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책임연구원 입찰비리 공론화 후 사측 징계 지속…주어진 업무 없고 책상은 출입문 구석에
#비정상의 정상화…사건의 발단
수융얼은 문재인 정부였던 2017년 '수소경제 활성화' 기조에 따라 민·관협의체로 출범했다. 100여 곳의 회원사가 참여했고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소산업진흥 전담기관으로 지정돼 국고 지원도 받는다. 현재 기관장은 무역보험공사 사장과 산업부 제2차관을 지낸 문재도 회장이다.
야심차게 설립했으나 기대에는 한참 못 미쳤다. 이른바 '카드깡'과 입찰 비리 논란으로 아직도 홍역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직원들이 동네 문구점에 카드를 미리 맡긴 뒤 돈을 빼가며 사적 용도로 사용했고, 일부 사업의 경우 입찰부터 낙찰까지 특정 업체를 밀어줬다는 의혹이 여러 언론에서 제기됐다.
실제 산업부와 경찰 등의 조사 결과 13개 사업 가운데 11개에서 카드깡 정황이 포착됐다. 또 입찰 비리와 관련해서도 경찰은 직원 2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 등은 추가 가담자와 혐의가 없을지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
일련의 사태를 이끈 이가 박선영 팀장이다. 그는 20여 년 에너지 업계에서 일하다 2022년 1월 수융얼에 합류했다. 입사 후 각종 문제를 확인하고 정상화를 위해 전방위로 노력했다. 문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국회 등에도 제보하며 개선을 촉구했는데 시원찮은 처리 탓에 직접 수사기관으로 향했다.
그런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박 팀장은 언론에 손을 내밀었다. 결국 2023년 3월부터 보도가 이뤄지며 사안이 공론화했고 수사도 그제야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경찰은 약 5개월 동안 아무런 처분을 내리지 않다가 첫 기사가 나간 후 보름도 안 지나 피의자들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박 팀장은 사태를 처음 제보한 이후부터 이상한 일들을 겪기 시작했다. 우선 2023년 1월에는 처음으로 징계를 받았다. 수융얼의 직원 A 씨가 돌연 '박 팀장으로부터 직장괴롭힘 등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다. 회사는 이를 받아들여 박 팀장에 정직 6개월 처분을 내렸다.
박 팀장은 부당함을 주장하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 향했다. 여기서 부당 징계라는 판정이 내려져 가까스로 억울함을 벗었다. 그러나 사측이 불복 후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다시 판단을 구한 탓에 또 분쟁을 겪었다. 지난한 갈등 끝에 2023년 8월 중노위도 박 팀장의 손을 들어줬다.
수융얼 안팎에서는 박 팀장에 대한 사측의 '보복 조치'를 의심하는 시선이 많다. 실제 일요신문이 확인한 중노위 판정서를 보면 박 팀장을 향한 A 씨의 문제제기에는 석연찮은 지점들이 여럿 보인다. 그는 여러가지 사례를 들어 박 팀장을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했는데, 일반적인 관점에 비춰보면 대부분의 내용들이 워낙 사소한 사항으로 비치는 까닭에서다.
중노위는 이러한 A 씨의 주장들을 사실상 전부 기각했다. 자연히 A 씨 주장을 근거로 박 팀장에 정직 6개월을 처분한 회사의 판단도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이에 박 팀장을 복직시키고 그동안 밀린 임금도 전액 지급하라고 수융얼에 주문했다.
#다양한 사례 중 1가지 '빌미'
그렇지만 끝이 아니었다. 그는 12월 4일 사내 징계위원회에 소집돼 또 다시 징계를 받았다. 수위는 견책으로 무겁지는 않은 처벌이지만 6개월 승진제한 등 불이익은 존재한다.
중노위가 박 팀장의 다양한 사례 가운데 단 한 가지는 잘못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게 빌미로 작용했다. '박 팀장이 여럿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A 씨를 겨냥한 듯한 문체로 글을 작성했다'는 내용이다.
다만 이 역시 구체 내용을 살펴보면 이견이 나올 수 있다. 박 팀장은 사비 500만 원을 본인 팀에 기부했었다. 법인카드를 쓰기에 너무 소액이라 부담이 된다면 본인의 돈을 사용하라는 취지에서 내놓은 자금이었다.
이 돈의 관리자가 A 씨였다. 그런데 A 씨는 이 돈을 혼자 밥 먹는 비용 등으로 몇 차례 사용했다. 이에 박 팀장은 회사와 업계 관계자들이 제한적으로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해당 자금을 조성하게 된 배경 등을 설명했다. 다 쓰고 보니 A 씨를 꼬집은 듯 비칠 소지가 있는 듯해 이후에는 내용을 수정했지만 징계를 피하지는 못했다.
상황이 이 같이 전개되자 시민사회에서는 박 팀장의 사례를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공익제보자를 향한 '노무 탄압'이라는 시각에서다.
실제 박 팀장이 공익제보자라는 사실은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확인된 사항이다. 2023년 7월 권익위는 박 팀장의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요구에 "공익신고자 해당 여부를 판단한 결과 공익신고가 맞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단 중노위 판정을 앞둔 시점이어서 "보호조치는 중노위 판단을 기다려 보자"는 취지로 답했다.
시민단체인 '내부제보실천운동' 관계자는 "박 팀장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종종 목격하는 공익제보자에 대한 전형적인 보복 형태"라며 "결국 수융얼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자임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괴롭힘 피해자의 정체
박 팀장은 책임연구원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았으나 여전히 회의에도 못 들어가고 있다. 주어진 업무마저 없는 상태로 알려졌다. 복직 후 책상 자리는 사무실 출입구 앞 구석진 곳으로 바뀌었다. 다른 직원들과 달리 부서명 적힌 천장걸이마저 없는 위치다.
한편 일요신문 취재 결과 박 팀장한테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한 A 씨는 입찰비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피의자 가운데 한 명으로 파악됐다. 수융얼이 2021년 특정 사업의 입찰 및 낙찰 과정에서 특정 업체를 밀어줬다는 의혹에 연루된 인물이다. 낙찰받은 업체는 문재도 수융얼 회장이 몸담았던 산업부 유관기관이다.
A 씨가 수융얼에서 이 문제로 징계 등을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혐의 행위 당시 계약직이었으나 이듬해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수융얼 관계자는 "최근 불거진 각종 의혹들이 상당 부분 사실관계가 잘못됐다"면서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상황을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박 팀장을 탄압한다는 주장 역시 적절치 않다"면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직원이 여전히 피해를 토로하는 상황이며, 회사로서는 중노위의 판단을 모두 수용하는 등 원칙에 따라 최선의 조치를 다했다"고 강조했다.
[반론보도] <수소융합얼라이언스, 보복성 징계 아닌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징계 조치> 관련
본 신문은 지난해 2023년 12월 7일자 <특종/단독> 및 <사회> 섹션에서 <[단독] ‘공익제보자에서 직장괴롭힘 가해자로…’ 수소융합얼라이언스 보복성 징계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수소융합얼라이언스가 회사의 비리를 제보한 직원에게 정직 6개월의 처분을 하는 등 보복성으로 의심되는 인사와 징계 등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수소융합얼라이언스 측은 “복직 후 해당 직원에게 다른 업무를 지시하였고, 이른바 ‘카드깡’ 논란은 항/목간 전용에 해당하는 것이며, 사적 용도로 사용한 것이 확정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알려왔습니다.
특히 회사에 대해 제보한 직원에 대한 6개월의 처분 및 보복성 징계 의혹과 관련해서는 “중앙노동위원회가 내부 고발 직원의 A 씨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을 일부 인정하였고 징계절차에도 중대한 하자는 없었으나, 징계양정이 과도하다고 판정하여 이에 따라 다시 견책 처분한 것이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