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톤 추천 이사 이사회 진입 시 대규모 투자 압박 전망…태광산업 “회사 위해 머리 맞댈 것”
#사내이사 1명, 사외이사 2명 선임 제안
트러스톤의 태광산업 지분율은 5.80%다. 상법에 따르면 주주제안 내용이 법령이나 정관을 위배하는 경우가 아니면 회사는 주주제안을 정기 주총 안건으로 상정해야 한다. 태광산업은 아직 정기 주총 일정과 안건을 확정해 공시하지는 않았다. 태광산업은 매년 3월 말쯤 정기 주총을 개최해왔다.
앞서 지난 2월 16일 트러스톤은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 정정공시를 통해 이사 후보자 추천 관련 주주제안 계획을 밝혔다. 트러스톤은 공시를 통해 “지난해 ESG 경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신임 경영진을 임명해 인적 쇄신의 의지를 보여준 것에 환영한다”며 “이사회 구성원의 양적, 질적인 보강이 필요하다는 데에 회사와 의견을 같이한다. 제안된 후보자들이 이사회에 참여해 회사의 영업상황 개선과 이사회 중심경영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트러스톤은 2022년 12월 태광산업 지분 보유목적을 ‘일반투자’에서 ‘경영권 영향’으로 변경했다. 당시 트러스톤은 구체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주주제안 계획 발표를 시작으로 향후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예상된다.
트러스톤의 이사회 진입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트러스톤은 지난해 정기 주총에 앞서 △액면분할 △현금 배당 △자기주식 취득 △감사위원이 될 사외이사(분리선출직) 선임 등을 태광산업에 제안했다. 하지만 지난해 정기 주총에서 트러스톤이 제안한 액면분할, 현금 배당, 자기주식 취득 안은 부결됐다. 감사위원 선임 안건은 태광산업이 위법 소지가 있다고 보고 주총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이번 주총에서 트러스톤은 감사위원이 될 사외이사 안건에서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주제안에서 트러스톤은 자신들이 추천한 감사위원을 겸하는 사외이사 2명 중 1명을 분리선출 방식으로 선임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산업이 2022년 분리선출 감사위원으로 선임한 사외이사 최원준 씨의 임기는 오는 3월 만료된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는 감사위원 중 1명을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하는 제도다. 감사위원회는 3명 이상의 이사로 구성하고 사외이사가 위원의 3분의 2 이상이어야 한다. 통상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을 선임하려면 두 단계를 거친다. 우선 주총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돼야 한다. 이후 단순 3%룰(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산하지 않고 주체별로 3%로 의결권을 제한)을 적용해 찬반 투표한 후 감사위원으로 선임될 수 있다. 하지만 2020년에 상법이 개정되면서 감사위원 중 1명은 이사 선임 절차 없이 바로 단순 3%룰을 적용해 찬반 투표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분리선출 감사위원 선임 건이 주총을 통과하려면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와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태광산업 최대주주 측이 보유한 지분율은 54.53%에 달한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29.48%), 태광그룹 장손 이원준 씨(7.49%), 이원준 씨 동생인 이동준 씨와 이태준 씨(각각 0.67%), 학교법인일주세화학원(5%), 티알엔(11.22%) 등이다. 하지만 단순 3%룰을 적용하면 3% 이상의 의결권을 가진 이호진 전 회장, 이원준 씨, 일주세화학원, 티알엔 의결권이 각각 3%로 제한된다. 즉 태광산업 최대주주 측은 13.34%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트러스톤의 의결권 역시 3%로 제한된다. 태광산업과 표 대결 양상으로 들어갈 경우 트러스톤이 10.34%를 넘는 소액주주 의결권을 모은다면 승산이 있다. 2022년 말 기준 소액주주 비율은 13.16%다. 태광산업의 경우 지금까지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같은 주주친화 정책이 부족했다. 때문에 표대결이 펼쳐진다면 트러스톤이 소액주주 표심을 잡기에 유리할 수 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부 주주들이 트러스톤을 지지하면 분리선출직 감사위원의 선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안건은 무난하게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주총에 앞서 트러스톤은 분리선출된 감사위원인 최원준 사외이사의 임기가 남은 상황에서 분리선출 감사위원 선임 안건을 제안했다. 태광산업은 최원준 이사의 임기가 남았다며 안건 상정을 거부했다. 트러스톤은 의안상정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법원은 트러스톤의 신청을 기각했다.
트러스톤이 제안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직에 해당하지 않는 사외이사 선임의 건과 사내이사 선임 안건은 주총 통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이사 선임 안건에서는 3%룰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태광산업 최대주주 측이 트러스톤 추천 인사에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통과가 어렵다.
#2년 연속 적자…대규모 투자 압박 커지나
트러스톤이 이사회에 진입한다면 태광산업의 투자와 관련해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트러스톤의 이번 주주제안에 배당 내용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신성장 동력에 투자가 이뤄져야 기업가치가 제고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태광산업은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산업의 불황과 경기 악화 등으로 2022년과 2023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앞서 2022년 12월 태광산업은 향후 10년간 석유화학부문에 6조 원, 섬유(첨단소재) 부문에 4조 원 등 약 1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친환경 및 고기능성 소재를 중심으로 한 신사업에 4조 원을, 촉매기술 내재화 등 기존 공장의 설비와 환경 개선에 2조 원을 각각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섬유부문에서는 탄소섬유 등 신사업에 1조 5000억 원, 스판덱스 및 아라미드 공장 증설과 노후 설비 교체 등에 나머지 2조 40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지난해 5월 태광산업은 아라미드 울산공장에 1450억 원을 투자해 2025년까지 아라미드 생산량을 기존 1500톤(t)에서 5000t까지 늘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라미드 울산공장 외 대규모 투자 소식은 없었다.
섬유업계 한 관계자는 “아라미드 외에 다른 신사업인 탄소섬유 시장은 태광산업이 생산은 하지 않고 관망하고 있다”며 “효성첨단소재와 도레이첨단소재 등은 탄소섬유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친환경 소재 등으로 생산능력을 확장하거나 M&A(인수·합병)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석유화학과 연관이 있는 2차전지 소재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얼마나 변환하느냐에 따라 실적이 차별화되고 있다”라고 했다.
이와 관련, 태광산업 관계자는 “트러스톤 주주제안이 송달된 상태다. 트러스톤과는 충분히 의견을 공유하는 상황으로 궁극적으로 회사가 잘 되는 방향으로 머리를 맞댈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큰 틀에서의 투자 계획은 변함이 없다. 노후화된 설비 개선에 대한 투자도 이뤄지고 있다. 다만 제반 환경이 좋지 않다 보니 대규모 투자는 세밀하게 검토하려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트러스톤 측은 “태광산업이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하는 가운데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추천했다”라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