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용역 낙찰업체와 정보 사전 교류’ 기소, 미뤄진 카드깡 의혹 수사 돌입…수융얼 “재발방지 대책 이행 중”
#입찰비리 의혹 전말
2024년 2월 2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세계 1등 수소산업 육성을 위한 현장중심 규제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수소차와 연료전지 중심의 규제 개선을 추진했으나, 수전해 등 수소 생태계가 다양화하며 새로운 시장 진출을 위한 현장 규제 개선에 돌입한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수전해, 충전소, 액화수소, 암모니아 발전, 모빌리티 분야 관련 13개 과제에서 2025년까지 R&D 및 실증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수소열차 실증 R&D를 위한 예산을 확보할 계획으로, 협력단체 및 기업과의 간담회 등을 통해 신규 과제도 꾸준히 발굴해 나가기로 했다.
이에 수융얼에 대한 주목도도 높아졌다. 2017년 국내 유일의 수소산업 진흥전담 기관으로 지정돼 민·관협의체로 출범한 곳이다. 100여 곳의 회원사가 참여했고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국고 지원도 받는다. 국내 수소산업 인프라 확장을 주도할 전진기지로 평가 받는다.
다만 수융얼이 '카르텔' 의혹을 해소해야 할 숙제는 남아 있다. 여러 직원이 비리 혐의로 기소된 상태라 이를 엄단할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재판 절차에 돌입한 수융얼 입찰비리 의혹 사건도 한 예다. 실제 일요신문이 입수한 서울중앙지검의 2023년 8월 공소장을 보면 이를 단순 개인일탈로 여기기는 어렵다.
해당 사건은 2021년 7월 수융얼의 일반직원과 협조결재권자 2명이 연구용역 발주 과정에서 특정 업체의 낙찰을 위해 일을 꾸몄다는 게 골자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피고인들은 사업예산 8800만 원 상당의 용역 발주를 준비하며 낙찰업체의 의견을 반영한 후 입찰공고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적시했다.
또 "피고인들은 발주를 준비하며 낙찰업체가 입찰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해당 업체에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며 "이는 조달청의 입찰 공고를 통해 응찰 대상자들에게 공개되는 자료로서, 사전에 임의로 유출할 경우 사업 정보를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해 공정한 입찰을 방해하는 직무상 비밀문서"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피의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낙찰업체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유관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시험연구원(KCL)이다. 수융얼은 용역 사업이 사법 문제로 비화하고도 2023년 KCL과 '청정수소 인증 인프라 구축' 업무협약을 맺었다.
#'재판·수사' 6명
이런 가운데 수융얼의 더 많은 직원들이 예산 횡령 및 전용 등 혐의로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는 사실도 확인됐다. 먼저 입찰비리 의혹 사건에서 결재권자였던 A 씨는 기소를 면했다. 하지만 전 직장인 가스안전공사에서 속칭 '카드깡' 수법을 활용한 횡령에 연루돼 2023년 10월 재판에 넘겨진 인물로 드러났다.
A 씨는 가스안전공사 직원들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에서 지원받은 연구비 약 4억 원을 몰래 빼돌려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에 얽혀 있다. A 씨를 포함한 4명은 연구자재 구입비용을 실제보다 부풀려 구입한 뒤 업체로부터 현금을 돌려받는 이른바 '카드깡' 수법으로 횡령을 저질렀다고 의심받고 있다.
2019년 수융얼에 입사한 A 씨는 2024년 1월 결국 회사를 관뒀다. 기소에 따른 회사 측 조치는 아니고 개인사정에 의한 퇴사다. 그는 '퇴사 이유'와 '무혐의를 주장하는지' 등을 묻는 질문에 "재판에 넘겨진 것은 맞지만, 이 문제로 더는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 밖에 2022년 수융얼 내부에서 불거진 소위 '카드깡' 의혹에 연루된 직원들도 최근 경찰에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다. 수융얼의 몇몇 직원들이 동네 문구점에서 법인카드로 미리 선결제를 한 뒤 필요할 때마다 돈을 빼가며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이다. 연루자 일부는 사건이 알려진 뒤 회사를 떠났다.
해당 사건은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수융얼에 각종 예산을 지원한 산업부와 에너지기술평가원 등이 뒤늦게 문제를 파악한 뒤 고발조치에 나서며 일이 커졌다. 현재 경찰은 수융얼의 중간급 간부 1명과 실무자 2명을 수사 선상에 올렸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관계자는 "원칙과 절차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수융얼에서는 입찰비리 혐의를 받는 2명과 카드깡 사건에 연루된 3명 및 A 씨까지 총 6명의 전·현직 직원들이 재판 혹은 수사를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수융얼의 직원은 20여 명이다. 전체 직원 가운데 약 4분의 1에 달하는 인원이 재판·수사로 회사를 아예 떠나거나 조사를 받고 있다.
다만 이들 가운데 수융얼에서 징계 조치를 받은 인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수융얼 관계자는 "관둔 분들은 어쩔 수 없고, 현 직원이라면 혐의가 확정된 뒤 상황에 따라 징계위 회부 등이 이뤄질 수 있다"며 "일단 수사 및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무죄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각종 사건의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며 "그동안 부서 단위로 관리해온 물품의 구매 및 관리 등을 이제 경영지원실에서 확인하고, 상시 감시 체계를 가동함은 물론 감사 실시 횟수도 기존 연 1회에서 2회로 늘린 상태"라고 강조했다.
#알고도 수사 안 했다
수융얼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업계에서는 수사당국이 일찍이 사안을 매듭짓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긴다. 수융얼 입찰비리와 카드깡 의혹은 내부 직원의 공익제보로 2023년 공론화했는데, 이 직원은 그보다 1년 전에 국회와 경찰 등에 먼저 사안을 제보했음에도 문제 해결이 더딘 탓에 언론 및 시민단체 등을 통해 사건을 알렸다.
이 과정에서 서울경찰청은 입찰비리 의혹 피의자들만 2023년 검찰에 송치했을 뿐, 카드깡 혐의는 2022년 상당한 증거를 확보하고도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산업부와 에너지기술평가원의 의뢰로 현재 수사 중인 사건과 동일한 사안이다. 입찰비리 수사도 2023년 3월 첫 언론보도 직후 제보자에 사안을 재확인한 뒤 진행됐다.
서울청 관계자는 "정식 고소·고발 등은 입건이 의무지만 제보는 다르다"며 "각종 증거 자료를 갖고는 있었지만, 제보를 접수 받은 곳이 카드깡 혐의를 담당할 부서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적정 부서에 이첩하지 않은 이유' 등을 묻는 질문에는 "제보 자체가 입건을 의무화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입찰비리 사건에서 KCL이 기소되지 않은 배경에도 궁금증을 제기한다. 공소장이 KCL과 수융얼이 어떤 문서들을 주고받았는지까지 상세히 기재한 까닭에서다. 공소장에 등장하는 한 KCL 직원은 일요신문에 "수사 받은 적 없다"며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 박진현 변호사(법무법인 아인)는 "공무상비밀누설이 아닌 입찰방해나 공무집행 방해 혐의 적용도 가능해 보이는데, 어떤 혐의든 낙찰업체를 공범으로 불기소한 이유는 의문"이라고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낙찰업체가 문서 전달만 받았을 뿐 공무상비밀누설에 가담한 정황 혹은 증거가 없기 때문일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