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궁 사인 ‘급사’로 발표했지만 타살 정황 다수…푸틴의 암살 타깃 12명엔 나발니 친동생도 포함
생전에 이런 바람을 피력했던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47)가 결국 사망했다. 푸틴의 최대 정적이자 자신이 설립한 ‘반부패재단’을 통해 줄곧 러시아 정부와 고위 관료들의 비리를 폭로해왔던 그였기에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교도소 안에서 뚜렷한 건강상의 문제를 겪지 않았다는 점, 일주일이 다 되도록 유가족들에게 시신이 인계되지 않고 있다는 점, 명확한 사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 석연치 않은 구석도 많다. 이에 유가족과 측근들은 나발니 사망의 배후에 크렘린궁, 즉 블라미디르 푸틴 대통령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푸틴이 자신의 최대 걸림돌인 나발니를 제거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푸틴의 ‘암살 리스트’가 존재한다고 믿는 야권 인사들은 지금까지 푸틴이 비밀리에 정적을 제거해왔듯이 나발니 역시 그렇게 제거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사기 및 횡령, 법정모독 등의 혐의로 징역 1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나발니는 지난해 극단주의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이 활동에 자금을 댄 혐의로 징역 19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은 상태였다. 그가 수감돼 있던 교도소는 러시아 최북단 시베리아에 위치한 ‘북극 늑대’라고도 불리는 악명 높은 ‘IK-3’ 교도소였다.
나발니가 사망한 날은 지난 2월 16일. 교도소 측은 이에 대해 “산책을 한 후 몸이 좋지 않아 쓰러졌고 곧 의식을 잃었다. 구급대가 출동해 필요한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살리지는 못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나발니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 4분 후 크렘린궁의 텔레그램 채널은 “나발니가 혈전으로 사망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불과 7분 후에는 다시 크렘린궁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가 나서서 나발니의 사인이 ‘급사증후군’이였다고 고쳐 발표했다. 다만 이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는 모두 사실일까. 러시아 정부의 발빠른(?) 대응이 오히려 석연치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런 주장을 믿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타임스’는 나발니 측 관계자의 말을 빌려 “이처럼 빠른 대처는 한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분 단위, 그리고 초 단위로 사전에 계획됐고 조율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나발니가 이보다 더 일찍 사망했을 수 있다고 의심했다. 오전 10시경 이미 사망 소식을 접했다는 교도소 수감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오후에 사망했다는 러시아 정부의 발표가 거짓일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나발니가 전날 밤에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수감자도 있었다.
나발니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발니의 변호인단 가운데 한 명인 레오니트 솔로브요프는 ‘노바야 가제타’와 가진 인터뷰에서 사망하기 이틀 전인 수요일 나발니를 보았을 때 정상적인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나발니의 어머니 역시 월요일 면회를 통해 만났던 아들이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갑자기 건강이 악화될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욱 의심이 가는 대목은 사망 후에 벌어졌다. 시신을 보여 달라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묵살한 러시아 당국은 ‘화학적 검사가 완료될 때까지’ 나발니의 시신을 2주일간 더 보관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시신 인계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나발니 측 변호사는 “살인자들이 타살 흔적을 감추기 위해 시신을 숨겨둔 채 넘기지 않고 있는 게 분명하다”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던 중 나발니의 시신을 운반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 행렬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던져 주기도 했다. 영상 속에는 교도소 승합차와 고속도로 순찰차 두 대, 그리고 러시아정보기관(FSB) 소속으로 의심되는 차량 행렬이 한밤중에 교도소를 빠져나와 이동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영상을 입수한 독립매체 ‘미디어조나’에 따르면, 교도소에서 출발한 차량은 살레하르트 방향으로 이동했다. 때문에 나발니 측은 현재 그의 시신이 시베리아 북부 살레하르트 병원에 안치되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나발니의 사인을 둘러싼 의혹은 증폭되고 있는 상태다. 먼저 독살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나발니가 과거 이미 한 차례 신경작용제인 ‘노비촉’에 중독돼 목숨을 잃을 뻔했던 때를 떠올렸다. 2020년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쓰러졌던 나발니는 일주일 넘게 의식불명 상태에서 생사를 오갔다. 다행히 독일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이번에도 교도소에서 독살을 당했다고 의심하는 나발니 측은 FSB 소속 비밀요원들이 나발니가 사망하기 이틀 전 교도소를 방문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주장한 러시아 인권단체이자 반부패사이트인 ‘굴라구’는 비밀요원이 교도소 내 일부 CCTV와 녹음 장치를 분해 및 차단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발니의 아내인 율리아(47) 역시 “푸틴이 치명적인 신경작용제 노비촉으로 남편을 살해했다”고 말하면서 “남편 몸속에서 독극물의 흔적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시신 인도를 거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에서는 나발니가 교도소 안에서 오래 전부터 서서히 독극물에 노출되어왔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속옷에 노비촉을 몰래 발라놓는 식으로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다른 고문 행위도 벌어졌을 수 있다고 의심하는 야권 운동가 세르게이 비지우킨은 “나발니는 3년 동안 밝은 조명이 켜진 독방에서 생활했다”면서 “그들이 나발니를 죽였다. 수년간에 걸친 고문도 살인의 한 방법”이라며 분노했다.
나발니가 교도소에서 구타를 당했다는 조심스런 추측도 제기됐다. 나발니 시신에서 수상한 멍 자국이 다수 발견됐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구급대원은 ‘노바야 가제타’를 통해 “경험에 따르면 나발니의 멍 자국은 경련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면서 “만약 경련이 일어난 상태에서 누군가 그 사람을 꽉 붙잡으면 멍이 생길 수 있다”라고 제보했다. 그러면서 특히 가슴에 있는 타박상은 심폐소생술을 시도한 흔적일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아마도 나발니를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심정지로 사망하고 만 듯하다. 다만 그가 왜 심정지를 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다”라고 했다.
이 멍 자국이 구타를 당한 흔적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컨대 ‘스텔스 암살’이라고도 불리는 KGB 전술인 ‘원펀치’를 맞고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러시아 망명자이자 인권운동가인 블라디미르 오세킨은 “나발니의 몸에서 발견된 타박상은 ‘원펀치’ 처형 방식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타임스’를 통해 이와 같이 주장한 오세킨은 “이는 KGB 특수부대가 사용하는 고전적인 방법이다. 그들은 몸의 중심부, 즉 심장에 한방의 펀치를 날려서 상대를 제압하는 훈련을 받는다. 이는 KGB 특수부대의 특징이다”라고 주장했다.
오세킨은 또한 ‘원펀치’ 전술을 한방에 성공시키기 위해 며칠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한 정황도 포착됐다고 말했다. 오세킨은 “나발니가 사망하기 하루 전날에는 기온이 영하 27℃까지 떨어졌다. 그런데도 나발니는 야외 독방에서 두 시간 반에서 네 시간을 지내도록 조치됐다”고 주장하면서 “수감자들이 보통 야외에 머무는 시간은 한 시간 미만이다. 일부러 먼저 나발니를 오랫동안 추위에 떨게 한 후 혈액순환을 최소화해 몸 상태를 훼손한 듯 보인다. 그렇게 하면 누군가를 죽이기란 매우 쉬워진다. 단 몇 초 만에 말이다”라고 추측했다.
반면, 오세킨은 노비촉 등 독극물 암살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교도소 안에서라면 러시아 당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나발니를 살해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몸에 흔적을 남겨서 푸틴이 의심받는 상황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다.
나발니가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발니의 식량 배급량을 대폭 줄이거나 식량 관련 예산을 삭감하는 식으로 고문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 ‘북극 늑대’ 교도소는 수감자들을 고문하고 구타하는 등 지옥 같은 교도소로 악명 높은 곳이다. 과거 이곳에 수감됐던 한 제보자는 “감옥에 들어간 직후부터 구타가 만연하며, 결코 피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곤봉으로 때리거나 목을 조르기도 하며, 후춧가루를 뿌리기도 한다. 손발을 묶거나 기이한 자세로 굴욕을 당하기도 한다”고 고발했다. 이런 악랄한 고문 때문에 이 교도소는 러시아인들에게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니 나발니의 지지자들은 그의 죽음을 가리켜 ‘정치적 살인’이자 ‘역사적’이면서도 ‘엄청난’ 범죄라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어떤 주장도 실체가 없고 확인된 바 없다”면서 이런 주장을 가리켜 ‘근거 없고 저속하다’는 간단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푸틴은 왜 시위와 항의가 빗발칠 게 빤한데도 불구하고 나발니를 굳이 제거한 걸까. 이에 대해 RUSI(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러시아 전문가이자 우크라이나 군사고문을 지낸 올렉산드르 다닐류크는 ‘더선’을 통해 “이는 러시아와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다고 믿는 순진한 서방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에게 보내는 매우 강력한 메시지다”라고 분석했다. RUSI의 캘럼 프레이저 연구원은 “푸틴은 나발니가 자신에게 가하고 있는 위협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반대파의 상징적인 지도자가 제거됨에 따라 푸틴은 더 안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발니가 사망하면서 현재 직접적인 대체자는 없는 상태다”라는 의견을 냈다.
정치운동가이자 ‘허미티지 캐피탈’의 최고경영자(CEO)인 빌 브라우더는 나발니의 죽음에 대해 “푸틴은 아무도 자신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어 했던 듯하다. (저항을) 당장 멈추라는 신호다”라고 말했는가 하면, 전 BBC 모스크바 특파원인 제임스 로저스는 “이번 일은 푸틴에 반대하는 행동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상기시켰다”면서 “나발니 죽음의 더 넓은 의미는 야당의 공개적인 일원이 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라고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사정이 이러니 푸틴의 다음 타깃이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도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푸틴이 최소 열두 명을 ‘암살 명단’에 올려놓고 있다고 주장하는 브라우더는 ‘미러’와 가진 인터뷰에서 “나발니의 수상한 죽음은 푸틴에게 ‘게임 체인저’가 됐다”면서 “푸틴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암살될 위험이 높아졌다”고 내다봤다. 또한 그는 “푸틴은 나발니의 죽음으로 더욱 대담해졌다. ‘1순위 적’이었던 나발니는 반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장 인기 있고 저명한 야당 정치인이었다. 이런 그를 살해했다는 것은 푸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심각한 암살 위험에 노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푸틴이 자제력을 잃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특히 영국에 있는 모든 적들을 상대로 암살 작전을 지시할 수 있다”라고도 점쳤다.
추측컨대 ‘암살 명단’에는 나발니의 동생인 올레그 나발니(40)도 포함돼 있다. 형과 우애가 두터웠던 올레그는 현재 키프로스나 독일 등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으며, 현재 불특정 범죄 혐의 혹은 정치적 혐의로 러시아 당국에 의해 지명수배를 받고 있다.
이 밖에 기자 출신의 저명한 야권 운동가인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도 표적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그는 크렘린궁을 비판한 반역죄로 25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이미 2015년과 2017년 두 차례 독극물에 노출됐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바 있으며, 그 후 러시아로 돌아갔다가 결국 체포되고 말았다. 체포된 이후에도 여러 칼럼을 통해 반푸틴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푸틴 체제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편지를 쓰는 등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나는 쓰러질 여유가 없다. 두려워할 여유도 없다. 싸움을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 푸틴 정권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러시아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게 중요하다”며 굴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직 기업가에서 러시아 야당 인사로 변신한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도 ‘암살 명단'에 올라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2000년대 초 푸틴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징역형에 처해졌던 그는 2013년, 소치올림픽 특별 사면으로 석방된 후 런던에 정착했다. 그 후 야당 단체인 ‘오픈 러시아’를 출범해 반푸틴 성향의 뉴스 매체를 운영하고, 각종 선거에서 후보자들을 지원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기소에 직면한 피고인들에게 법률적 도움을 제공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이 단체는 러시아 정부의 압력 때문에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호도르코프스키는 크렘린궁에 저항하는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전 모스크바 시의회 의원이자 나발니의 열렬한 지지자인 일랴 야신도 푸틴의 눈엣가시다. 러시아 당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떠나지 않았던 그는 “러시아를 벗어나는 건 정치인으로서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결국 2022년 6월, 러시아군에 대한 허위정보를 유포한 혐의를 받고 징역 8년 6개월형을 선고 받았다. 지금은 옥중에서 날카로운 비판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야권 운동을 이끌고 있으며, 그의 유튜브 채널은 현재 15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러시아 야권이 단합된 힘을 보여줄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나발니의 뒤를 이을 만한 인물은 물론이요, 당장 3월 대선에서 푸틴에 맞서 도전장을 내밀 강력한 후보도 없는 실정이다. 남아있는 반대파들과 주요 정치 인사들은 러시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누가 러시아를 이끌어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비전을 가지고 있다. 설령 단합한다고 해도 러시아 정부의 강압, 억압, 협박을 감안할 때 단기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또한 나발니의 반부패 재단은 현재 러시아에서 알카에다나 이슬람 국가와 같은 테러 조직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시위를 하거나 크렘린궁에 공개적으로 도전할 경우 십중팔구 체포와 구금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의 알렉세이 레빈슨 사회문화연구 책임자는 “러시아에서 투쟁한다면 나발니처럼 최후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고 말하는 호도르코프스키는 “나발니의 죽음은 러시아 야당에 매우 치명적이다”라고 아쉬워하면서도 그의 죽음이 잊히지 않기 위해서는 그가 죽기 전에 하고자 했던 일을 계속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고 독려했다. 가령 3월 대통령 선거를 목표로 어떤 식으로든 저항을 해야 한다고 말한 그는 가령 투표용지에 나발니의 이름을 적는 식으로 항의할 것을 촉구했다.
호도르코프스키와 다른 정치인들의 후원을 받는 ‘러시아 반전위원회’도 러시아인들에게 선거 당일 투표소 앞에서 열릴 예정인 ‘푸틴 반대 정오 집회’에 참석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 아이디어는 지난 2월 초, 나발니가 제시한 것이었다.
현재 대부분 망명 중인 러시아 야당 인사들은 비록 상황은 어렵게 됐지만 자국의 민주주의 희망이 나발니와 함께 사라지게 둬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호도르코프스키는 “푸틴은 자신의 정적을 죽일 수는 있지만 반대파의 민주적인 사상까지 죽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기업가부터 기자들까지…‘푸틴 비판’ 인사들 줄줄이 의문사
지금까지 푸틴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치 및 재계 인사들은 수십 명에 달한다. 푸틴에 반하는 정치 비평가들이나 기업가들, 변절한 요원들, 탐사보도 기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살해되거나 폭행을 당했다. 대부분은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혹은 창문에서 추락사하는 등 의문사했으며, 러시아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가까스로 탈출해 해외 망명길에 올라있는 인사들도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푸틴이 정적을 제거하고 거슬리는 인물들을 견제하는 도구로 살인이라는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국가를 ‘마피아’식으로 다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존 스위트 전 미 육군 군사정보관과 마크 토스 국가안보분석관은 푸틴이 현대판 FSB 버전인 ‘살인 주식회사(Murder Inc)’를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앤서니 글리스 버킹엄대 교수 역시 “푸틴이 권력을 잡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본질적으로 비밀경찰이 러시아를 통치하게 된 셈”이라고 비난했다. 푸틴을 비판하는 러시아 인사들이 줄줄이 의문사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번개는 같은 장소에 두 번 칠 수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35번 이상 칠 수 있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또한 그는 “살인이라는 기반 위에 세워진 이 권력 피라미드가 푸틴을 현재의 최고 위치에 있게 해주었다”면서 “이 때문에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배한다 해도 당장 축출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푸틴을 히틀러에 비유한 그는 “히틀러가 사망하기 전까지 독일은 슬프게도 ‘안정적’이었다”고 말하면서 “푸틴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을 것이다. 히틀러는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한 자국민들 때문이 아니라 적들의 군사력에 의해 몰락했다”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스위트와 토스도 “20세기 역사는 독재자들을 제거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고, 푸틴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안나 플리트코스프카야
2006년 모스크바 자택 엘리베이터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체첸 침공 당시 푸틴과 러시아 정부의 인권 유린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했던 그는 이로 인해 끊임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렸고, 늘 독살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알렉산더 리트비넨코
전직 KGB 요원이며, 2008년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중 독극물 중독으로 사망했다. 당시 런던 메이페어 밀레니엄 호텔에서 폴로늄-210이 첨가된 차를 마신 후 중독 증세를 보였고, 결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내장이 파열되고 피를 토하는 증세를 보이다가 사망했다. 동료인 안드레이 네크라소프는 “리트비넨코는 의식을 잃기 불과 몇 시간 전에 ‘그놈들은 나를 잡았지만 모두를 잡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그놈들’은 푸틴이 보낸 전직 KGB 요원이었다. 크렘린궁은 어떠한 연루도 부인했다.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딸 율리아
2018년 3월, 영국 월트셔주 솔즈베리의 벤치에서 둘 다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현관 손잡이에 발라 놓았던 노비촉에 중독된 상태였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당시 러시아 비밀요원 두 명이 용의자로 떠올랐지만 그들은 123m 첨탑으로 유명한 성당을 보기 위해 솔즈베리에 왔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 푸틴은 스크리팔을 가리켜 ‘인간쓰레기이자 조국에 대한 반역자’라고 비판해왔었다. 전 러시아 정보총국 요원이었던 스크리팔은 반역죄로 유죄를 선고받고 투옥 생활을 하다가 러시아와 미국과의 스파이 교환으로 석방된 후 영국에 망명했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2013년, 영국으로 망명해서 생활하고 있던 그의 시신이 자택 화장실 바닥에서 발견됐다. 목에는 스카프가 둘러져 있었고, 샤워 레일에 목을 매달아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자살이 아닌 타살로 의심하는 친구 아흐메드 자카예프는 “베레조프스키를 아는 사람들 가운데 자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는 러시아 비밀경호국이 푸틴의 반대자들과 러시아 정부를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세계무대에서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번 죽음은 그 음모의 일부다”라고 주장했다.
#미하일 레신
푸틴의 고문을 지냈던 레신이 호텔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건 2015년이었다. 공식적인 부검 결과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방에서 여러 번 넘어져 외상으로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니콜라이 글루시코프
러시아 국적 항공사인 에어로플로트의 전 부이사관이었으며, 2018년 런던 남서부에 있는 자택에서 개 목줄로 목이 졸린 채 사망했다.
#세르게이 마그니츠키
2008년 러시아 세무 공무원들이 거액을 횡령한 사실을 내부고발했으며, 그 역시 구금되었다. 이듬해 구금 상태에서 췌장염을 치료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 사인은 췌장염에 의한 독성 쇼크와 심부전이었다. 하지만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교도관들이 고무로 된 경찰봉으로 그를 여러 차례 구타했고 이로 인해 두개골 손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시위가 잇따랐고, 2012년 미국에서 ‘마그니츠키 법’이 제정됐다. 이는 인권 침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관리들의 자산을 동결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이다. 영국에서는 러시아 부패 관리들의 비자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유사한 법이 통과되었다.
#보리스 넴초프
야당 정치인이자 최대 정치 평론가였다. 크림 반도 합병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으며, 2015년 크렘린궁 인근 다리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러시아 당국은 체첸인 5명에게 살인죄를 선고했으나 배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파벨 안토프
러시아 정치인이자 재벌 사업가였다. 2022년, 인도 라야가다의 호텔 테라스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생전에 그는 ‘왓츠앱’을 통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라빌 마가노프
러시아 제2의 석유기업인 ‘루크오일’의 이사회 의장을 지낸 인물로, 생전에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맹비난했다. 2022년, 담배를 피우다가 발코니에서 추락해 숨졌다. 러시아 경찰 수사는 자살로 종결됐다.
#댄 라포포트
사업가였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2022년, 워싱턴 D.C의 고층 아파트에서 추락사했다.
#알렉산더 서브보틴
석유기업 ‘루코일’의 전 사장이자 선박업계 거물로, 무속의식 중 숙취 치료제로 추천받은 두꺼비독을 마신 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유리 보로노프
운송회사 ‘아스트라시핑’ 대표. 2022년 머리에 총상을 입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자택 수영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레오니트 슐만
러시아 최대 가스 기업 ‘가즈프롬’ 산하 ‘가즈프롬인베스트’ 임원. 유서와 함께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손목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알렉산더 튤라코프
‘가즈프롬’ 임원이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자신의 차고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옆자리에서 유서가 발견되어 자살로 종결됐다.
#바실리 멜니코프
의료회사 사장으로, 2022년 가족과 함께 흉기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세르게이 프로토세냐
에너지기업 ‘노바텍’ 임원이었다. 스페인 저택에서 도끼에 찔려 숨진 아내와 딸 옆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바딤 보이코
해군 대령이자 우크라이나 전쟁 예비군 동원 책임자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섯 발의 총상을 입어 사망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살로 종결됐다.
#드미트피 파보치카
항공우주 회사 사장이었으며, 모스크바에 있는 아파트에서 산 채로 불에 타서 사망했다.
#안드레이 보티코프
스푸트니크V 백신을 개발한 과학자였다. 모스크바 자택에서 벨트로 목이 졸려 사망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회장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푸틴에 반기를 들었다가 철회했다. 모스크바 근처에서 전용기가 폭발해 사망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