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 등 혐의로 고발당한 김기유 전 의장, 과거 이호진 전 회장 감쌌던 진술 번복과 제보로 경찰 수사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과 2인자였던 김기유 전 태광그룹 경영협의회 의장 사건이다. 태광그룹이 김기유 전 의장에 대한 내부 감사를 진행하자, 김기유 전 의장은 이호진 전 회장의 비위를 제보했고 이에 태광그룹은 김기유 전 의장의 비위를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이 과정에서 최근 이호진 전 회장은 경찰에 소환돼 조사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정부로부터 사면·복권을 받았던 이호진 전 회장과 태광그룹에 다시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태광그룹, 2인자 내치고 고발한 내용은?
2023년 8월부터 태광그룹은 2인자였던 김기유 전 의장에 대한 내부 감사를 진행, 각종 사건을 검찰에 고발했다. 2023년 광복절 특사로 복권되기 전까지 있었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공백 시기에 경영을 대리해 그룹 ‘2인자’로 불렸던 김기유 전 의장. 하지만 내부감사에서 발견된 비위를 이유로, 계열사 대표에서 해임됐고 곧바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됐다.
태광그룹이 검찰에 고발해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은 두 가지다.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부장 유효제)는 김기유 전 의장이 2014년 말 태광관광개발(현 티시스) 대표를 지내면서 태광CC 골프장 클럽하우스 증축 등 공사과정에서 비용 수십억 원을 부풀려 A 건설사에 맡기고, 지인이 운영하는 업체에 하도급을 줬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당시 A 건설사 대표는 김기유 전 의장이었는데, 태광그룹은 배임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김기유 전 의장의 150억 원대 부당대출 청탁 의혹도 검찰이 들여다보고 있다. 2023년 8월 부동산 개발 시행사를 운영하는 지인의 청탁을 받고 태광그룹 경영협의회 의장 지위를 이용해 그룹 계열사 2개 저축은행 대표이사에게 150억 원 상당의 대출을 실행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2월 24일 관련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김 전 의장의 자택과 사무실 등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도 진행했다.
김 전 의장 측 관계자는 “건설사 선정이나 저축은행 대출은 모두 내부적으로 절차를 다 밟아 이뤄진 조치들”이라는 입장이다. 정상적인 회사 시스템을 거쳐 이뤄진 결정들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수십 년 회사 내부 아는 2인자도 발끈
문제는 수십 년 동안 태광그룹에 근무하면서 ‘요직’을 거쳤던 김 전 의장도 태광그룹의 고발 조치에 가만히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김 전 의장은 2010년 검찰의 분식회계 의혹 수사 과정에 관여한 의혹으로 당시 동림관광개발 대표 자격으로 수사를 받은 바 있고, 2016년에는 국회 정무위원회에 일감 몰아주기 의혹 증인으로 참석한 바 있다.
그런 김 전 의장이 태광그룹의 검찰 고발에 맞서 그동안 이호진 전 회장과 관련된 태광그룹의 주요 논란들에 대해 수사기관에 제보하기 시작했다.
태광그룹은 2018~2019년 사이 계열사를 동원해 이호진 전 회장의 배우자와 자녀 등 총수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티시스의 사업부인 휘슬링락CC의 김치와 역시 총수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메르뱅의 와인을 19개 계열사에 강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계열사들은 이 김치를 직원 복리후생비, 판촉비 등 회사 비용으로 구매한 뒤 직원들에게 급여 명목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태광그룹에 과징금 21억 8000만 원을 부과하며 이 전 회장과 김 전 의장을 고발 조치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은 검찰에서 김기유 전 의장(당시 실장)만 기소되고 끝났다. 검찰이 강매를 직접 지시한 책임을 물어 김기유 전 의장만 재판에 넘기고 이 전 회장은 불기소 처분했다. 김기유 전 의장 등이 “이 전 회장이 김치·와인 거래와 관련한 재무 상황을 보고받거나 범행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고, 이를 받아들여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봤다. 이 전 회장은 검찰 불기소 처분이 나온 직후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해 고등법원까지 가서 승소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2023년 5월 대법원에서 다시 판단이 뒤집혀 이 전 회장의 관여를 적극적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이호진 전 회장, 구속영장 신청 가능성 제기
2023년 말부터 김기유 전 의장이 본격적으로 이 전 회장을 감쌌던 과거 진술들에 대해 ‘번복’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 전 회장을 수사 중인 곳은 경찰.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가 이 전 회장의 횡령·배임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전 회장이 2015~2018년 그룹 임원 계좌에 허위·중복 급여를 입금한 뒤 이를 빼돌리는 수법으로 비자금 수십억 원을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룹 소유 골프장인 태광CC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의혹도 있는데 이 과정에서 김기유 전 의장의 진술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2023년 10월부터 12월까지 김 전 의장의 진술을 토대로 이 전 회장의 자택과 개인 계좌 및 휴대전화, 태광그룹 경영협의회 사무실과 계열사 등을 수차례 압수수색했고, 자금흐름 파악과 참고인 조사를 대략적으로 마무리했다.
최근에는 이 전 회장을 상대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회장은 경찰 소환 조사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도 못하고 지시한 바도 없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사법당국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의 범죄 혐의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구속영장 가능성이 거론된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경찰 수사팀은 “구속영장 검토 및 신청 여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김치·와인 강매 의혹에 대해 다시 수사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1심에서 김기유 전 의장은 벌금 4000만 원을 선고받았는데, 검찰에서 ‘이 전 회장이 강매에 관여한 적이 없다’던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김 전 의장 측은 검찰에 이 전 회장의 책임 여부를 다시 확인해 수사해 달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오랜 기간 함께 해왔던 재벌 오너가 2인자를 내치는 과정에서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다 보니 그동안 잘 눌러왔던 리스크가 다시 터진 셈”이라며 “이호진 전 회장이 또 다시 사법리스크에 노출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