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활용한 이복현 금감원장에 대통령실 높은 점수…‘당근 전략’ 김주현 금융위원장 존재감 약화
#밸류업 놓고도 약간 다른 기류
금융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지만, 최근 기업 밸류업 (Value-up) 프로그램을 놓고 조금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채찍 없이 당근만으로 기업 밸류업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2월 26일 유관기관과 함께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를 열고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는데, 1600개에 달하는 전체 코스피·코스닥 상장사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스스로 수립하고 연 1회 자율 공시하는 내용 위주였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자본시장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겠다는 당근 전략이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기업 스스로의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가야 한다”며 페널티 조항이 없고 기업 자율에 맡기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틀 뒤 ‘채찍’을 들고 나섰다. 28일 ‘금융감독원장-연구기관장 간담회’에서 “상장 기업도 일정 기준에 미달할 경우 거래소 퇴출이 적극적으로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며 그는 “오랜 기간 성장을 하지 못하거나, 재무 지표가 나쁘거나, 인수·합병(M&A) 기업의 수단이 되거나 이런 기업이 시장이 남아있는 게 맞냐는 차원의 문제”라고 상장폐지 정책 추진 가능성을 시사했다. 성장동력을 가진 스타트업 등에 돈이 갈 수 있도록 옥석 가리기가 명확히 돼야 하고, 이를 위해 상장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부분이었다.
실제 국내 증시에서 상장폐지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2018년 이후 현재까지 코스피 상장 종목 중 상장폐지된 종목은 25개, 코스닥은 76개 정도다. 이마저도 대부분 주가조작 등 금융범죄와 연관된 경우가 많다. 검찰 수사를 받고 유죄를 받더라도 대주주가 바뀌면 상장폐지를 면해주기도 한다. 코스피·코스닥 전체 종목 수의 1%도 채 되지 않는 상장폐지 기업 규모는 밸류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측은 “밸류업 프로그램과는 관계없다”는 입장이지만, 금융당국에서는 검사 출신의 이복현 금감원장이 ‘강경한 발언과 행동력’으로 더 치고 나간 것이라는 평이 나온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원래는 금융위가 큰 틀에서 방향을 잡고 금감원이 규제나 징계권을 활용해 문제가 있는 기업들에 대해 처벌을 하는 역할을 맡아 왔다면 이복현 금감원장 취임 이후 금감원이 금융위와 같은 방향을 놓고 서로 경쟁하듯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통령실에서 강하게 치고 나가면서 기존에 없던 방법들도 활용하는 금감원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정통 관료보다 특수통 검사가 더 유능?
그러다 보니 금융위 안팎에서는 정통 관료 출신인 김주현 금융위원장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데 대한 아쉬운 반응이 나온다. 금융위 산하 기구의 한 관계자는 “원래 금융위가 해야 할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필요한 정책들을 시장이 오해하지 않게 잘 제시하는 것 같은데, 언론의 주목도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훨씬 높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윤석열 정부 출범 초, 국정감사에서 주식시장의 뜨거운 감자인 공매도를 놓고도 이들 두 수장의 발언은 결이 달랐다. 김주현 위원장은 “공매도 금지 등 조치에 대해서는 시장 상황을 보며 전문가와 협의해 결정해야 한다”며 원칙론적인 신중한 답변을 내놓았지만, 이복현 원장은 “심리적 불안으로 금융시장 쏠림이 심할 경우 공매도 금지 등 예외를 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2023년 이복현 금감원장은 공매도에 대해 강도 높은 제재를 가했다. 불법(무차입) 공매도 제재 건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을 정도다. 아예 공매도 전담 조사팀을 꾸리는 등 사실상 ‘불법 공매도 박멸’에 나섰다. 그동안 관행으로 넘어가던 지연 공시에도 무차별 제재를 가했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전면 금지됐던 공매도는 2021년 5월부터 코스피200 코스닥150 지수 편입 종목에 한해 일부 허용됐다.
이복현 원장이 이끄는 금감원의 존재감은 올해 더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 이복현 금감원장 취임 후 라덕연 사태, 5개 종목 하한가, 카카오-에스엠(SM) 시세조종 의혹 등 불공정거래 이슈에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을 활용해 수사를 주도했다. 사상 처음으로 기업 오너(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를 금감원에 소환해 조사한 뒤 검찰에 넘기는 일도 있었다.
이런 금감원의 행보에 대통령실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이 일을 잘한다’는 평이 나왔다는 후문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기수 등을 따질 때 이복현 금감원장(32기)은 이제 검사장급 승진 대상자이지만 금감원장으로 갔을 때부터 장관급으로 간 셈이니 그만큼 신임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 아니냐”며 “한때 서울남부지검과 수사 주도권을 놓고 불편한 적도 있었지만 최근 공매도 관련 수사를 금감원이 주도하는 것 등을 보면 대통령실이 금감원의 손을 들어준 셈”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금감원의 수사팀 규모는 더 확대된다. 2024년 2월 말 기준 불공정거래 조사 부서 정원은 145명으로 2023년 말(119명)보다 21.8%(26명) 증가했다. 금감원 측은 “주가조작 수법이 진화하면서 증거를 인멸하기 전 빠르게 대응하는 게 중요해진 만큼 자본시장을 가장 잘 아는 금감원(특사경)이 압수수색, 출국금지 등 강제 수단을 활용하고, 긴급조치(패스트트랙)로 검찰에 사건을 이첩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앞선 금융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때는 공정거래위원회였다면, 지금은 금융감독원이 기업들에게 가장 존재감이 크다”며 “그 중심에는 검사 출신으로 수사 경험이 많은 이복현 금감원장이 있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