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의약분업 땐 지급, 2014·2020년엔 투쟁 성금 지원…‘무노동 무임금’ 적용받는 병원 노조 반발도
폐암 환자 김 아무개 씨는 CT(컴퓨터단층촬영), 기관지 내시경, 혈액검사 등 수술 전 해야 하는 각종 검사를 마친 상태에서 서울대병원으로부터 수술 무기한 연기 통보를 받았다. 수술이 시급했던 김 씨는 다른 병원을 찾아 겨우 일정을 잡았지만 무작정 수술을 기다리며 낭비한 시간과 돈이 아깝다고 했다.
익명을 원한 중년의 환자는 정확한 병명도 모르는 상태에서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고 있다. 그는 “신우암인지 신장암인지 개복 후에 알 수 있다고 하더라. 서울의 상급종합병원에 입원해서 수술 전 검사까지 받았는데 무기한 연기돼 퇴원했다. 빠른 시일 내에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고 있는데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드는 병원비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운 좋게 퇴원 권유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다. 병원에 전공의가 없으니 당연히 제대로 된 치료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파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19일 입원 중이었다는 또 다른 환자는 “20일에는 거의 방치됐다. 과장 조금 보태 집에 있는 것과 별반 다른 게 없다고 느꼈다. 교수들은 응급 수술과 외래 진료로 바쁜지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어서 침대에 누워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무노동 무임금이 원칙인데…
환자들은 길어지는 의료 공백으로 인한 불안감을 토로하는 동시에 적지 않게 드는 병원비에 대해서도 한탄했다. “꼬박꼬박 병원비를 내면서도 치료는 못 받고 있다. 방치된 채 하루하루 쌓여가는 입원비는 누가 물어주느냐”고 거친 불만을 터뜨리는 환자도 있었다.
환자들이 내는 병원비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현행법상 파업 기간 중 임금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지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2000년 의약분업 파업 당시 의사들에게는 ‘무노동 유임금’이 적용됐다.
당시 국회 교육위 소속 이재정 민주당 의원이 서울대병원 등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립대병원 의사들은 파업에 동참하고도 월급의 전액 또는 절반 이상을 받아왔다. 경상대와 충북대, 충남대, 전남대, 강릉대 치대병원 등은 파업 기간에 의사들의 월급을 100% 지급했고, 서울대병원의 경우 기본급과 상여금에서 8월은 13일 분을, 9월은 12일 분을 감액하고 지급했다.
경북대병원의 경우 전공의는 기본급, 상여금, 진료특별수당, 체력단련비를 감액 지급했으나 전임의에게는 진료특별수당을 정상적으로 지급했다. 또 부산대병원은 전공의에게는 보수 및 제수당을 20% 삭감 지급했지만 전임의에게는 모두 정상 지급한 바 있다.
각 병원 노조들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크게 반발했다.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조가 파업을 했을 때에는 법에 따라 쟁의 기간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으면서도 법적 노조가 아닌 의사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오히려 임금이 지급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간호사와 행정직이 주축이 된 병원 노조가 노조 파업 당시 무노동 무임금 적용으로 받지 못한 임금을 되돌려 달라고 나서기도 했다.
이 의원 역시 파업 의사들에게 임금 지급을 하는 것에 대해 “같은 해 실시된 각 병원 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는 대부분 파업 기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한 것과 비교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있었던 2014년과 2020년 두 차례의 파업에서는 파업 참가 의사들을 위한 성금이 모이기도 했다. 2020년에는 용산구의사회가 파업 기간 동안 월급을 받지 못 하는 전공의들을 지원하기 위한 투쟁 성금을 냈고, 파업을 예고한 대한전공의협의회의 계좌로 후원금이 물밀듯 들어오기도 했다. 김원곤 당시 용산구의사회장은 “파업 참여로 월급도 안 나온다고 하니 구의사회에서 십시일반으로 투쟁 기금을 모아서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병원이 이번에도 현장을 떠난 의사들에게 급여를 지급할지는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27일 서울대병원과 순천향대병원 등 일부 수련병원에 ‘결근 중인 전공의의 경우 급여 지급이 어떻게 되는지’ 등 관련 질의를 보냈으나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다만 법에 따라 2월분 급여는 일부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서초동의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결근이 장기화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과 의사 간 근로관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의사들이 근무 중단을 선언한 지도 (2월 28일 현재) 일주일 정도 되었기 때문에 2월 급여는 일부 지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칙은 무노동 무임금이지만 급여를 지급한다고 해서 위법인 것은 아니다. 이는 사업주인 병원장의 재량”이라며 “2000년 파업 당시에도 야간 근무 등 여러 정무적 판단을 통해 급여가 지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100% 지급될 경우 다른 노조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은 있다”고 말을 아꼈다.
#투쟁 성금 두고 법적 해석 갈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회원들을 상대로 투쟁 성금을 모금하고 있다. 의협은 2월 17일 관련 안건을 의결하고 모금액을 비대위 운영 및 전공의와 의대생 법률 지원, 의대 증원 저지를 위한 홍보 활동 등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의협의 자발적 투쟁 성금 모집이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21일 오전 세종청사에서 열린 중수본 정례브리핑에서 박민수 제2차관은 “성금 모금을 즉시 중단해 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이어 “성금 모금은 불법적인 단체행동을 지원한다는 것이고 불법을 지원하는 것은 공법인이 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넘어섰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법인은 정관에 정한 그 단체의 목표, 그것을 달성하는 데 필요로 하는 모든 활동에 대해서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의대 증원 저지를 위한 성금 모금은 그 범위를 벗어난다는 게 복지부 해석이다. 이에 의협은 “비대위 활동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적법하게 투쟁 성금을 모아 이뤄져 왔다”며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한편 병원을 이탈하는 의사들이 늘어나며 의료 공백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2월 23일 오후 7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소속 전공의의 80.5%인 1만 34명, 근무지 이탈자는 72.3%인 9006명이다. 이런 가운데 조선대병원 등 일부 병원의 전임의들마저 재계약을 거부하고 3월부터 병원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병원 운영에 비상이 걸릴 전망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