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가격 제품 소비자 호응, 업소 재고 줄이는 효과도…유통기한 지난 음식 판매 부작용 등장
저장성에 거주하는 샤오리는 주로 오후 늦게 장을 보러 갈 채비를 한다. 정가보다 싼 가격에 음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샤오리는 33위안(6000원)짜리 빵을 16위안에, 70위안(1만 3000원)어치 과일을 35위안에 샀다. 집에 오는 길엔 50위안(9200원) 가격표가 붙은 볶음밥을 19.9위안(3600원)에 사서 저녁을 해결했다.
샤오리가 산 음식은 소위 ‘떨이’ 제품들이다. 샤오리는 “남은 음식을 왜 사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누군가 먹다가 남은 게 아니라, 그저 팔리지 않았을 뿐이다. 인터넷에선 이런 음식들이 담긴 제품을 ‘블라인드 박스’라고 한다. 같은 음식이 절반 가격인데, 안 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블라인드 박스라고 불리게 된 것은 2024년 1월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장성에서 빵집을 운영하던 1995년생 런 씨는 매일 발생하는 재고로 골머리를 앓았다. 고민 끝에 남은 빵 3개를 무작위로 박스 안에 넣어 싸게 팔기로 했다. 무슨 빵이 들어가 있는지 소비자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블라인드 박스로 부르기 시작했다.
블라인드 박스는 많은 호응을 얻었다. 남은 빵을 해결해 재고를 처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였다. 빵집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됐다. 고객들은 처음엔 저렴한 가격 때문에 블라인드 박스를 찾았다. 그러다가 박스 안에 어떤 빵이 들어있는지, 마치 복권을 사는 마음으로 구입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런 씨는 블라인드 박스 일부에 케이크를 넣어 파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샤오리는 “박스 안에 평소 비싸서 먹지 못했던 고급 케이크가 들어 있었던 적이 있었다. 대박을 맞은 기분이었다”라고 말했다. 런 씨는 일회성으로 준비했던 이벤트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블라인드 박스는 입소문을 타고 온·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빠르게 퍼졌다. 많은 언론에선 ‘MZ세대들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라며 이를 소개했다. 항저우, 상하이, 선전 등 대도시에서 많은 가게들이 블라인드 박스를 도입했다.
빵집, 조리 음식, 간편식 가게뿐 아니라 꽃집에서도 블라인드 박스가 활용됐다. 선전의 한 40대 남성은 “퇴근하는 길에 꽃이 담긴 블라인드 박스를 사서 와이프에게 선물로 줬다. 평소 비싸서 꽃을 잘 사지 않는 편인데, 가격이 저렴해서 살 수 있었다. 떨이라고는 했지만 꽃은 신선했다”라고 했다.
항저우의 한 대학교에 다니는 양샤샤는 ‘블라인드 박스’ 예찬론자다. 그는 “무엇보다 음식물 낭비를 줄일 수 있어 환경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블라인드 박스를 추천하고 있다”고 했다. 양샤샤는 자신이 즐겨 찾는 음식점의 블라인드 박스 판매 시간을 알람으로 설정, 시간에 맞춰 방문하고 있다. 늦었다가는 매진으로 인해 허탕을 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영업자들도 블라인드 박스에 열광하고 있다. 재고 처리에 드는 수고를 줄였고, 매출은 올랐다. 가게 홍보는 ‘덤’이다. 일석삼조다. 블라인드 박스가 빠른 속도로 전국에 퍼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블라인드 박스 가격은 보통 정가보다 최소 30%에서 최대 50%까지 싸다. 이 때문에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긴 하다. 일부 음식점엔 ‘먹다 남은 음식을 팔았다’며 항의가 들어오는 소동이 있기도 했다. 실제 한 빵집에선 유통기간이 지난 빵을 블라인드 박스에 넣었다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블라인드 박스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셈이다. 한 유통 전문가는 “블라인드 박스가 지속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기 위한 전제 조건은 제품의 질이다. 아무리 싸다고 해도 불량품이면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을 것이다. 특히 음식의 경우 신선도가 중요한데, 어떻게 이를 해결할지가 향후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선전의 한 음식점 사장은 “블라인드 박스가 단지 가격이 싸다는 장점만 있다면 이렇게까지 유행하진 않을 것이다. 환경 보호, 호기심 충족 등이 맞물린 결과다. 또 요즘은 박스 디자인을 다양하게 하고 있는데, 이를 수집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당분간 열풍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