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극복’ 노력 독려 명분으로 추진…혜택 대기업 집중 가능성에 부자 감세 지적
윤석열 대통령과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기업이 직원에 지급한 출산지원금을 근로소득으로 인정하면서도 세금을 물리지 않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부영그룹이 최근 출산 직원들에게 무려 1억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실질적 효과를 위해 세 부담을 줄여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화답이다. 부영에 이어 사모펀드운용사인 IMM도 1억 원 지급을 결정했다.
현행 소득세법은 근로자 또는 그 배우자의 출산이나 6세 이하 자녀의 보육과 관련하여 사용자로부터 받는 급여에 대해 월 20만 원 이내의 금액은 비과세하고 있다. 출산에 대해서만 2회에 한해 이 조항의 금액 한도를 없애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2021년 출산한 근로자까지 혜택을 소급해 주기로 했다.
2022년 귀속 근로소득 중 비과세 출산보육수당을 신고한 근로자는 47만 2380명, 총 신고액은 3207억 원이었다. 1인당 평균 68만 원꼴이다. 2022년 신생아는 약 25만 명이다. 보육을 제외한 출산으로만 따지면 비과세 혜택을 본 숫자는 더 작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원금을 많이 받을수록 세제 혜택도 커진다. 지원금을 많이 지급할 수 있는 곳은 결국 대기업이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대기업 일자리 부족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2021년 기준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임금근로자는 전체의 18.4%에 불과했다. 100인 이상으로 범위를 넓혀도 30.2%에 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50인 이상이 대기업이다. 대기업 임금근로자 비중은 미국 58%, 프랑스 47%, 영국 46%, 스웨덴 44%, 독일 41% 등이다.
10인 미만 사업체 임금은 300인 이상의 절반(54%)에 불과하다. 100~299인 사업체도 71%에 그친다.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는 출산·보육 지원금은커녕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늘어난 비과세 혜택 대부분을 소수의 대기업 종사자들만 누리게 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이미 고액 연봉인 데다 거액의 지원금까지 받으면 출산과 육아에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이들과의 경제적 격차는 더 커진다. 경제적 격차는 교육 격차로 이어지고 결국 더 많은 혜택을 본 자녀들의 대기업 입사 가능성을 높인다. 출산 지원은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는 민간 차원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저출산 대책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북유럽 국가에서도 출산 장려에 따른 재정적 부담은 정부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일본 정부는 2026년부터 국민 1인당 월 500엔(약 4500원)의 세금을 징수해 어린이·육아지원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언뜻 액수가 커 보이지 않지만 모든 국민에 부과되는 인두세다. 소득 차이에 고려도 없다. 이 때문에 NHK 설문조사에서는 찬성(20%)보다 반대(31%)가 많았다. 하지만 민간이 아니라 정부가 저출산 극복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일본 정부는 해당 정책 추진을 고수하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