 영향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 식음료 회사는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다보니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소송·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아울러 식품 위생과 안전 문제부터 인·허가, 표시 및 광고, 각종 사고, 기술 관련 특허권, 상표권 분쟁 등 다양한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식음료업계에서 자문을 담당하고 사법 리스크를 해결할 전문 인력 유치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는 대목이다.
SPC는 이달 신임 부사장에 장소영 전 검사를 선임했다. 내부 경영진에 전직 판·검사를 영입한 것은 2023년 3월 강선희 대표이사(전직 판사) 이후 1년 만이다. 장소영 부사장은 검사 2년차 시절 대검찰청 ‘입’인 부공보관 업무를 담당했다. 검찰 사상 ‘첫 공보담당 여성 검사’다. 광고회사에서 7년간 몸담은 이력도 있다. SPC는 장소영 부사장에게 사법 리스크에 대응하고 대외협력을 조율하는 역할을 기대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6월 김홍일 현 방송통신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한 오리온은 김홍일 위원장의 사외이사 임기 만료 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한 노승권 사외이사를 선임하며 법조계 인사를 꾸준히 영입하고 있다.
기업의 법조인 영입에 대해 유통업계는 “기업마다 해당 산업에 전통적인 방식과 새로운 시도를 도입하며 혼용되는 경우도 생기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 역시 무너지는 과정에서 새로운 규제가 논의돼 법률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법조계 출신이 선호된다”며 “법조계의 인적 인프라도 중요 요소인데, 기업은 준법 감시, ESG 등 다양한 측면을 보면서 영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출신의 사외이사는 환경 및 사회적 책임,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사전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사외이사가 주주들을 대신해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이사회 안에서 ESG 위원회 위원으로 합류해 사법적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자문을 줄 수도 있다.
식품·유통업계는 ESG 평가에 민감한 산업군으로 꼽힌다. 식품의 원재료가 환경과 연관돼 있고, 제조 과정에서 사회적 쟁점을 포함한 영역이 부각되기도 하며, 생산 이후 남겨진 식품 폐기물 역시 환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유통 및 식품 업계에 법조인 출신 사외이사나 경영인이 많아지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기업이 법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사법 리스크를 회피해 편법적으로 경영을 할 위험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기업의 사법적 부담을 사전에 예방하고 방지할 수 있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경영에는 인사, 재무, 노무를 아우르는 준법 경영이 중요하다. 규범 친화적으로 대응해 법 준수 여부 측면에 기업 강점을 부각시킬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법조계 출신을 선호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출신 인사들의 기업 진출에 대해 우려도 있다. 기업경영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하는 사외이사가 기업의 편에 서 사법의 우회로를 제시해 편법 경영으로 흘러갈 위험도 있어서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기업들이 로비 창구로 법률가 출신을 영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법관 출신으로 공직에 있던 인사를 기업이 고액 연봉으로 영입해 사법적 방패막이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양보연 기자 by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